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 ‘아파트 탐조단’ 47종의 새를 찾다

김연희 기자 2024. 5. 10.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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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조책방’ 박임자 대표가 아파트 나무에 달아놓은 인공 새집에 올해 처음 곤줄박이 가족이 입주했다. 의외로 아파트 단지는 여러 새를 만나기에 적당한 공간이다.
4월23일 어미 곤줄박이가 알을 품고 있는 인공 새집에 아빠 곤줄박이가 먹이를 물어다 주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아파트는 삭막한 도시의 상징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꿈틀대는 탐험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새를 관찰하는 탐조인(探鳥人)들에게 그렇다. 인공화된 도시에서 아파트 단지는 작은 숲 구실을 한다. 그곳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며 살아간다. 아파트는 인간만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탐조책방’은 국내 1호 탐조 전문 독립서점이다(제823호 ‘새 관찰이 처음이라면 탐조책방을 찾자’ 기사 참조). 2021년 4월 문을 열었다. 책방 주인이자 생태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는 박임자 대표의 예전 직업은 심리치료사였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기관이 대면 상담을 중단하자 그는 비자발적 휴직 상태가 되었다. 모임이나 접촉, 지역 간 이동도 제약을 받으며 “아파트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고 느꼈다.

아파트 단지나 한 바퀴 돌까 하고 나섰던 산책길이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2015년부터 취미로 탐조 생활을 해왔지만 새 관찰은 섬이나 산, 호수 등지에서만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아파트 단지 곳곳에 서식하는 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번에 새 수십 종을 관측할 수는 없지만 어제 본 새를 오늘 또 관찰하며 변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시에 적응한 새들은 사람이 접근해도 비교적 경계심이 덜했다.

2020년 박임자 대표가 언니 박경희씨, 어머니 정맹순씨와 함께 만든 ‘아파트 새 지도’. ⓒ 탐조책방 박임자 대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언니 박경희씨와 2020년 한 해 동안 관측하고 기록해둔 새가 47종에 이르렀다. 까치, 참새, 비둘기처럼 길 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뿐만 아니라, 참매 같은 맹금류, 또 계절에 따라 한국에 머물다 가는 되솔새, 울새, 노랑허리솔새 같은 나그네새도 아파트를 찾아왔다. 팔순이 넘은 어머니 정맹순씨는 소일거리로 하나둘 새 그림을 그렸다. 서랍이나 컴퓨터 파일 속에만 묵혀두기에는 아까운 기록이었다. 공익재단 ‘숲과나눔’ 지원사업에 응모해 조류 전문가들을 초빙한 뒤 조언도 구했다. 어머니 정씨의 그림과 단지 내에서 새를 발견한 장소를 엮어 지도를 만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아파트 탐조’

‘아파트 새 지도’ 제작은 ‘아파트 탐조단’으로 진화했다. 박임자 대표가 2020년 9월 자연 활동 공유 플랫폼 ‘네이처링(naturing.net)’에 개설한 아파트 탐조단 페이지에는 올해 4월까지 관찰기록 1만1635건이 올라와 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나 주변에서 관측한 새를 찍어 올린 참여자는 398명까지 불어났다. 경기도 평택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70종, 고양시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는 새 61종이 보고되었다.

봄바람이 상쾌한 4월23일 오전 10시, 박임자 대표를 따라 아파트 탐조에 나섰다. 박 대표는 올해 아파트 단지 나무에 인공 새집 8개를 달았다. 가로 10~12㎝, 세로 14㎝ 크기의 자그마한 나무 상자다. 그동안은 참새들만 인공 새집에 둥지를 틀었는데 올해는 처음으로 곤줄박이 한 가족이 들어왔다. 3월23일, 8개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단 새집이다. 3월 말이면 이미 곤줄박이가 짝짓기를 마쳤을 시점이라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뜻밖의 입주 커플이었다. 박 대표는 “짝짓기 장소를 찾지 못하던 곤줄박이 한 쌍이 인공 새집을 발견하고 잽싸게 들어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공 새집으로 향하는 길, 나무 높은 곳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박임자 대표는 “둥지 밖에 있는 아빠 곤줄박이가 사람이 접근한다고 가족들에게 알리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마침 전날인 4월22일, 탐조책방은 새들의 경계음을 전공한 하정문 박사와 함께 ‘도시 새들의 번식기 노래와 소리’라는 주제로 온라인 강의를 진행했다. 하 박사는 알고 보면 도시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는 대표 새인 곤줄박이, 박새, 쇠박새, 딱새의 울음소리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반복 연습을 하면 소리만으로 새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새들은 처한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소리를 낸다. 구애할 때, 별로 위험하지 않은 상대가 접근할 때, 뱀처럼 위협적인 천적이 등장할 때 곤줄박이가 내는 소리는 마치 다른 새인 것처럼 바뀌었다.

