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수 세기를 넘어 살아있는 뿌리 다리를 만나다

2024. 5. 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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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북동부 메갈라야 여행③
체라푼지 여행의 하이라이트,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

수세기를 이어온 농리앗 마을의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
정글 숲속에 터를 잡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 원주민들은 어느 날 두 강을 잇는 다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차량이 다닐 수 없는 무성한 정글 숲에서 다리 건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우기 시즌 동안 범람하는 강을 건너기 위해선 다리는 반드시 필요했고, 그렇게 고안해낸 것이 ‘나무다리’였다. 그것도 살아있는 뿌리 나무다리. 그것을 보기 위해 멀고 험난한 트레킹을 시작했다.
하이라이트는 멀고 험난한 곳에 있다
체라푼지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일컬어지는 나무 뿌리로 엮어 만든 다리,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Double Decker Living Root Bridge)’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인도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로 꼽히는 이곳 마을까지 오게 만든 이유였다. 비행기와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여러 번 갈아타고서 마침내 체라푼지에 도착했지만 가는 길은 험난했다.
타이르나 마을 전경
그도 그럴 것이 말 그대로 두 발로만 닿을 수 있는, 트레킹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을 이용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애당초 이 머나먼 여정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먼저 택시를 대절했다. 체라푼지 중심부에서 트레킹 시작지점인 타이르나(Tyrna) 마을까지는 약 12km, 차로 30여 분 소요된다. 거리상 멀진 않지만 머리가 어지러울만치 꼬불꼬불한 산길을 수차례 돌고 돌아 야만 마을 초입에 다다른다.
이동하는 동안 깎아지른 절벽 너머로 펼쳐진 안개 자욱한 풍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동시에 트레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트레킹에 초점을 맞춘 여정이라면 체라푼지 중심부보다 타이르나 마을에서의 홈스테이를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끌벅적한 중심부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이 작은 숲 속 마을에 머물면서 마을주민들과 교류하고 연대감을 쌓으며, 나무다리와 주변 폭포, 숲으로 두 발 움직여 자유로이 트레킹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 시작지점에 위치한 상점 모습
사실 트레킹을 마친 뒤 이 사실을 몸소 경험하고선 타이르나 마을에 여장을 풀지 않은 것에, 당일치기로 트레킹을 계획한 데 못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가보지 않은 길은 그곳에 닿기 전까지 절대 알 수 없다. 나무다리를 직접 보기 위해 시작된 트레킹, 두 발에 실린 긴장감이 나쁘지 않았다.
Info 체라푼지 시장이나 경찰서 인근에 주차된 택시기사에게 문의하면 쉽게 택시를 대절할 수 있다. 타이르나 마을까지 왕복 요금은 대략 2,000루피(한화 3만3,000원)다. 택시를 예약할 때 요금 흥정은 필수. 타이르나 마을에는 5~6개의 홈스테이가 있다.

3,000개의 돌계단과 살아있는 뿌리 다리
트레킹은 3,000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는 코스에서 시작된다(좌측사진). 주민들이 엮어 만든 살아있는 뿌리 다리(우측사진)
타이르나 마을에서 나무다리까지는 약 3km, 도보로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한데 지도상에 언급된 소요시간은 거리에 따른 계산일 뿐 실제로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데다 트레킹의 난이도 또한 비교적 높은 편에 속한다. 이유인즉슨 나무다리가 위치한 농리앗(Nongriat) 마을까지 약 3,000개의 돌계단을 거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돌계단의 폭이 가파르게 형성되어 있어 일반적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단 트레킹의 첫 시작은 3,000개 계단을 따라 묵묵히 내려가야 하는 코스. 등산보다 하산이 비교적 용이할 거란 생각은 불과 몇백 개의 돌계단을 내려오고 나서부터 깨졌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점에서 벌써 무릎에 무리가 온 듯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기를 여러 번. 돌계단 주변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쉬었다 가는 수밖에 방도가 없었다.
나무다리로 가는 길에 마주친 수영장
이미 내려온 계단의 수보다 더 많은 수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당장의 사실보다 나를 압도하고 목을 조였던 건 트레킹의 끝자락에 이르러 이 무지막지한 계단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 이토록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마치 일상과도 같은 농리앗 마을사람들. 힘이 풀린 다리를 어르고 달래며 이 계단의 끝까지 반드시 내려가 두 눈으로 직 접 봐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이미 내려온 계단의 수보다 더 많은 수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는 당장의 사실보다 나를 압도하고 목을 조였던 건 트레킹의 끝자락에 이르러 이 무지막지한 계단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토록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농리앗 마을사람들에겐 마치 일상과도 같을 것이다.”
수세기를 이어온 농리앗 마을의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
과거 두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하고 싶었던 이 곳 카시족과 자인티아족은 고무나무 뿌리를 엮어 다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살아 있는 뿌리 다리의 시작이었다. 강 양쪽에 고무나무 두 그루를 심은 뒤 이 나무들이 자라서 2차로 뿌리를 생성하는 데 약 10년이 걸렸고, 이때 생성된 뿌리를 엮어 다리 형태의 견고한 구조를 만든 다음 다시금 그 위에 뿌리를 형성해가는 방식으로 수 세기에 걸쳐 현재의 나무다리가 건설되었다.
20~30년 동안 뿌리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기존 교량에 뿌리를 계속 유도하는 방식으로, 긴 몬순의 영향과 높은 강수량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의 지속적인 보살핌과 애정이 있었기에 현재까지도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해서 뿌리가 자라나는 이 다리는 ‘살아있는 뿌리 다리’라는 닉네임처럼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더욱 강하고 견고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좌)트레킹 코스 곳곳에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간이상점을 만날 수 있다.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 주변 풍경(우)
오늘날 이 다리는 성인 40명의 무게를 동시에 지탱할 수 있을 정도라고.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 외에도 농리앗과 그 주변 마을에는 주민들이 직접 엮어 만든 크고 작은 살아 있는 뿌리 다리가 약 100개에 달한다. 우기 시즌 동안 범람하는 강을 건너기 위한 목적에서 나무다리가 만들어진 경우가 대다수다.
Info 더블 데커 리빙 루트 브리지는 농리앗 주민들이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다리 입구에 위치한 매표소에서 주민들이 입장료를 받는다. 다리와 마을 시설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기 위함이다. 매표소 영업은 월요일부터 토요 일까지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일요일은 문
을 닫는다.

