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야당의 ‘특검 만능’ 정치, 법원·검찰의 독립성 위협 [장영수 쓴소리 곧은 소리]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2024. 5.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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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도 이재명·조국·황운하 재판 등에서 신뢰와 공정성 잃어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 문제는 달라…미진하면 특검 불가피

(시사저널=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제22대 총선에서 야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정치권의 기류가 혼란스럽다. 더욱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 주요 인사들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한 검찰 수사 및 법원의 재판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수사 및 재판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생각하면, 총선 결과가 검찰 및 법원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런 관측이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돌이켜 보면, 2020년 권순일 전 대법관이 관여했던 이재명 대표의 허위사실 공표 의혹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 등으로 인해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금이 간 지 오래다.

이후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사건에서 나타난 비정상적인 재판 지연으로 인해 국민의 사법 불신은 더욱 심화되었다. 2018년 선거에 대해 2023년에야 비로소 제1심 판결이 나왔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최종심까지 3년8개월 걸렸던 최강욱 전 의원 사건 등은 그러한 사례들의 일부일 뿐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전담수사팀 구성과 신속한 수사를 지시한 이원석 검찰총장(왼쪽 두 번째)이 5월7일 서울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담당 판사' 사직은 법원 전체의 문제

더욱이 김건희 특검뿐만 아니라, 이화영·조국·황운하 등에 대한 특검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 더욱이 제1심 및 제2심 판결이 나온 사건에 대해서까지 특검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거대 야당의 '특검 정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사법에 대한 불신의 심화 및 법원의 권위 실추에서 찾을 수 있다.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고, 법원의 권위가 살아있었다면 법원의 정치인 재판에 대한 우려가 이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법원이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을 하겠다는 발상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사건을 통해 국민의 사법 불신은 정치 불신 못지않을 정도로 커졌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인해 사법 불신이 크게 촉발되었고, 이후 김명수 사법부에서의 코드인사 및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불신을 더욱 키웠다. 이에 더해 일부 법관의 총선 입후보, 이재명 재판 담당 판사의 사직 등은 특정 법관의 문제가 아닌 법원 조직 전체에 대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기 쉽다. 국민의 불신과 사법부의 권위 실추로 인해 사법부의 독립이 흔들리면 정치권의 압력이 더욱 쉽게 작용할 수 있고, 이는 또다시 사법 불신과 권위 실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국가기관이 그렇지만, 특히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 없이는 제 기능이 불가능하다. 삼권분립의 시스템 속에서 국회와 정부는 정치권력을 갖고 있지만, 사법부는 국회와 정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질 뿐이고, 그나마 국민의 지지와 신뢰가 없는 사법적 통제는 쉽게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법원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할 것이다. 모든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깨뜨리지 않을 정도의 도덕적 엄격성을 보여야 하며, 재판의 공정성뿐만 아니라, 재판 지연을 최소화하는 데도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야 한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자칫 법원이 법조삼륜 중에서 가장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위기임을 자각해야 한다.

재판의 공정성은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재판의 공정성을 인정할 때, 사법 불신도 개선될 수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법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보루

국민이 주목하는 큰 사건을 공정하게 재판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재판의 통일성이며, 어떤 판사가 재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국민이 느끼지 못할 때, 법원의 판결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의 차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은 법관으로서의 '직업적 양심', 즉 헌법과 법률에 따른 재판을 뜻하는 것이지, 개인적 소신에 따라 재판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조국 대표에 대해 제2심 판결에서 실형 선고를 내리면서 법정 구속을 하지 않았던 것도 (다른 사건들과 비교해) 공정한 재판이었는지 문제 될 수 있으며, 정치인 사건을 기피하는 판사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정치인 사건들에 대한 재판 지연은 왜 일반 사건에 비해 더 심한가?

특검은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문제 되는 상황에서 검찰 수사의 미진함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정부의 중요 정책에 대한 검찰 수사가 미진한 경우, 검찰총장 부인의 옷 로비 사건처럼 검찰의 주요 간부가 연루된 경우, 검찰 자체의 비리가 문제 되는 경우 등이 전형적인 특검의 대상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 된 이화영·조국·황운하 등에 대한 특검은 법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특검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검찰 수사의 미진이 아니라, 검찰의 과잉 수사, 왜곡 수사 등이 문제 된다면, 이는 법원의 재판을 통해 밝히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건희 특검은 (과연 수사를 통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특검의 본질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부인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화영 등에 대한 특검은 거야의 입법 폭주일 뿐이다.

민주헌법의 양대 기본원리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있으며, 양자는 상호보완적이다. 법치의 통제 없는 민주는 다수의 횡포가 되기 쉽고, 민주 없는 법치는 맹목이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의 이름으로 국가를 파괴할 수 있는 포퓰리즘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법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사법부 코드인사 및 국민의 사법 불신 등으로 인해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빠른 시일 내에 사법부가 정상화되어 법치의 수호자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에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남미의 베네수엘라 등과 같이 몰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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