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이해진, 교활한 孫正義… 라인, 5년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홍길용의 화식열전]

2024. 5. 1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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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한국기업 아닌 일본기업 인정 받으려
‘LINE+야후재팬’ 2019년 공동경영 체제 불구
소프트뱅크 계열사 편입…네이버는 지배 포기
日정부 비호…경영진 네이버 주주권도 무시해
지분매각 안 해도 주주권 유명무실…협상력 ↓
시가 8조원 대 주식 제 값 받고 팔기 어려울듯
동남아 등 해외사업 계열사 경영권도 회수해야
韓정부의 무기력, 전문가 집단의 무지도 드러나

네이버 글로벌비즈니스의 핵심인 라인야후가 일본 소프트뱅크로 넘어갈 모양이다. ‘강탈’이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가 화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일이 벌어졌을 때 배후를 알려면 누가 이익을 얻을 지 파악하면 된다. 한비자가 정리한 유반(有反)의 지혜다. 라인야후 사태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이는 일본 소프트뱅크다. 궁지에 몰린 네이버를 상대로 싼 값에 라인야후를 통째로 삼킬 기회를 갖게 됐다.

▶5년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네이버, 라인 소뱅 계열사로 넘겨

지금은 일본 정부가 네이버를 압박하는 모양새지만 사실 큰 그림은 5년전 소프트뱅크가 그린 것으로 보인다. 2019년까지 네이버는 라인 메신저로 일본을 석권한다. 이에 당시 일본 포털사이트 1위인 소프트뱅크의 야후재팬이 경영통합을 제의한다. 합작사를 세우고 그 아래 라인과 야후재팬을 두자는 제안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손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의기투합했다.

A홀딩스라는 합작회사가 설립되고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나눴다. 이 회사가 라인과 야후재팬을 지배하는 Z홀딩스 지분65.3%을 보유했다. A홀딩스 주주구성은 소프트뱅크 50%, 네이버 42.25%, 네어버허브 7.75%다. 네이버허브가 네이버의 100% 자회사지만 엄연히 최대주주는 소프트뱅크다. A홀딩스를 네이버가 아닌 소프트뱅크 계열사로 두기로 한 점이 중요하다.

(자료:일본 소프트뱅크 2023회계연도 연차보고서)

소프트뱅크 연차보고서를 보면 A홀딩스와 라인야후(구 Z홀딩스)를 모두 계열사로 분류하고 있다. 네이버 감사보고서를 보면 A홀딩스는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으로 분류됐다.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2023년 Z홀딩스와 라인, 야후재팬이 합쳐지며 라인과 야후재팬의 구분이 사라졌다. 네이버는 이 과정에서 주요한 해외사업 계열사들이 라인야후 아래에 놔둔다.

▶ 이해진 “라인은 일본기업” 노력했지만…결과는 ‘네이버 세력 축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라인을 통한 글로벌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려 했고 그 교두보가 일본이었다. 일본 내에서 라인의 국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이 창업자는 라인이 일본 기업임을 강조했다. 일본기업이 대주주인 롯데가 한국에서 한국 기업임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라인계열을 소프트뱅크 아래에 두도록 한 결정도 라인을 일본 기업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볼 수도 있다.

네이버가 자발적으로 A홀딩스 지분을 포기할 리는 없다. 다만 2가지 압박이 부담이다. 먼저 라인야후 이사회가 완전히 일본 측으로 넘어갔다. 이사회가 대주주인 네이버를 상대로 지배구조 변경을 요구할 정도면 더 이상 주주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라인야후 이사회는 대주주가 선임하는 이사 수를 4명에서 2명으로 줄이는 대신 사외이사는 4명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주주의 힘이 약해지면 경영권 무게는 이사회에 쏠리게 된다. 일본 정부의 입김이 미치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과반을 차지하는 그림이다. 라인야후가 주장하는 것도 경영(주주)과 집행(이사회)의 분리다. 2021년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 행정지도를 한 일본 정부는 올해에도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자 행정지도에 나섰다. 이번에는 사실상 라인야후 경영에서 네이버를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 정부의 암묵적 지원 아래 라인야후 이사회를 일본 측에서 장악하면 그 아래 위치한 네이버의 주요 계열사들에 대한 통제권도 이들에 넘어가게 된다.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 50%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일본 정부와 맞서는 부담과 함께 라인야후 아래에 남겨진 글로벌 사업 관련 주요 계열사들의 경영권을 회수하는 작업까지 진행해야한다.

