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 상실한 '신통기획'… 곳곳에서 반대 움직임

정영희 기자 2024. 5. 10.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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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1동, 투기 세력 진입에 재개발 난관
'여의도 1호 재건축' 시범 신통기획 거부
최근 서울 강남구 반포1동 3구역과 서대문구 남가좌동 337-8 일대 일부 주민들이 잇따라 서울시에 신속통합기획 후보지 지정을 둔 반대 의견을 냈다./사진=뉴시스
서울시가 빠른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도입한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 후보지 지정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가운데 일부 주민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투기 세력이 진입하거나 추가 분담금 폭탄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대도 있지만 낮은 개발이익을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도 목격된다.

1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반포1동 3구역 주민 60여명은 서울시에 신통기획 재개발 후보지 제외 의사를 전달했다. 일부 주민이 불법 투기꾼들과 손을 잡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논현역 방면 언구비공원 일대 노후주택가와 상가 등을 폭넓게 포함한 해당 구역은 지난해 주민설명회를 열고 2400가구 규모 랜드마크 아파트를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바 있다. 반포1동은 2022년 모아타운 사업을 추진했지만 소유주와 단독·다가구 주택 소유주들의 반대에 가로막혀 좌절됐다. 이후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되며 일반 재개발로의 기반을 다졌다.

반포1동 3구역에선 신통기획이 주민 의사와 반대로 추진되고 있고 노후도 기준도 맞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포1동 단독·다세대주택의 노후도는 건물 상태에 따라 20~70%로 평균 60%를 상회한다. 이 가운데 전체 주택의 27%에 해당하는 다세대주택 99채의 평균 노후도는 20%대다. 이들 중 20개만 노후도 60%를 넘긴 상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시정비법')은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시의 노후도 요건을 60% 이상(관리지역·재정비촉진지구 50%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정비구역 내 다세대주택 5채 중 4채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아 주거에 문제가 없는 상태다.

반포1동 주민 A씨는 "땅값이 높은 강남에서 아파트 한 채를 얻겠다고 불필요한 재개발을 하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라며 "주민 의견에 대한 조사 없이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타지로 이전해야 한다는 불안에 떨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신통기획 후보지 선정 시 반드시 대상지 내 건물 노후도를 사전에 확인하고 법적 노후도 기준에 미달시 투기로 간주해야 한다는 의견을 서울시청에 제출했다. 실질적인 노후도와 관계 없이 투기를 조장하는 행위를 막고 실거주 원주민들의 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서울시 관계자는 "신통기획에서의 투기 방지를 위해 주택 분양권리가 결정되는 권리산정기준일을 후보지 공모일로 변경하고 향후 토지거래허가구역·건축허가제한구역으로도 지정한다"며 "이외의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 주체인 주민들이 신통기획에 반대 목소리를 낸 사례는 서울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지난달 서대문구 남가좌동 337-8 일대 주민들이 모인 신속통합기획저지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서대문구청에 신통기획 해제신청서를 접수했다.

일부 주민들이 신통기획 시행 반대 의사를 표현하며 의견 조율이 원활하지 않자 구청은 지난해 7~8월 관련 주민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토지 등 소유자(총 705명) 기준 ▲찬성 30.8%(217명) ▲반대 21.4%(151명) ▲미응답 42.0%(296명)로 나타났다. 면적 기준 ▲찬성 19.2% ▲반대 27.5% ▲미응답 31.7%다.

현행법상 토지 등 소유자 3분의 2, 토지면적 2분의 1 이상 토지소유자 동의가 있어야 정비사업 시행이 가능하다. 신통기획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업 추진 기간 동안 재산권 행사 권리를 잃게 돼 얻게 되는 불이익은 물론이고 재개발을 둘러싼 주민들의 고소·고발 등으로 손해가 크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처럼 주민 사이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도 서울시는 해당 지역을 지난해 12월 신통기획 2차 후보지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약 30%의 주민이 신통기획 반대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은 반대 여론이 높은 2만2966㎡가량의 구역을 일부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구가 대상지를 45개 블록으로 구분해 조사한 결과 반대 비율 50% 이상 블록은 증가로변을 따라 한쪽에 쏠린 상태다.


개발이익만 노린 신통기획으로 변질


서울시는 올 초 반대 비율이 높아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한 곳의 입안 재검토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변경한 바 있다. 토지 등 소유자 20% 이상, 공공재개발 단독 시행 방식의 경우 25% 이상이 반대하면 입안 재검토가 진행될 수 있다. 입안권자인 구청장이 해당 지역의 현황, 주민동향, 정비 필요성 등을 종합 검토한 뒤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신통기획안이 확정된 경우 얘기가 다르다. 신통기획은 정비계획 수립단계에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수권분과위원회와 사업 시행계획을 통합심의해 사업 기간을 대폭 줄이는 방식이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완료된 이후 신통기획 철회를 요청하면 정비구역 변경이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이때는 사업 기간이 대폭 지연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대표 예시가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시범아파트다. 1971년 준공돼 올해 52년차인 시범아파트는 2021년 신통기획 신청으로 사업에 속도가 붙은 후 이듬해 최고 65층으로 재탄생하는 기획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최근 시범 입주민들은 신통기획에 반대하며 철회 의사까지 밝히고 있다.

서울시가 신통기획 조건으로 단지 내 노인 요양시설 건립을 제안했지만 같은 신통기획을 진행한 한양아파트의 경우 지하철 역사와 공공청사가 들어서 비교된다는 이유다. 이에 서울시는 각 대상지에 가장 필요한 시설을 조사해 제안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신통기획을 둔 후보지·대상지 주민들과 서울시·구청과의 갈등 재발을 막기 위해 중간 지원조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재개발사업의 공익 효과와 더불어 사업 초기 어려움을 고려할 때 구청 내 전담조직과 더불어 도시재생사업처럼 전문가들로 구성된 별도의 조직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며 "도시계획, 건축, 감정평가 등과 관련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간 지원조직에서 전문가 컨설팅을 제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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