박 대표는 곤줄박이가 둥지를 튼 인공 새집에 다가가더니 스마트폰이 들어갈 만큼만 지붕을 살짝 열어 사진을 찍고서 곧바로 지붕을 닫았다. 직접 둥지 안을 들여다보고 새를 관찰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아파트에 사는 새들은 애완동물이 아니라 야생동물이다. 지붕을 함부로 열었다가 새가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한번 인기척을 느끼면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3월 말 인공 새집에 입주한 곤줄박이 커플은 알 8개를 낳았다. ⓒ 탐조책방 박임자 대표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 달아놓은 인공 새집에서 4월23일 어미 곤줄박이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 ⓒ 탐조책방 박임자 대표

재빨리 촬영한 사진 속에는 포란(알을 품다) 중인 어미 새가 찍혀 있었다. 며칠 전 찍은 사진에서는 어미가 보이지 않고 알 8개만이 확인되었다. 혹시나 사람의 접근을 알고 어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마음을 졸인 박 대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 대표가 인공 새집에서 멀어지자 곧이어 입에 먹이를 문 아빠 곤줄박이가 날아와 새집 가운데 뚫린 작은 구멍으로 먹이를 넣어주었다.

탐조책방은 문을 열 때부터 인공 새집 ‘분양’ 사업을 지속해왔다. 이웃에게 항의가 들어올까 봐, 관리사무소에서 금지할까 봐 관심은 있어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의외로 지난 3년간 별다른 민원에 부딪힌 적은 없었다. 아파트 단지에 새가 사는 것은 인간에게도 이점이 있다. 새들이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수목 소독을 한다. 아이들이나 저층 세대에서 안전성에 관한 우려가 조금 있는데 새들이 벌레를 잡아주면 소독 횟수를 이전보다 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인공 새집이 방치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해야 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허락을 받아야 할 경우에는 인공 새집을 들고 가라고 박 대표는 조언했다. 갑 휴지 하나 정도 크기의 인공 새집을 직접 보면 “경비원 선생님들도 경계심을 풀곤” 한다. 올해 인공 새집 분양 프로젝트는 조금 특별하다. 새들에게 ‘좋은 임대인’이 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워크숍을 하고, 인공 새집 모니터링 내용을 공유하는 사례 발표회를 연다. 4월23일 저녁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 줌(Zoom)으로 진행된 첫 번째 사례 발표회에는 총 18팀이 참석했다. 11월에 열 마지막 사례 발표회까지 참여하면 인공 새집 대여료(5만원)를 돌려받을 수 있다.

인공 새집이 필요한 까닭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은 대부분 과거에 야산이나 논밭이었다. 본래 그곳에 살던 새들은 아파트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가장 난처한 처지에 놓이는 새들이 수공(나무 구멍)에 둥지를 트는 습성을 지닌 박새, 곤줄박이, 딱새 등이다. 신규 조성된 아파트 단지일수록 새가 둥지를 틀 만한 크기의 나무 구멍을 찾기가 어렵다. 인공 새집은 수공에 사는 새들에게 대체 안식처가 된다.

박임자 탐조책방 대표가 참새가 둥지를 튼 인공 새집을 살펴보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입주 기간은 두 달 남짓으로 길지 않다. 둥지는 새끼를 키울 때에만 필요하다. 봄철 노래를 불러 짝을 만난 새들은 둥지를 찾는다. 둥지가 마련되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품어주면 15일 남짓 지나 부화한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은 보름 정도 더 둥지에서 성장한 뒤 이소(離巢)를 한다. 부모 새를 따라 둥지를 떠나는 것이다. 사실 이때 인공 새집 속에 새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치우는 ‘집 청소’가 인공 새집 임대인인 인간이 할 일의 거의 전부이다.

박임자 대표는 “일상 속에서 새를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꼭 경험해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자연을 접하는 창구로 아파트 탐조는 맞춤한 활동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지 않나. 익숙한 공간 속에 자연이 있고 또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걸 배울 수 있으니까 그 자체로 좋은 교육이 될 수 있다.”

아파트 탐조에 입문할 마음이 동한다면 우선 직박구리를 찾아보라고 박 대표는 권했다. 인터넷에서 직박구리의 사진과 울음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 도전하기 좋은 미션은 박새이다. 눈보다 귀를 먼저 여는 편이 좋다. 새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새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표는 아파트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새로 참새, 박새, 쇠박새, 곤줄박이,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오목눈이, 직박구리, 까치, 큰부리까마귀, 멧비둘기, 어치, 오색딱따구리, 황조롱이 등을 꼽았다.

박새는 도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새이다. 4월23일 아파트 단지 내 나뭇가지에 앉은 박새가 애벌레를 먹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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