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당신이 속는 이유

당신이 속는 이유./김영사

‘혈액 한 방울만으로 200여 가지의 질병을 검사할 수 있다’며 사기 행각을 벌인 테라노스는 2003년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엘리자베스 홈즈가 설립한 회사다. 홈즈는 화려한 언변과 네트워크로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고 총 9억4500만달러(약 1조292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으나 2015년 언론을 통해 테라노스 기술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폭로된 뒤 사기죄로 11년 3개월을 선고 받았다. 긴 시간, 그것도 수천 명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창업자와 임원진이 ‘정밀’하게 자료를 위조했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기꾼은 장기간 신뢰감을 주려면 구체적인 세부사항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근 출간된 ‘당신이 속는 이유’에서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속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심리학과의 대니얼 사이먼스 교수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교수가 함께 쓴 ‘당신이 속는 이유’는 인간의 인지적 습관이 얼마나 ‘속임수’에 취약한지를 여러 사례와 연구를 통해 살펴본 책이다.

저자들은 모든 성공적인 속임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들은 인간이 판단할 때 도움이 되지만 때때로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 인간의 집중, 예측, 전념, 효율과 같은 4가지 인지 습관과, 사기꾼들이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끔 사용하는 4가지 후크(일관성·친숙함·정밀성·효능)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인간의 관심을 낚아채고 확인 없이 어떤 주장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이게 하는 데 일조하는 일관성, 친숙함, 정밀성 등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진실 편향’에 있다. 이는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진실이라고 믿고, 가정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듣는 즉시 바로 믿어버리고 나중에야, 그것도 가끔 보고 들은 걸 확인한다. 사기꾼들은 이런 진실 편향을 교묘하게 활용한다. 인간은 관심 있는 정보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경험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며 그런 정보에만 전념하는 경향이 있다.

작심하고 달려든 사기꾼을 능가할 재간은 없다. 그럼에도 속지 않으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저자들은 매력적인 제안이 들어올 때는 ‘사기꾼처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집중하고 보이지 않는 정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 사기꾼은 모든 정보에 집중한다. 어떤 제안이 너무나 현혹될 만한 정보라면 자문해봐야 한다. 그러면서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라고 덧붙인다. 주로 ▲왜 나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등이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속을 수 있다. 문제는 더 확인해야 할 때가 언제이고 어떻게 확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일단 받아들이고 확인은 이후에 하려는 인간의 기본 성향은 사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지만, 적절한 시기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면 속아 넘어갈 위험은 줄어든다”며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고 조언한다.

대니얼 사이먼스·크리스토퍼 차브리스ㅣ이영래 옮김ㅣ김영사ㅣ472쪽ㅣ2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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