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장난감 의사로… 동심 선물하는 ‘제페토 할아버지들’[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5. 10.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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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이 아픈가 봐. 너 아플 때 어디 가, 병원 가지? 장난감도 병원에 가야 하나 봐."

인천 미추홀구의 한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한국 최초의 장난감 병원 '키니스(Kinis) 장난감 병원'이 바로 그곳이다.

13년째 장난감을 고치며 지금은 자타공인 '장난감 병원장'으로 통하는 설립자 김 이사장부터가 35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공학 교수다.

그러던 중 한 후배 교수가 전공인 '전자전기공학'과 '수리'라는 키워드를 던졌고 장난감 병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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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
장난감 박사 지음│달
국내 최초 장난감병원 ‘키니스’
인천서 13년째 무료 운영해와
교수·생산직 등 은퇴 시니어들
‘세상에 받은 것 갚아보자’ 고민
망가진 장난감 수리 봉사 시작
응급수술 1순위는 아기용 모빌
‘어른이들’ 위한 응원봉도 고쳐
인천 미추홀구 한 지하상가에 위치한 ‘키니스 장난감 병원’에서 4년 차 장난감 박사 천정용(72) 씨가 망가진 장난감을 수리하고 있다. 달 제공

“장난감이 아픈가 봐. 너 아플 때 어디 가, 병원 가지? 장난감도 병원에 가야 하나 봐.”

“인형의 코가 떨어져 이불까지 덮어주며 재웠지만 고쳐지지 않았다”며 울상짓는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주는 곳이 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한국 최초의 장난감 병원 ‘키니스(Kinis) 장난감 병원’이 바로 그곳이다.

병원에서는 오늘도 나이 지긋한 제페토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설립자 김종일 이사장을 비롯해 망가진 장난감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며 울고 웃었던 12명의 장난감 박사들의 이야기가 ‘할아버지의 장난감 선물가게’에 담겼다.

장난감 병원에서 일하는 ‘장난감 박사’라고 하면 왠지 전문 교육을 받은 완구 전문가들일 것 같지만 이들은 장난감과 인연 없이 살아왔다. 제각각 공학 교수, 제조업 분야 연구·생산직으로 평생을 근무하다 은퇴 후에야 장난감을 만지기 시작한 이들이 대다수다. 13년째 장난감을 고치며 지금은 자타공인 ‘장난감 병원장’으로 통하는 설립자 김 이사장부터가 35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공학 교수다.

아홉 명 중 여덟째로 태어나 65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다는 김 이사장은 은퇴 후 삶을 돌아보며 ‘세상에서 받은 것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한 후배 교수가 전공인 ‘전자전기공학’과 ‘수리’라는 키워드를 던졌고 장난감 병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오롯이 비용뿐인 일에 사재를 들이는 그의 진심은 선·후배들이 동참하며 병원의 모습을 갖췄다. kid(어린이)와 silver(노년)의 철자를 조합해 ‘Kinis’라는 간판을 내건 뒤 2011년 본격적으로 손때 묻은 장난감을 만지기 시작했다.

2012년에는 전국 범위 무상 수리를 시작해 지금까지 7만8000명이 장난감 병원을 찾았다. 2013년 이래로 매해 1만 개 이상의 장난감이 박사님들의 손을 거쳤고 새 생명을 얻은 장난감은 10만 개 이상이다. 밀려드는 장난감 ‘입원서’에 “이러다 내가 먼저 고장 나겠다”고 농담 섞인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12명의 장난감 박사들은 오늘도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얕보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요즘 장난감을 고치고 있다.

8년 차 원덕희 박사는 ‘응급수술 1순위’로 모빌을 꼽는다. 처음에는 멀뚱거리며 바라보던 아기들이 금세 손에 힘이 생기고 잡아당겨 자주 망가지는 장난감이다. 그가 그런 모빌을 가장 먼저 고치는 데에는 두 가지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첫째는 어린아이들의 행복을 위함이고 둘째는 온종일 아이와 붙어 씨름하는 부모들이 잠시나마 한숨 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키니스는 단순히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곳 이상이다. 8년 차, 최고령 84세 이종균 박사가 최근 들어 ‘어른이’들의 ‘응원봉’ 수리 요청이 많아졌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쉴 새 없이 흔들었던 응원봉은 어느 순간 망가졌는데, 해체했던 아이돌 그룹이 다시 공연한다면 누구나 안타까운 마음뿐일 것이다. 그럼에도 박사님들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애틋하다며 선뜻 치료를 해주고 ‘어른이’들은 감동의 손편지를 보내며 주고받는 온기가 퍼져 나간다.

어느새 병원은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까지 보여준다. 병원의 설립부터 함께한 김기성 박사는 처음을 회상하며 스스로 ‘얼렁뚱땅 박사님’이었다고 고백한다. 멀쩡한 장난감을 부수기도 많이 했던 그들의 시간은 어느새 ‘장난감 박사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정기 워크숍으로 자리 잡으며 더 많은 노인을 봉사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208쪽, 1만5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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