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기후변화[가깝고도 먼 아세안](29)

2024. 5. 1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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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남부 띠엔장 지역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고 있는 모습/Phuc Ka


‘아시아가 불타고 있다.’

지난 4월 말 전 세계 언론은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한 아시아 국가들의 폭염 피해를 일제히 보도했다. 미얀마 중부 지역 마궤주는 48.2도까지 치솟아 관측 이래 5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접 국가 태국의 일부 지역도 44.2도까지 관측됐고, 수도 방콕은 40도까지 올랐다. 4월 25일 방콕 당국은 습도까지 더해져 체감온도는 52도까지 달한다며 폭염 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필리핀에서는 수도 마닐라 기온이 38.8도까지 올랐고, 냉방시설을 갖추진 못한 대부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실신하거나 현기증 증세가 늘어나자 4월 29~30일 이틀간 전국 4만7000여개 학교가 임시 휴교했다.

4월 28일 베트남에서는 올해 가장 높은 44도를 기록했고, 같은 날 남부 동나이 지역 저수지에서는 폭염으로 200만t에 달하는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베트남 남부 메콩강 삼각주 지역은 가뭄으로 메콩강 수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바닷물 유입이 더 많아져 민물과 농지 염류화 피해가 극심해지고 있다. 남부 벤째성과 띠엔장성에서는 높아진 염분 농도 때문에 세탁기 사용도 불가능할 정도로 염류화가 심각해졌다. 이 지역 산업단지에 공업용수는 물론 식수마저 공급하지 못하게 되자 4월 6일 베트남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불평등한 폭염 피해


유럽연합(EU) 산하 기후변화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는 2023년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아세안 주요 6개국의 일일기온을 확인해 보니 거의 매일 40도 내외의 고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건강에 문제가 있거나 노약자들에게는 심각하게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세안 지역 빈민층은 에어컨을 구매할 여력이 낮아 폭염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2021년 가전제품의 효율성과 에너지 접근성에 관한 연구와 홍보에 주력하는 비정부기구 클래스프(CLASP)의 보고에 나온 아세안 주요 6개국의 에어컨 보급률에는 폭염 피해 불평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21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에어컨 보급률은 80%가 넘는데 태국은 55%, 베트남은 32%, 필리핀은 25%, 인도네시아는 15%에 그쳤다. 세계 최대 빈국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는 1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으로 에어컨 없이 살아가는 수십억의 아시아 인구가 에어컨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폭염 피해 불평등’은 완화될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그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에어컨도 없어 폭염으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도 못 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지 세계 곳곳에서 비를 기원하는 종교의식이 열렸다. AFP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가톨릭 주교들은 폭염이 가시고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특별 기도문을 발표하고, 신자들에게 비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릴 것을 당부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는 이슬람신자 1000여명이 모여 비를 기원하는 의식을 행했고,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규모의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태국 중부 나콘사완 마을에서도 기우제를 위해 일본 만화 주인공 ‘도라에몽’을 우리에 가두고 물을 뿌리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에게 물을 뿌리고 고양이 울음소리에 비가 내린다는 속설에서 기인한 마을 전통 기우제인데 동물 학대 비난 때문에 고양이 캐릭터인 헬로키티 인형이나 도라에몽으로 대체하고 있다. 극심한 폭염과 가뭄에 사람들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불안감이 표출된 것이다.

2024년 4월 남아시아 열파 현상/Windy.com


기후변화 가장 큰 피해자는 아시아


2023년 4월 23일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큰 피해지역은 아시아’라는 제목으로 ‘2023년 아시아 기후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WMO는 ‘아시아는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온난화되고 있다고 경고하며 이 추세는 지난 30년간의 평균기온 상승폭이 직전 30년의 2배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아시아 곳곳에서 수해와 가뭄이 빈발해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22년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가 발생해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으며, 전 국민의 15%에 해당하는 약 3300만명이 수해를 입었다. 2023년 8월에는 중국 베이징과 허베이성에 140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같은 해 9월에는 홍콩에 139년 만의 대폭우가 쏟아져 홍콩 증시가 휴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같은 달 북부 아프리카 리비아에서는 대홍수로 댐이 무너지면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1만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책임이 적은 아시아 지역이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다. 정작 일찍이 기후환경을 파괴하며 선진 문명을 이룩한 유럽과 북미는 피해에서 한 발 비켜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는 지난 4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당장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이더라도 기후변화로 세계 경제는 2050년까지 19% 소득 감소가 확실하다”고 밝혔다. PIK의 레오니 웬즈(Leonie Wenz) 박사는 “기후변화는 독일, 프랑스, 미국 등 고도로 발전된 국가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향후 25년 이내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닌 선진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유럽 선진국과 미국은 재생에너지 사용 제품만을 수입하겠다며 탄소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유럽과 미국은 또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공정에너지 전환 이행 파트너십(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을 체결해 재생에너지 사업에 수백억달러를 원조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시아 기후위기를 극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선진국들은 가난한 아시아 국가들에 효율적인 재생에너지 기술을 무상 전수하고 적극적으로 보급해야 한다. 선진국들의 과감한 기득권 포기가 없다면 어느 유명 드라마의 대사처럼 우리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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