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배드민턴 이경원은 ‘올림픽 영웅’…6번째 올림픽에 나서는 여성 코치의 금메달 꿈

손태규 교수 2024. 5. 1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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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 5전6기. 배드민턴 이경원(44)은 선수로 세 번, 코치로 세 번 모두 여섯 번째 올림픽에 나선다. 파리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그녀보다 더 간절하게 인생을 바쳐 온 사람이 대한민국 대표단에 있을까?

올림픽과 국가대표의 의미와 가치가 갈수록 볼품없어지고 있다. 올림픽 메달은커녕 출전조차 못하면서 “국가대표를 일찍 은퇴한다”는 선수들이 늘어가는 시대. 국가대표를 마치 대단한 자기희생으로 여기며 마다하는 세태에서 이 코치의 5전6가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9년째 국가대표 여자복식 코치

그녀는 선수도 감독도 아니다. 여자복식 코치일 뿐이다. 스포츠 팀이 성공을 거둘 때 대부분의 공은 감독에게 돌아간다. 선수나 감독이 누리는 영광이나 관심, 조명을 코치는 거의 받지 못한다. 누가 코치를 알아주는가?

그러나 국가대표 코치로만 9년째. 그 긴 시간 동안 다른 코치들은 다 바뀌었다. 무려 네 번째 감독을 보좌하며 이 코치만 남아 있다. 배드민턴 국제경기를 텔레비전 중계로 봤다면 기억할지 모른다. 시합장 한 모퉁이의 의자에 앉아 늘 팔짱을 굳게 낀 채 지켜보며 때로는 선수들에게 고함을 치는 이 코치의 모습. 승리의 순간, 선수들을 얼싸안은 채 울고 웃으며 보낸 세월이 9년이다. 그녀는 한 해 10여 차례나 전 세계 국제대회를 누빈다. 언제나 경기장 컴컴한 구석 자리를 지키며 선수들과 함께 피 말리는 승부를 벌인다.

내가 원한다고 국가대표 코치가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실력이 없으면 4명의 감독이 이 코치를 기용했겠는가? 아무리 실력이 있더라도 절실한 이유와 목적이 없다면 결코 그렇게 오래 코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코치는 잘 알아주지도 않는 현실이 아닌가. 다른 어떤 종목에서도 이경원 코치보다 더 오래 국가대표 코치를 한 사람은 없지 싶다. 무엇이 그토록 오래 그녀를 국가대표 코치로 붙잡아 두었을까?

이 코치는 이미 선수로서 올림픽 여자복식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영오픈 우승 등 한국 배드민턴의 최고 선수였다. 코치로서도 올림픽 동메달 두 개를 일궜다. 전영오픈 2연패, 아시아 선수권 우승 등 수 많은 국제대회에서 여자복식이 빼어난 성적을 거두도록 만들었다. 최고의 코치. 누구라도 부러워하고 아무리 자랑해도 다함이 없을 화려한 경력이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시작된 이 코치의 금메달 도전 정신은 24년이 지나서도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이 코치는 2023년 매체 회견 때 "올림픽에서 김소영-공희용, 이소희-백하나 결승을 보는 게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발목 부상으로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에 그쳤던 한이 그녀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37년 전인 1997년. 마산 성지여고 3학년 이경원 선수는 전국체전 단체·개인전 2관왕을 차지했다. 고 1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 선수는 "지금은 울지 않아요.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난 뒤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들고 아버지 묘소에 가야죠"라고 했다. 올림픽 금메달은 어릴 때부터 의 절실한 꿈이자 목표였다.

아무리 국가대표가 가벼이 여겨진다 해도 여전히 많은 선수들은 올림픽에 인생을 걸고 있다. 배드민턴 선수들도 그렇다.

지금은 은퇴한 여자복식 장예나 선수가 2017년 털어놓은 뒷얘기. “2015년 리우 올림픽 출전 결정을 위한 점수를 쌓기 위해 계속 국제대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했다. 마지막 대회에서 일본끼리 결승전을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올림픽 출전을 포기했었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짝인 이소희에게 우는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화장실에서 혼자 울었다. 너무 아쉬웠다. 은퇴 생각도 했다. 이경원 코치도 울더라. 배드민턴 선수 하면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선수나 코치나 올림픽에 대한 간절함이 절절하게 배어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본선수들끼리의 양보 없는 시합 때문에 극적으로 장-이 조도 올림픽에 나갔다).

