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식품 먹듯, 익숙해진 가공현실[IT 칼럼]
가공식품이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좀처럼 줄이기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더 빨리 식욕을 충족시키는 데 그만한 것이 없어서겠지만, 그 대가는 보통 나중에 치른다. 그런데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식품뿐만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는 현실 또한 가공된 것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직접 살아가면서 느끼는 인생 대신, 연애를 하고 가정을 꾸리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까지 유튜브나 SNS 속 가공된 리얼리티 쇼를 보며 대리만족하곤 한다.
네트워크와 기자재가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드라마나 영화보다 훨씬 더 쉽게 현실을 녹화·재생할 수 있게 된 가공 공정 덕이다. 발로 뛰는 취재 대신 소셜미디어에 드러난 유명인의 찰나적 감상문을 받아 쓰거나, 심지어 유튜브를 요약하는 등 가공현실의 배포자로 스스로를 격하하는 언론도 있다. 그렇게 악화에 의해 양화가 구축돼도 가공식품의 맛에 익숙해지듯 범람하는 가공현실에 사람들은 별 신경을 안 쓸지도 모른다. 적당한 가공현실이 팍팍한 현실을 가려준다면 지친 이들에게는 그것으로 족할지도 모른다. 진짜 같은 가짜다. 필요한 것이 그것이라면 그것을 드리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바로 가공현실 공장이다.
사이버 보안업체 임퍼바의 새 보고서에 이 우려가 담겨 있다. 지난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절반에 가까운 49.6%가 봇과 같은 자동화 기계에서 발생했다. 인터넷을 사람 냄새나던 공론의 장으로 기억하는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현실은 이제 절반의 확률로 사람이 만들지 않은 정보로 가공되는 삶이다. 그 비결은 당연하게도 그 명칭마저 적나라한 생성형 AI에 있다. 이제 가공을 하기 위해 사람이 궁리할 필요도 없다. 글과 음성에 이어 동영상까지 만든다. 콘텐츠마다 수시로 저거 사람이 한 거냐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나 스스로에 놀라면서 워런 버핏이 AI는 현대의 핵폭탄이라고 말한 뜻을 알 것 같다. 딥페이크나 사이버 피싱 등 현실을 가공하는 일은 악행에도 요긴하다.
인터넷 콘텐츠의 절반은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올린 글을 조회하는 이들의 절반은 사람이 아닌 시대다. 우리가 그럴듯한 맛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가공식품을 집어들 듯, 봇 군단의 가공현실도 대강 그럴듯하다. 인간은 가공된 이야기를 좋아한다. 종교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가며 이야기를 집단적으로 추종하는 유일한 생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빚어내는 일은 오로지 사람의 몫이었고, 사람들이 키워갔다. 하지만 이제 공장에서 가공된 현실이라도 별 거리낌 없이 섭취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 맞춤형이라서다.
X(구 트위터)가 봇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전면 유료화하겠다거나, 생성형 AI로 작업한 웹툰을 독자가 보이콧한다거나 하는 등 다들 거부감을 드러내며 뭐라도 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럴듯한 해법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글도, 그림도, 음악도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기 시작한 이상 이미 100% 수제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공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서서히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조금씩 덜 필요로 할 수 있다면, 인간의 역할 또한 축소될 수 있다. 그리고 대량생산되는 가공현실은 우리가 누렸을 수도 있었던 그 어떤 현실을 어느새 대신할 수도 있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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