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현의 人터뷰]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 이호성 대표

유승현 2024. 5. 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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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산돌식품 창립 20주년
'직원들에게 잘해주는 사장님' 꿈 키워
순탄치 않았던 사업, 이 악물고 버텨
건실한 홍천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
'나눔'의 정신으로 지역사회 공헌사업 계속할 것
▲ 이호성 산돌식품 대표

강원 홍천군은 인구소멸 위기 속 규모있는 기업 유치로 일자리를 창출해 인구 유입을 유도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력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홍천 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도시를 제외한 국내 지방도시 대부분이 겪고 있는 문제다. 그런 상황에서 20년전 홍천에 자리잡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산돌식품이 올해 20주년을 맞아 지난 9일 기념식을 했다.

산돌식품은 사업 확장과 매출 신장을 통해 2004년 창립 당시 직원 10명, 연매출 1억원 규모의 회사에서 올해 직원 150여명, 연매출 450억원을 목표로 하는 홍천을 넘어 도내 우수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홍천지역에 20년 이상 된 기업은 10여개로, 그 중 1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규모있는 중소기업은 산돌식품이 유일하다. 산돌식품 이호성(55) 대표를 만났다.

 

▲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이 지난 9일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
▲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이 창립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직원들이 이호성 대표에게 전달한 감사 메세지

인천이 고향인 이호성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막연하게 직원들한테 잘 해주는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이 대표는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 후 당시 유망했던 유전공학 분야 대학원을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돈을 벌고 싶어 CJ에 입사했다. 입사 후 결혼을 해 아이도 낳고, 직장에서도 썩 성과를 내며 승승장구 하다 인생의 큰 고비를 맞았다. 아내가 뇌염에 걸려 쓰러진 것이다. 아내가 쓰러진 지 3주가 지나도 못 일어나자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통보를 했다.

이 대표는 “아이는 2살이고, 아내가 쓰러진 채 일어나질 못하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매일 대성통곡을 했다. 그러다가 5주차에 접어들때 쯤 누워있는 아내 이름을 한참을 부르고 있었는데 마치 영화처럼 손가락을 ‘까닥’하더라. 정말 극적으로 깨어났다”고 말했다.

5주가 넘게 의식없이 누워있던 아내는 회복하는데 2년 가까이 걸렸다. 그때 이 대표가 회사를 관두고 옆에서 내내 간병을 했다. 아내의 몸이 차츰 나아져 생계를 위한 일을 알아보던 중 지인의 소개로 홍천 상오안리 공장을 소개 받았다.

어렵게 돈을 마련해 2004년 공장을 인수해 산돌식품을 창립했다. 당시 자체적으로 협동화 산업단지를 만들고, 그 이름을 ‘청우림’이라고 지었다. 식품산업과 관련된 작은 회사들 몇몇이 모여 하나의 나무를 이루자는 뜻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을 확장해 2016년 33떡볶이 프렌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2022년 밀키트 제품 등을 취급하는 플레이버플랜, 도라보울을 창업했다.

이 대표는 “사실 지금은 기업유치를 위해 기업들에게 지자체 등에서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편이지만 산돌식품 창립 당시만 해도 그런 혜택들이 없었다. 20년간 유지해오며 그런 것들이 좀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도움을 줬던 지역사회의 고마움 덕에 홍천에서 계속 사업을 확장할 생각이다”고 했다.

 

▲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이 지난 9일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했다.

36살 청년의 나이로 아무 연고 없는 홍천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 대표는 처음엔 동네에서 젊은 사기꾼 취급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나중에 알고 봤더니 현재 산돌식품 부지는 이전 등기가 책 한권 수준이 될 정도로 사업이 망해나가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 30대 젊은 나이의 외지인이 사업을 하겠다고 들어오니 시내에서 공장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도 돈 떼일까봐 팔지 않거나, 선금을 줘도 마을 주민들은 산돌식품 부지 기운이 좋지 않다며 상대를 해주지 않을 정도였다. 직원도 안 뽑히고, 물건도 못 사니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 대표는 사업을 제쳐두고 마을에 녹아들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마을의 각종 모임과 행사 등을 챙겨 다니며 궂은 일을 돕고, 어르신들,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그런 이 대표의 노력이 한 해, 두 해 쌓이자 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명실상부 홍천의 향토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 이호성 산돌식품 대표가 자사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회사를 인수한지 2년 7개월만인 2016년 사업이 망해 31억원의 빚을 떠안기도 했다. 이 대표는 유서를 썼을 정도로 당시 딱 죽고싶은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가족과 직원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텼던 순간이 지난 20년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사업이 확장되다가도 말 못할 여러 이유들로 갑자기 고꾸라지기도 하는 상황을 여러번 겪었다. 그럴때마다 이 대표는 최선을 다해 버텼다. 버티면서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이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다행히 이 대표는 사업가로서 사업성을 알아보는 능력과 성실함이 있었다. 당장은 안쓰더라도 1~2년 뒤에 꼭 필요해진 기계를 미리 들여 놓는 다던가, 떡을 급속 동결시키는 생산라인도 어느 중소기업보다 빠르게 갖춰 놨으며, 프렌차이즈를 개점할 때 설거지부터 가게 운영 하나, 하나 공들여 본인이 직접했다.

특히 마치 코로나19 시대를 예견이나 한 것처럼 이 대표는 해외 냉동 간편 조리식에 일찍 눈을 떴다. 생산라인을 갖추고 냉동 간편 조리 제품을 만들자 코로나19를 맞아 제품의 수요가 높아져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물론 국내외적으로 많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다행히 사업 성공으로 직원들의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2019~2021년 각종 기업 관련 표창, 상 등을 받으며 기업 성장에 탄력이 붙었다.

이 대표는 “전국 1만3000여개 프렌차이즈 중 점포 200개가 넘는 기업은 1%로 정도인데 산돌식품의 33떡볶이 점포가 현재 250여개에 달한다. 직원들의 피·땀·눈물과 지역사회, 협력사 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 산돌식품의 33떡볶이 전국 매장 현황

이 대표에게 이번 20주년 기념식의 테마를 물었다.

이 대표는 “산돌식품과 관련해 세운 모든 회사의 모토엔 ‘나눔’이 들어간다. 회사의 모든 성과를 직원들, 지역사회와 나누며 백년을 약속하고, 천년을 준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답했다.

실제로 산돌식품은 홍천군 제1호 나눔명문기업으로 등록됐을 정도로 지역사회 공헌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권리형 장애인 일자리’라는 개념이 흔치 않던 시절부터 장애인을 고용해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으며, 회사 창립부터 현재까지 일하고 있는 직원도 10명이나 된다.

올해 20년차가 된 한 직원은 “회사가 성장한 덕분에 계속 일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얼마 전 아파트를 샀다”며 이 대표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공정한 인사평가와 그에 따른 보상이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복지라고 말할 만큼 중학교 때 꿨던 ‘직원들에게 잘해주는 사장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대표는 계속 노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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