[기자의 시각] ‘야미바이토’ 주의보

김동현 기자 2024. 5. 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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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도치기현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50대 부부 시신 훼손 혐의로 체포된 한국 국적 강광기(20)씨./FNN(후지뉴스네트워크)

지난달 30일 일본 가나가와현의 호텔 문을 열고 나온 20대 남성이 잠복 중인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재일 한국인 강광기(20)씨의 체포 현장이었다. 그는 지난달 16일 도치기현 나스마치 강변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50대 부부 시신을 훼손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강씨는 가나가와 출신 특별 영주자로 어린 시절 소년 야구팀에서 투타 겸업을 할 만큼 주목받는 선수였다고 한다. 지인들은 그가 씩씩하고 리더십이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숨진 부부와는 모르는 사이였다고 알려졌다. 그는 어쩌다 일면식도 없는 일본인 부부 사망 사건에 휘말리게 됐을까.

현지 언론은 그가 성인이 되고 변변한 직업 없이 술을 즐겨 마시다 거덜난 지갑을 ‘불법 업무 대행’으로 메우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선 이처럼 돈이 궁한 사람이 고액의 보수에 혹해 범죄에 발을 들이는 행위를 ‘야미바이토(어둠의 아르바이트)’라 부른다. 구인·구직은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이뤄지고, 건당 보수는 100만엔(약 900만원) 안팎. 지난해에만 경찰 수사로 100명에 달하는 야미바이토 가담자가 체포됐는데 대부분 20세 전후였다. 현지 대학생 6명 중 1명은 구인 연락을 받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한국에서도 야미바이토는 마냥 생소한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경복궁 담장에 스프레이(래커)를 이용한 낙서가 발견됐다. 범인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복궁 등에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홍보하는 낙서를 쓰면 300만원을 준단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훼손된 경복궁 담장을 복구하는 데 1억원 이상이 소요됐다.

한 일본 언론은 자국에 횡행하는 야미바이토와 한국에서 벌어진 경복궁 낙서 사건을 연결지으며 “돈을 위해서라면 문화재 훼손도,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안이한 사고가 (한·일 젊은층에) 확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선악에 대한 판단력은 물론 사회의 기초 상식을 배울 기회를 빼앗고 있지 않은가 고민해볼 계기”라고 했다. 이런 비판이 잇따르자, 일본 정부는 최근 긴급 대책을 수립하고 야미바이토 등 범죄를 예방할 수업과 캠페인을 고교·대학생들을 상대로 추진하고 있다. 경찰도 AI(인공지능)까지 동원해 야미바이토 주모자 색출에 나섰다.

한국에서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청년 실업과 생활고 문제를 고려했을 때 ‘어둠의 아르바이트’를 통한 범죄가 앞으로 확산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없다. 남은 인생을 모조리 날릴 ‘악마의 유혹’에 직면할 청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젊다고 해서 처벌의 경중에 차이를 둬선 안 되겠지만, 이들에게 올바른 준법 사고와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르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손 놓고 보고만 있는다면 경복궁 낙서보다 흉악한 범죄가 시한폭탄처럼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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