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눈 뜨고 ‘라인’ 베이나
일본의 우익 성향 월간지 <문예춘추>는 2024년 5월호에 ‘문예춘추 편집부’ 이름으로 ‘적어도 국회의원, 관료, 자위대원은 라인(LINE)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는 글을 실었다. 해당호에 실린 미네무라 겐지 기자의 기사(‘라인은 너무 위험하다’)를 소개하는 차원의 글이다. “라인야후에 자정 노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라인이 다시 ‘한국 경유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고 시작하는 이 글은 한국을 사실상 중국으로 통하는 개인정보의 통로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2021년 대만에서 발생한 정부와 여야 정치인 100여 명의 라인 메신저 내용이 유출된 사고도 언급하며 대만 쪽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쪽의 사이버 공격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대만인은 라인을 ‘일본제 앱’이라 믿고 사용하고 있다. 동사(이 회사)나 일본 정부는 발본적(拔本的)인 대책을 서둘러달라”는 주장을 폈다. “네이버가 중국에 설립한 ‘네이버 차이나’는 네이버의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운용을 담당하고 있으며, 라인이 네이버와 공통 시스템을 사용하는 이상 중국 쪽으로 정보 유출 위험이 있다”는 요지다. <문예춘추>는 황색지로 유명한 <주간문춘>의 자매지다. 메신저 라인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 논란을 사실상 일본의 경제 안보 문제로 프레이밍한 것이다.
사용자 9600만명 , 국민 메신저
일본 정부가 압박하는 표면적인 빌미는 라인야후에서 2023년 52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고다. 라인야후는 한국 네이버와 일본 소프트뱅크가 지분을 반씩 나눠 가진 한·일 합작회사 에이(A)홀딩스 산하 기업이다. 2023년 9~10월 두 달간 네이버 클라우드 위탁사의 한 컴퓨터가 멀웨어에 감염되면서 관리자 계정으로 라인 쪽 데이터에 접속해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 일본 총무성은 2024년 3월5일 ‘모회사 등을 포함한 그룹 전체에서의 보안 거버넌스를 본질적으로 재검토하라’는 첫 행정지도를 라인야후에 전달했다. 이에 라인야후는 4월1일 △네이버 및 네이버 클라우드와의 시스템과 망(네트워크) 분리 △네이버 클라우드 현지 실사 및 감사권 각서 체결 △외부 기관을 통한 재발 방지책 수립 △보안 거버넌스 재검토 등의 내용을 담은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총무성은 4월16일 현지 기자들 앞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재검토”(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상)를 요구하는 2차 행정지도를 했다고 밝혔다. 보안 거버넌스를 넘어, ‘자본 관계를 비롯해 경영 체제를 재검토하라’는 취지를 확실히 한 것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자국 기업의 비슷한 정보유출 사고 때와는 달라 의구심을 낳았다. 2023년 3월 일본 최대 이동통신사인 엔티티(NTT)도코모에서 596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었다. 위탁사가 클라우드에 접속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외부에 유출된 과정도 흡사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는 위탁처의 감독 강화를 포함해 안전관리 조처를 강화하겠다는 수준의 개선책을 받아들였다. 라인야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다른 대응이 결국 자국 플랫폼을 한국 기업의 영향권 아래 둘 수 없다는 차원으로 풀이되는 까닭이다.
메신저 라인은 사실상 일본의 기간통신사에 버금가는 사회 인프라다. 라인의 일본 내 활성 사용자 수는 9600만 명으로, 사실상 일본 전 국민이 사용하는 통신 수단이 됐다. 페이페이·라인페이 같은 금융 플랫폼까지 밀접하게 결합해 있다. 모바일 게임부터 쇼핑까지 라인을 기반으로 한 사업들이 이뤄지고 있다. 자연히 개인정보 데이터가 집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안보 프레이밍으로 여론 등에 업어
일본 쪽은 이전부터 꾸준히 라인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놓고 불안감을 표출해왔다. 2021년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에 있는 라인 위탁회사의 중국인 직원 4명이 일본 서버에 보관되고 있는 대화 내용 외에 이용자 이름, 전화번호, 메일 주소, 라인 아이디(ID) 등에 접속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라인야후 쪽은 “글로벌 거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데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었지만, 무단 접근이나 정보 유출이 발생한 건은 없다”며 “사용자들의 대화 내용이나 이름, 전화번호, 메일 주소 등 개인정보는 원칙적으로 일본의 서버에서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가 일부는 한국 서버에 보관 중인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후 한국 서버에 보관 중인 데이터를 일본으로 옮기겠다고 밝혔으나, 이전 수순을 밟는 과정에서 2023년 개인정보 유출이 불거진 것이다.
