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여행에 미치면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23]
지난 주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아부다비로 갈 일이 생겼다. 아부다비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에 가기 위해서는 두바이 메트로를 타고 우리나라로 치면 고속버스터미널 역으로 가야만 한다. 내려야 할 역 이름을 보니깐 ‘이븐 바투타 역(Ibn Battuta Metro Station)’이라고 써져 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웅장해졌다.
서기 1325년 모로코의 탕헤르에서 한 청년이 여행길에 올랐다. 여러 차례의 여행을 통해 러시아와 말리, 시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 탄자니아, 터키, 페르시아 및 아랍 전역을 포함해 당시 알려진 세계를 두루 다녔다. 평생에 걸쳐 약 12만700km에 달하는 거리를 여행했다. 증기 기관이 발명되기 훨씬 전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븐 바투타(1304~1369),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행자의 이름이다.
당시는 이슬람 사회의 전성기였다.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을 거쳐 인도까지 이슬람교가 널리 퍼져 있었기에 이슬람 학자이자 법관인 이븐 바투타는 어디를 가나 존경받았다. 또 당시 이슬람교는 같은 이슬람끼리는 국적이 달라도 서로 돕고 베푸는 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이 문화적 전통이 이븐 바투타의 여행에 도움이 된 것이다. 또 이슬람 사이에서 상업과 무역이 크게 발달해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고 교통도 나름 안정적이었다.
처음에 이븐 바투타는 일행과 함께 북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 그곳에서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등대를 목격했다. 안타깝게도 그 당시 등대의 일부분은 이미 허물어진 상태였다.
그는 수도인 카이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선박과 정원, 시장, 종교 건물, 생활상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카이로를 가리켜 “수많은 건물이 끝없이 들어선 곳, 아름다움과 위엄이 탁월한 곳, 온갖 여행객이 드나드는 곳,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발길을 멈추는 곳, 넘실대는 파도처럼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종교 지도자와 학자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을 만나 후원을 받았는데, 훗날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도 그런 식으로 지원을 받았다. 카이로에서 나일 강을 따라 이집트로 가면서 종교인들과 수도원으로부터도 후한 대접을 받았다. 또한 당시 이슬람 도시에 흔히 있었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여관과 학교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는 원래 사막을 통과하여 홍해로 가서 배를 타고 아라비아 서부 지역으로 건너간 다음,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원이 있는 메디나에 들러 메카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계획을 수정하여 카이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그가 여행을 그만뒀다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여행가’란 칭호는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두 번째 여정은 1332년에 시작되어 1347년까지 무려 15년이나 걸렸다. 이 여행 도중에 그는 인도와 중국을 다녀왔다.
우선 메카에서 홍해를 건너 이집트로 들어갔다가 다시 팔레스타인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지났고, 터키에 도착한다. 이후 터키에서 흑해 남부 항구 시노프에 도착해 오늘날 우크라이나 케르치에 도착했다.
이븐 바투타는 우크라이나에서 당시 몽골이 세운 킵차크 한국의 술탄 무함마드 우즈베크를 알현했다. 당시 술탄의 아내는 비잔틴(동로마제국)의 공주였는데, 이븐 바투타는 술탄 부인의 친정 방문을 수행해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비잔틴 황제 안드로니쿠스 3세를 알현한다.
이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육로로 거쳐 무슬림 술탄이 다스리는 인도 델리로 향했다. 이 여행에서 이븐 바투타는 킵차크 한국 술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델리의 술탄은 이븐 바투타를 크게 반기며 왕궁의 법관으로 채용했으며, 나중에는 중국의 황제에게 보내는 사절단의 대표로 삼았다. 1342년에 이븐 바투타는 사절단 일행과 함께 델리를 떠나 육로로 동쪽으로 향하는데, 그 와중에 인도인 폭도에게 습격을 당하고 낙오되어 위기를 겪게 된다.