▶ 소프트뱅크 입장선 ‘덫’에 결린 사냥감…큰 돈 안 들일듯

네이버가 궁지에 몰린 9일 마침내 소프트뱅크가 전면에 등장했다. 네이버와 A홀딩스 지분구조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면서 7월 초라는 타결 예상시점까지 밝혔다. 협상 상대인 네이버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마사요시 손 회장은 과거 야후재팬을 인수할 때도 미국 야후 본사와 공동경영 체제를 구축한 후 미국 측 지분을 인수해 단독 지배력을 확보했다.

(자료:금융감독원 네이버 공시 정리)

A홀딩스의 라인야후 지분가치는 현재 시가로 15~16조원이다. 네이버 몫은 약 8조원이다. 웃돈(premium)까지 인정한다면 약 10조원이다. 소프트뱅크가 10조원의 현금을 내고 이 지분을 살 가능성은 낮다. 라인야후 아래 네이버 계열사 통제권을 넘기는 대가로 값을 깎을 수도 있고, 현금 대신 소프트뱅크 주식으로 값을 치를 수도 있다.

소프트뱅크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40% 시가총액은 약 9조2600억엔이다. 신주를 발행해 10% 정도 지분률만 넘기면 경영권 위협 없이 네이버를 파트너로 유치하면서 A홀딩스를 완전 지배할 수 있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목돈도 챙기지 못하고 일본에서 쫓기듯 철수하기 보다는 소프트뱅크를 새로운 교두보로 두고 다음 기회를 모색하는 선택도 고려할 만하다. 라인의 핵심인 일본을 배제한 채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관련 비즈니스를 진행하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 국내선 아무도 눈치 못채…일본은 정부·소뱅 손발이 척척

2019년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제휴 당시 국내외 언론은 물론 주요 증권사들도 긍정적 평가를 쏟아냈다. 네이버는 이를 바탕으로 한 글로벌 사업 비전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애지중지 키운 라인 비즈니스가 일본 소프트뱅크에 송두리째 넘어가게 됐다. 라인에 열세이던 소프트뱅크는 단숨에 일본의 모바일 및 인터넷 비즈니스의 공룡이 될 기회를 잡았다. 온 나라가 통째로 속은 꼴이 됐다.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와 네이버는 속수무책인 듯하다. 일본의 무리한 요구와 소프트뱅크의 교활한 술책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사태가 벌어지게 한 빌미 두 가지를 제공한 점도 반성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우리 기업이 보유한 개인정보의 중국 유출 위험을 단속하지 못했다. 네이버는 공동경영 지배구조의 약점을 방치했다.

일본 총무상은 10일 라인야후에 자본 관계 재검토를 요구한 것과 관련해 “경영권 관점에서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자본 지배를 상당 정도 받는 관계와 그룹 전체 보안 거버넌스의 본질적 재검토를 요구했다”고 했다. 소프트뱅크가 이미 지분매입 협상에 나선 마당이다. 총무성 발언은 어불성설이다.

이날 네이버는 지분매각 가능성을 인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날 “일본 정부는 행정지도에 지분매각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우리 기업에 지분매각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첫 공식입장을 내놨다. 지분을 팔 테니 다그치지만 말라는 게 우리 측 입장인 셈이다.

곰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을 흐리게 만드는 방법을 혼수모어(混水摸魚)라고 한다. 불 난 집을 터는 도둑질 전략을 진화타겁(趁火打劫)이라고 한다. 토종 모바일 메신저가 없었던 일본 입장에서는 소프트뱅크라는 호랑이를 앞세워 네이버라는 승냥이를 잡았으니 구호탕랑(驅虎呑狼)까지 통한 모양새다. 적의 계책에 완전히 말려 든 전장에서 승기를 잡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참패만 면하기 바랄 뿐이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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