배드민턴 선수들은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 쉼 없이 세계를 돌며 4년을 강행군한다. 영국, 독일, 스웨덴, 인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한 달에 한번 꼴로 국제대회에 나간다.

과거 유럽에서 뛰는 축구 국가대표 여러 명이 일찍 국가대표를 그만두었다. 한국에 왔다 돌아가면 시차적응도 힘들고 비행기를 오래 타니 무릎도 망가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배드민턴 선수들을 보고 크게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야 일 년에 겨우 몇 차례 한국에서 시합을 한다.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은 일 년 내내 수십 차례 비행기를 타고 많은 나라를 들락날락하며 시차에 적응해야 한다. 축구보다 훨씬 더 무릎에 많은 부상을 입는 배드민턴 선수가 그런 변명을 대며 국가대표를 ‘조기은퇴’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살인 일정을 이겨내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은 지난해 10월8일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13일부터 전국체전에도 나갔다. 얼마 후 코리아오픈까지 뛰었다. 그야말로 살인 일정. 터무니없는 혹사다. 그러나 국가대표로 뛰는 한 선수들은 매년 그런 일정을 견딘다. 연봉 5억~10억 원씩 받는 우리나라 프로선수들도 그렇게 안 한다. 전국체전은 뛰지도 않는다. 여자선수들은 병역혜택을 받기 위해 올림픽 우승을 노릴 필요가 없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다. 2023년 배드민턴 세계 상금 16위 백하나 선수, 19위 이소희 선수는 그렇게 많은 시합을 뛰고 3개 대회를 우승했으나 3억 원가량씩을 벌었을 뿐이다.

김소영-공희용 조는 2022년 세계 1위였다. 23년 전영오픈도 우승했다. 그러나 올해 김소영 선수는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계속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한 대회에서 우승까지 6일 연속 시합을 한다. 경기마다 숨 막히는 50~100번의 긴 랠리 끝에 코트에 뻗어버리기 일쑤. 부상을 달고 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김소영은 서른둘에 결혼 2년차다. 왜 여자이고 아내이고 싶지 않겠는가? 그냥 소속 팀에서 월급이나 받고 편하게 뛰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파리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개인 삶은 고스란히 접어두고 있다. 오로지 올림픽이다.

3번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이경원 선수도 그랬다. 거기에다 절실하게 올림픽 대표를 원하는 선수들을 10년 가까이 이끌면서 3번째 올림픽에 나간다. 그동안 이 코치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선수들의 고통과 좌절을 함께 나누고 그들을 어루만지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국가대표는 국가와 국민에 대해 선수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도 의무도 아니다. 본인이 싫으면 그만이다. 누가 강요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선수로서 인간으로서 국가대표는 자신에 대한 책임과 의무다. 운동은 선수가 좋아서, 원해서 선택을 한 자신의 전문 영역이자 직업이다. 당연히 최고가 되고 싶지 않은가?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서 더 치열한 경쟁은 선수로서 존재하는 이유다. 선수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욕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 욕망·의지 없이 운동을 하려면 동호회 등에서 그냥 편하게 놀이삼아 하면 그만이다. 그동안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뛸 만큼 뛰었다는 생각은 참으로 오만한 것. 국가대표 선수가 싫어 그만두면서 소속 팀에서 뛰는 것은 모순이다. 똑같은 경기인데 왜 국가대표 시합은 피하는가? ‘올림픽’과 ‘국가대표’의 의미와 가치를 선수들이 깨닫게 하는데 배드민턴의 이경원 코치만큼 소중한 모범은 없을 것이다.

코치는 이름 없는 존재, 칭송받지 못하는 영웅이라고 한다. 허나 자신의 일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생·헌신·의지·집념이 없다면 이경원이 그 오랜 시간을 이름 없는 코치로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 자체가 올림픽이다. 국가대표다. 한국 스포츠의 기둥이다. 이제 ‘이경원 코치’를 기억하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이경원이야말로 빛나는 올림픽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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