위기를 극복한 후 다시 중국으로 떠나려다 폭풍을 만나 인도양에 있는 몰디브에 도착한다. 그는 그곳에서 법관으로 일하며 아내를 네 명이나 얻는다. 하지만 그곳의 유력자와의 갈등으로 이듬해에 몰디브 제도를 떠나 이번에는 인도 동남부에 위치한 오늘날의 스리랑카로 갔다.
스리랑카에서 인도로 돌아온후 다시 한 번 중국행을 시도하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거치는 여행 끝에 오늘날의 푸젠성 취안저우에 도착했다. 그는 광저우와 항저우를 거쳐 수도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는 당시 원나라 황제였던 순제를 알현하지는 못했다고 여행기에 썼다(하지만 그의 중국 여행에 대해 사실과 어긋나는 대목이 많아 그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인도에 돌아온 이븐 바투타는 다시 귀향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해로로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항구 자파르에 도착한 후 육로로 아스파한, 바그다드, 다마스쿠스를 거쳐 카이로에 도착하고, 다시 메카를 들른 후에 배를 타고 귀향 길에 오른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섬에 들렀다가, 고향인 모로코로 돌아갔다.
그는 귀향한후 잠시 쉬다가 1351년부터 다시 여행을 떠나 오늘날의 에스파냐 남부를 여행했고, 그는 스페인에서 돌아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여행했다. 세 번째 여행은 그의 여행기에 아주 짧게 처리되어 있다. 이븐 바투타는 1354년에 모로코로 돌아온다.
모로코의 술탄은 이븐 바투타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행 내용을 책으로 쓰게 했다. 이제 그의 평생의 행적을 구전이 아닌 인쇄물로 생생히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행기의 본래 제목은 “여러 도시의 경이로움과 여행의 신비로움을 열망하는 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븐 바투타가 이야기를 하고 작가 이븐 주자이가 받아썼다.
그는 평생에 걸쳐 곳곳에서 온 사람들과 사귀며 같은 길을 함께 걸었다. 바투타는 운도 좋았다. 산적에게 모든 재산을 털리고 직접 전쟁에 참전한 적도 있다. 항해 중에 배가 뒤집혀 애써 모았던 자료가 소실되는 시련도 겪었다. 장기간의 여행 동안 동료들은 모두 죽었어도 그가 끝내 살아남은 비결은 남에 대한 존중. 독실한 무슬림임에도 바투타는 예수에 대해 말할 때면 ‘그에게 평화를’이라는 축원을 달았다. 기독교인들도 그를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했다.
오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이븐 바투타의 말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흑사병으로 죽은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생을 어떻게 마감했는지도 모르는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여행기’가 인류의 역사에 남긴 거대한 흔적 때문이다.
그의 사후 유럽인들은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이래 굳어져 온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는 너무 더워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세계관이 바투타로 인해 깨졌다. 동방견문록을 반신반의하던 유럽인들은 바투타의 여행기를 접한 뒤 비로소 배를 타고 아프리카 해안을 돌아 희망봉과 인도항로를 찾아냈다. 바투타의 발에서 대항해의 시대가 열리고 오늘날 글로벌 질서가 형성된 셈이다.
인도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네루는 이븐 바투타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행가”로 꼽았다.
자신의 위치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죽고 나서 그렇게 잊혀졌지만, 평생을 호기심있게 돌아다니며 인간의 탐구심을 끝까지 추구한 그의 이름은 지금도 남았다.
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이븐바투타 역 바로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테마쇼핑센터인 ‘이븐바투타 몰(Ibn Battuta Mall)’ 이 위치해 있다. 쇼핑몰 전체를 그가 다녔던 나라들의 컨셉으로 꾸며냈다. 몰 자체도 예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타벅스도 이곳에 있어 기념사진을 찍으러 온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놀러온다면 언제 이곳에 한번 들려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사진도 찍고 위대했던 한 여행자의 삶을 반추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는 과연 기나긴 모험끝에 죽기전 그토록 찾고 싶었던 ‘원피스’를 찾았을까. 커피의 달콤하고도 쓴 맛이 평생을 역마살과 방랑벽으로 살아갔던 그의 삶과 닮아있을 것만 같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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