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보다 중요한 것[김유찬의 실용재정](39)

2024. 5. 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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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회담 종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만남에서 이 대표는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의 필요성을 꺼냈다고 한다. 소요예산을 13조원으로 추산하면서 물가 상승으로 힘들어하는 서민들이 많은 만큼 추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현재 편성된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잘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 국민 현금지원에 대해 여론이 부정적이고 사회적 약자를 표적화해서 지원하는 것이 재정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현재 경제 상황은 단기적 경기사이클에서 약간 숨통이 트이는 듯한 국면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을 0.4%포인트 상향해 2.6%로 수정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1%포인트 낮춘 2.6%로 잡았다. OECD의 수정 전망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1.3% 성장한 것에 상응한다.

기획재정부는 1분기 한국 경제가 성장경로에 들어왔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수요 회복에 따라 수출이 늘면서 미약했던 내수가 하반기 이후 함께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수출증가가 하반기 내수를 회복시켜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수출 경기와 내수와의 연결고리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수출품의 국내 부가가치 창출 비율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그래도 수출이 회복된다면 전국민재난지원금을 배포할 정도의 시급한 국면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 한국 경제, 다층·구조적 위기 직면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정작 중요한 문제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있다. 한국을 둘러싼 다층적인 구조적 위기의 문제다. 한국 경제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위기 중에 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국가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사회적으로는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완화정책과 이에 기인한 자산 버블(거품)의 영향이 민생위기와 주거 불안 등의 모습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경제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시기와 원천을 예측하기 어려운 단기적 위기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가계부채로 인한 국내발 금융위기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미국에 경기침체가 임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달러나 미국 국채의 국제적 신뢰도 저하가 일으킬 수 있는 금융시장의 파급 효과는 그 파괴성의 규모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모형 문제도 심각하다. 수출 의존 비중이 높은 경우 대외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부침이 커 안정적인 경제 운영이 어렵다. 몇몇 주력 업종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반도체나 2차전지 같은 한국의 주력업종에 대해 경제 규모가 큰 모든 국가가 자국 내 생산을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세계 경제의 변화된 구조로 인해 몇몇 주력 종목의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운영하는 한국의 방식은 위험하다. 한 분야에 치우친 산업발전은 커다란 위험으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후위기 대응 국가전략의 수립과 단계적 실행, 불평등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의 극복을 포함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오래갈 수 있는 심각한 경제 침체기에 한국사회의 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효율적인 긴급 구조책도 준비해야 한다. 심각한 경제침체가 계속되면 인플레이션이나 국가부채를 걱정할 단계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시기처럼 모든 것을 제치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우선된다. 이런 시기가 되면 재난지원금 수십만원을 1회 배분하는 것으로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 매달 그 두세 배의 금액을 1년 정도 제공해야 한다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제공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생각하기 힘들다. 그 때문에 지금 바로 해야 하는 일은 진짜 어려운 사람들을 가려내 지원할 수 있는 선별적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다.

■ 선별적 재난지원 시스템 구축 시급

코로나19 시기 미국은 어려운 사람들을 가려내 지원할 수 있는 선별적 체계를 갖추지 못했기에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배분했다. 이와 달리 독일은 고용보험체계를 이용해 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하고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재택근무 등을 통해 근무하며 정상적인 급여를 받아 이들에게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었다.

늘어난 실업자와 근무시간을 단축한 노동자에 대한 지원으로 고용보험 재정이 곤란을 겪게 돼 독일 정부는 필요한 만큼 고용보험에 재정지원을 한 것이다. 추가로 과세 당국의 자료를 통해 사업자들에 대한 재정 및 금융지원도 있었다. 전 국민에 대한 지원에 비해 이런 시스템을 통해 재난지원이 필요한 이들을 파악하고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재원 투입 규모가 작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깊은 지원을 할 수 있다.

조세체계가 종합소득세 체계를 완비하고 있고 이 체계에 의해 모든 이들의 소득이 실시간으로 파악된다면, 이 체계는 납세자들에 대한 과세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생계를 유지하기에 소득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파악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실시간은 1~2개월의 격차를 두는 정도를 뜻한다. 어떤 사람의 2024년 5월 소득이 최소한의 생계유지에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을 국세통합전산망에서 같은 해 7월경에는 포착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정부는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한 경제위기 시기에 지원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선별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국세청은 아직 그런 실시간 소득 파악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대안으로는 고용보험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된 경우 고용보험 시스템을 통해 재난지원금 배분이 가능하다. 문제는 한국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법적으로 근로자 신분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고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대가를 받기로 한 노무 제공자로서 근로자 성격이 뚜렷한 사람들이다.

보험설계사 등 14개 적용대상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04만4000명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이 특고종사자들을 고용보험에 포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회에서 입법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현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실시간 소득 파악과 전국민고용보험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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