숲속에 꽁꽁 숨은 레인보우 폭포
블루 라군(Blue Lagoon)은 이곳 주민들에게 해변의 역할을 한다.
나무다리를 잇는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가 북쪽으로 약 2.2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름하여 레인보우 폭포(Rainbow Falls). 체력의 한계를 느끼긴 했지만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았다. 건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가 레인보우 폭포의 자랑이라던 한 마을주민의 말을 듣고선 일순간 도망가버린 체력이 다시금 돌아온 듯 했다. 지도상에 검색된 시간은 폭포까지 편도 58분, 곱절의 시간을 예상했지만 다행히도 1시간 30분 만에 폭포에 닿았다.
숲속에 꽁꽁 숨어있는 곳일수록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고생한 시간의 몇 배를 보상해준다. 레인보우 폭포 또한 그랬다. 가이드 없이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의지한 채 홀로 걷는 트레킹은 고립감을 느끼게 했지만 반대로 어쩌면 여정 가운데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임을 자각하게 하는 순간이다. 그것에 기댄 채 하염없이 지도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간 길, 그 끝자락에 다다르자 폭포 입구를 지키고 간 이매점을 운영하는 마을주민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약 100m 높이로 떨어지는 레인보우 목포
“살아 있는 뿌리 다리의 시작이었다. 강 양쪽에 고무나무 두 그루를 심은 뒤 이 나무들이 자라서 2차로 뿌리를 생성하는 데 약 10년이 걸렸고, 이때 생성된 뿌리를 엮어 다리 형태의 견고한 구조를 만든 다음 다시금 그 위에 뿌리를 형성해가는 방식으로 수 세기에 걸쳐 현재의 나무다리가 건설되었다.”
태양 광선으로 인해 폭포 근처에 작은 무지개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레인보우 폭포. 절벽을 따라 약 100m 높이로 떨어지는 강한 물줄기는 시원하다 못해 추위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폭포의 거센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태양 광선의 위치에 따라 무지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술 쇼가 한창 펼쳐졌다.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의 기능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날이 저물기 전 타이르나 마을로 돌아가야 했기에 시간에 쫓기듯 폭포와 작별해야 했던 순간, ‘여기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트레킹의 수고를 깨끗이 지웠다.
나무 숲이 우거진 좁다란 흙 길 트레킹
Info 레인보우 폭포 또한 농리앗 주민들이 관리 및 운영하고 있다. 따로 입장료를 받지는 않으나 나무다리와 같이 운영시간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방문이 가능하며, 일요일은 문을 닫는다. 폭포 입구에 간이매점이 자리하고 있어 물과 음료수, 초콜릿, 과자 등의 간단한 스낵을 구입할 수 있다.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
왔던 길 그대로 반대 방향을 걷는 길에 약간의 여유가 들었다. 조급하게, 외롭게 나아갔던 이 길 위에서 되찾은 여유는 이전에 보지 못한 풍경에까지 닿았다. 같은 길이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 는 심신의 여유, 그리고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는 뿌듯함에서 온다. 그제서야 나 자신에만 초점 맞춰져 있던 시각이 너른 들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고, 숲속에서 일하는 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구슬땀을 흘리며 나무와 돌을 채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어른은 물론 열 살 안팎에 아이들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채집한 돌과 나무를 머리에 받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이들이 시야에서 멀어져 갈 때쯤 또 다른 무리를 만난다. 이미 채집한 돌과 나무를 머리에 받쳐 실어 나르는 이 무리에도 어린 사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무리에게 다가가 확인한 짐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다. 폭포 인근에서 출발해 이들이 거주하는 농리앗 마을 너머까지 2시간가량 오롯이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 매일같이, 평생 동안 이 길을 오가며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그 무게는 어떠한 말로도 숫자로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농리앗 마을에 도착해 카페에서 마신 레몬 주스는 시다 못해 쓴 맛이 혀를 자극했다. 타이르나 마을로 향하는 동안 쓰디쓴 레몬의 맛이 혀 끝에 오래도록 남아 지나 쳐온 마을 주민들의 얼굴과 표정을 상기시켰다. 얼굴을 뒤덮은 주름과 시름, 그럼에도 관광객을 향해 치아가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를 보여준 사람들. 살아 있는 뿌리 다리를 보기 위해 달려온 이 머나먼 여정이 그 사람들의 표정으로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좌로부터) 정글 숲의 대표특산품인 레몬 주스, 농리앗 마을 홈스테이, 농리앗 마을의 로컬 카페
3,000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하나도 빠짐없이 오르는 동안 고달프게 느껴진 심신은 삶의 한탄으로 이어졌고, 그 사이 내 얼굴도 주름과 시름으로 덮였다. 그럼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건 마을 주민들의 그 미소 덕분이었다. 아마도 일회성이 될 트레킹을 이제 막 마쳤다. 그러나 그것으로부터 얻은 가르침은 결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돌계단을 놀이터마냥 뛰어다니는 농리앗 마을 아이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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