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나이에 작품가 92억’ 그래도 갈길 멀다는 작가, 한국 찾았다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5.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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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한국서 개인전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
최대 수십억 신작 7점 선봬
세실리 브라운 ‘Nana’(린넨에 UV 경화 잉크·유채, 210.8×170.2㎝, 2022-2023). 글래드스톤 서울
“지금도 ‘전시’라고 하면 떨리고 긴장된다. 그래서 항상 어떤 전시를 준비하든 오직 나만을 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그린다. 이번 한국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세계 정상급 현대미술 박물관인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 본관에 작품을 전시한 최초의 생존 여성 작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세실리 브라운(55)의 말이다. 수십억원대에 작품이 거래될 정도로 동시대 미술 시장에서 가장 핫한 여성 작가로 꼽히지만, 정작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중견작가의 노련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태도가 계속해서 그를 새로운 도전으로 몰아 세우는 게 아닐까. 지난해 MET에서 열린 기념비적인 개인전에 대해서도 그는 “아직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믿기지 않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실리 브라운은 지난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 이후 13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개인전으로 최근 한국을 처음 찾았다. 오는 6월 8일까지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세실리 브라운: 나나와 다른 이야기들’이다.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2022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회화 신작 7점을 선보인다. 가격은 수억원대에서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브라운은 “한국에서 오랜만에 작품을 전시하게 돼 기쁘다”며 “특히 1층에 전시된 작품 2점은 한국 전시에 가져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먼저 고른 작품”이라고 밝혔다.

두 작품은 2022~2023년에 그린 ‘Nana(나나)’와 ‘The Return of Sweetie(스위티의 귀환)’다. ‘나나’는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1877년작 ‘나나’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네의 ‘나나’는 상류층을 상대하는 매춘부 여성(나나)과 그녀의 꽃단장을 기다리는 신사를 묘사해 당시 큰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브라운은 거울 앞에 다소곳이 서 있는 나나 대신 하의를 벗고 엉덩이를 드러낸 채 침대에 엎드려 뒤를 돌아보는 나나를 그렸다. 빨간 구두도 제멋대로 벗어던진 모습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자유분방함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MET 개인전에서도 유사한 구도의 ‘No You for Me(당신은 나를 위한 사람이 아니다)’(2013)를 선보인 바 있는데, 이번 신작 ‘나나’는 추상화에 가까웠던 전작을 정돈된 구상화로 재해석했다.

‘스위티의 귀환’ 역시 자신의 초기작 ‘스위티’(2001)에 등장했던 자유분방하고 에로틱한 여성(스위티)을 소환해 새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브라운은 “전작 ‘스위티’에서 옷을 벗고 남성 위에 올라탄 야릇한 스위티의 모습을 그렸다면 ‘스위티의 귀환’에서는 중년이 된 스위티가 굉장히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며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모습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여성의 또 다른 면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스위티의 귀환’에서도 스위티는 옷을 벗고 있지만 먹던 음식을 침대에 그냥 두고 편안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다.

이번 전시에서 세실리 브라운은 붓 대신 롤러로만 그린 회화도 처음으로 선보인다. ‘Lavender’s Blue(라벤더의 블루)’다. 굵직한 롤러가 투박하게 지나간 흔적들은 색다른 질감과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작품은 작가가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았던 보라색 계열의 물감을 주로 활용해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브라운은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어떻게 그 많은 색을 선택하는지 묻곤 하는데 이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색과 표현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는 관성에 젖으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며 “내 목표는 항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서도 쉽게 빨리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드러나고 볼수록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세실리 브라운은 데뷔 후 작품 가격이 가장 가파르게 치솟은 작가 중 하나다. 1990년대 후반 도발적인 주제와 생생한 색채를 독특한 손놀림으로 녹여낸 브라운의 파격적인 작품들은 관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특히 에드가 드가 같은 서양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의 작품과 표현기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차용하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자신만의 풍부한 붓터치, 생생한 색채, 유연한 표현 방식을 구축해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40대 후반이었던 지난 2018년에는 회화 작품 ‘Suddenly Last Summer(지난 여름 갑자기)’(1999)가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677만6200달러(약 92억630만원)에 낙찰돼 자신의 최고가를 경신했다. 이는 살아 있는 전 세계 여성 작가의 작품 가운데 두 번째로 비싼 것이다. 생존 여성 작가 중 최고 작품가 기록을 보유한 작가는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95)다. 지난 2022년 뉴욕 필립스 경매에서 회화 작품 ‘Untitled(Nets)’(1959)가 1049만6000달러(약 143억4800만원)에 낙찰됐다. 최근의 미술계 침체기가 지나가면 곧 브라운의 작품도 1000만달러 이상의 가격에 거래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세실리 브라운. 글래드스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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