일본 누리꾼들은 ‘아예 라인 지분을 소프트뱅크가 사오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관련 소식을 담은 일본 뉴스에는 이런 댓글이 달린다.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날 갑자기 인프라(LINE)를 차단할 수 있지 않나. 곤란한 것은 일본인뿐이다.” “보급에 기여한 미디어의 죄도 크다. (라인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는 수준이 돼버렸다. 플러스메시지(일본 통신 3사가 내놓은 메시지 앱)는 후발 주자인데도 라인보다 사용성이 떨어진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일본 쪽 목표는 분명하다.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가 네이버 쪽 주식을 매입, 라인야후의 중간회사 에이홀딩스의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이다. 라인야후 주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합작법인인 에이홀딩스가 약 65%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에이홀딩스에 각각 50%씩 출자하고 있어 두 회사가 실질적인 모회사다.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주식을 인수해 독자적인 대주주가 되면, 네이버는 라인야후의 경영권에서 배제된다.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5월8일 열린 결산 설명회에서 “네이버에 자본 변경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며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협의 중으로 알고 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머저리티(majority·다수)를 취하는 형태로의 변경이 대전제”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데자와 최고경영자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이번 건은 중대한 사태이기 때문에 강하게 대응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지분 매각 여부와 무관하게 네이버와의 기술 협력을 사실상 끊는 수순도 돌입했다. 이데자와 최고경영자는 “네이버와 위탁 관계를 순차적으로 종료해 기술적인 협력 관계에서 독립을 추진할 것”이라며 “서비스 개발이나 시스템 위탁은 ‘제로’(0)로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라인야후가 네이버 및 네이버 클라우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라인야후는 올해 약 150억엔(약 1300억원)을 투자해 독자적인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그러면서 네이버 출신인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상품책임자(CPO)가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유일한 한국인인 신 이사가 물러나면서 라인야후 이사는 모두 일본인이 됐다. 소프트뱅크는 회사법상으로는 이미 라인야후의 모회사였고, 네이버는 관계사였다. 하지만 기술 협력이나 클라우드 위탁까지 중단하게 되면 네이버로서는 점점 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차라리 소프트뱅크와의 협상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는 것이 실리적 판단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만 소프트뱅크가 수조원을 들여 지분을 살 여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네이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핵심 경영 사항인) 정관 변경 등을 위해선 특별결의 주식보유 요건(의결권 있는 주식의 3분의 2)을 충족해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소프트뱅크는 네이버 보유 지분 중 최소 15%는 사려 할 것”이라며 “매입 과정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웃돈)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놓고 양쪽 신경전이 치열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2024년 5월3일 실적을 발표하며 “일본 총무성의 요구는 굉장히 이례적”이라며 “중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네이버, 국외 진출 전략 원점 재검토
미국·동남아시아 등 국외 진출 시장을 노리고 만든 자회사·관계회사들의 경영 구조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라인야후가 100% 지분을 가진 제트(Z)인터미디어트글로벌(전 라인코퍼레이션)은 일본 외 국외 사업의 핵심인 라인플러스(한국법인)를 완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제페토 운영사인 네이버제트 도 일본 시장 확대를 노리고 지분을 제트인터미디어트와 라인플러스에 넘기는 등 라인야후의 영향권 아래 있다.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과 인도네시아·타이 등 동남아 국외 사업을 확장해온 네이버의 국외 진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판이다.
정유경 <한겨레>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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