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한장] 카렌족 난민에게 온 ‘선물’
“하나, 둘 쏘세요!”
구령이 떨어지자 하얀 나무껍질의 자작나무 사이로 화살이 날아간다. 곧바로 “와아!” 하고 터지는 함성이 숲 여기저기로 번진다. 숲 속에서 나뭇가지로 만든 활을 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은 국내 재정착 1호 난민인 카렌족이다. 경북 김천에 위치한 국립김천치유의숲에 어린이날을 맞아 카렌족 난민 43명이 초청됐다.
이 날 이들은 투호 놀이도 하고 잣나무 속 해먹에서 낮잠도 자고 맨발로 산길을 걷는 등 하루 종일 숲 이곳저곳을 누볐다. 저녁에는 맛있는 흑돼지 바비큐도 먹었다.
재정착 난민이란 외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여 일정 기간 그 국가의 난민수용시설 등에서 거주하다가 다시 난민 자격으로 제3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이들을 말한다. 미얀마에서 소수민족으로 탄압을 받던 카렌족은 정치적 압박과 종족들 간의 싸움을 피해 태국·말레이시아의 난민캠프에 거주하다 유엔난민기구의 추천과 정부의 현지 심사를 거쳐 2015~2017년 한국에 입국했다.
재정착 난민은 주거 시설과 기초 생계비 등의 지원을 받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충분한 건 아니다. 영주권을 위해 많은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은 너무도 가난했던 미얀마나 태국에서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문득 배고팠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한국말이 늘수록 자신들을 가리키며 “지금 저 사람 난민이래, 난민”으로 시작하는 차별 섞인 발언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난민의 특성상 근로 시간이 많아 먼 곳으로의 나들이가 쉽지 않다. 기사를 통해 이런 난민의 사정을 알게 된 국립김천치유의숲 박한진 센터장은 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섰다. 화려한 여행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추진된 적이 없었기에 카렌족의 나들이에는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미얀마 대사관을 시작으로 경기 글로벌센터의 협조를 구하고 법무부의 사전 답사도 받았다. 관계기관인 김천시, 한국도로공사,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지원도 이끌어 냈다. 지원 예산은 산림청의 복권기금 녹색자금을 활용했다.
박 센터장은 “먼 길을 오셨는데도 밝은 얼굴로 즐기시는 카렌족 가족들의 모습을 보니 제가 더 행복하다. 이분들에게 한국이 좀 더 따뜻한 곳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행사에 관한 소회를 밝혔다.
이 날 나들이에 함께한 카렌족 소민우(23)씨는 “아버지와 저는 공장에 다니고 어머니도 일을 하신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버지가 새벽 4시부터 철강공장에 출근해 일을 익히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모두가 바쁜데다 부모님은 한국어도 서툴러 여행 자체가 쉽지 않은데, 이렇게 멋진 경상도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인사를 전했다. 카렌족 대부분은 경기와 인천에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그들은 “지금은 우리가 가진 게 없어 많은 것을 나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인정이 많은 따뜻한 이웃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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