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농업외교]② 대관령을 닮은 캄보디아 몬둘끼리에 전해지는 韓 농기술
씨감자 종묘 생산할 채소연구소 막바지 공사 한창
쌀 건조시설 지원으로 농가 소득 30% 이상 증대
현지 관계자 “종료 사업에도 공여국 계속 관심 가져달라”
지난달 22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동쪽 방향으로 5시간 가량을 달리니 왕복 2차선 도로 옆으로 고무나무 등이 있는 플랜테이션 농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시간을 더 달리니 산간 경사도로가 나왔다. 도로 옆은 울창한 밀림이었다. 캄보디아 최동단,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몬둘끼리’주(州)다.
해발 600m 산간지역인 몬둘끼리주는 강원도를 닮았다. 밀림이 마치 바다와 같이 펄쳐져 있다고 하여 ‘숲의 바다’(Sea Forest)라고도 불린다. 4월말 건기 막바지인 캄보디아, 프놈펜의 날씨는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였지만, 해발고도가 높은 몬둘끼리는 상대적으로 선선했다. 장시간 차량 탑승에 피곤해진 몸을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깨웠다.
고도가 높은 몬둘끼리는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다. 선선한 날씨에서 자란 ‘몬둘끼리산(産) 채소’는 캄보디아에서 고품질 채소의 대명사로 통한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 개발한 품종을 몬둘끼리주 농가들이 심기 시작하면서 농산물의 품질이 한차원 업그레이드 됐다고 한다.
2019년부터 몬둘끼리에서 농사를 지어온 쿨 랜(Kul Ren, 22)씨는 국산 배추 품종인 ‘오대’와 ‘썸머짱’을 심었던 자리를 가리키며 “몬둘끼리 날씨와 잘 맞는 품종이다. 품질이 좋아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소개했다. 렌씨는 이어“’플러그 육묘 재배’ 등 한국의 농법을 활용하니 생산량이 대폭 늘었다”면서 “오이맛 고추 등 몇몇 품종은 프놈펜의 한국 식당과 재배 계약을 맺었다. 몬둘끼리 안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값을 2배 가량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몬둘끼리에 전수되는 K-농법… “병충해 예방 효과 탁월”
한국 정부는 지난 2021년부터 몬둘끼리주에서 ‘고부가가치 채소 생산 및 가치사슬 개선사업’을 하고 있다. 총 사업비 57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현지에 채소연구소를 건립하고, 지역 농민들에게 영농기술을 전수하며 국내 개발 종자와 비료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오는 7월 준공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공사 중인 채소연구소는 씨감자를 비롯해 채소 육묘를 생산해 현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연구시설과 기숙사도 구비해 캄보디아 전국 각지에서 농업 관련 공무원이나 영농 후계자에 대한 연수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경운기와 트랙터 등 농기계도 지원해 현지 농가들이 필요할 때마다 빌려 쓸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영농기술 전수와 관련해선 농사를 지었던 땅을 다시 개간하고, 토양을 소독하는 방법을 가르친 게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몬둘끼리 현지에서 채소연구소 공사와 영농 교육을 맡고 있는 김일섭 전 강원대 교수는 “캄보디아의 토양은 물빠짐이 좋지 않아 병해충이 많이 발생한다”면서 “특히 우기에 전염병이 많이 퍼진다. 선도 농가들에 토양 소독 등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병충해 발생률이 현격히 개선됐다”고 말했다.
농가 소득 개선을 위한 마지막 퍼즐은 ‘물류 개선’이다. 캄보디아는 수도인 프놈펜과 인근 칸달주에 인구가 집중돼 있다. 소비 역시 수도권에서 이뤄진다. 몬둘끼리에서 생산한 채소도 프놈펜에서 거래돼야 값을 더 받을 수 있다. 판매처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량만 늘어날 경우 지역 내 채소 과잉 공급으로 가격이 폭락해 농가가 되려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관건은 물류다. 농가 개별 단위로 운송을 하는 현 방식으론 물류 비용이 많이 들어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송 킹(Song Kheang) 몬둘끼리 농림수산국 국장은 “물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도농가 위주로 공동출하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냉장트럭 운송 등 채소를 신선하게 배송하기 위한 콜드체인 물류 체계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330억 규모 달하는 캄보디아 농업 ODA… “프로젝트 연착륙 위해선 공여·수혜국 발 맞춰야”
농림축산식품부는 몬둘끼리주 외에도 끄라체주 ‘영농센터 지원사업’, 캄퐁참주 ‘쌀 건조저장시설 구축사업’ 등 8개의 농업관련 ODA 사업을 추진했다. 총 사업비 규모는 327억원에 달한다. 이중 6건은 사업을 종료하고, 현지 정부에 운영권을 넘겼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사업비 30억원이 들어간 캄퐁참주 ‘쌀 건조저장시설(DSC) 구축 사업은 수확한 벼를 건조하고 도정·저장하는 시설을 지어준 프로젝트다. 캄보디아는 건조 시설이 부족해 농가들이 수확한 벼를 ‘물벼’ 상태나 노천 건조 상태로 유통상에게 판매하고 있다. 건조 후 도정까지 마치고 쌀을 판매하면 값을 더 받을 수 있지만, 시설 여건이 열악해 농민들에겐 ‘언감생심’인 상황이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 농식품부 ODA 사업을 관리하는 한종수 캄보디아 ODA 데스크 소장은 “현지 농가의 생산액을 조사한 결과 물벼 상태로 판매하는 벼의 경우 톤당 평균 78만리엘(한화 23만5000원)에 거래된 반면, DSC를 이용해 건조한 벼는 톤당 평균 107만리엘(35만8000원)에 거래됐다”며 “벼 건조시 들어가는 수수료 6만리엘을 고려하더라도 물벼 상태로 판매하는 것보다 톤당 평균 22만리엘을 더 받을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 프놈펜 남부 타게오주에 농촌공동체개발센터를 지어주는 프로젝트와 식량안보 정보시스템(AFSIS) 협력 사업을 신규로 추진한다. 농촌공동체개발센터는 당초 박근혜정부 시절 ‘지구촌 새마을 운동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추진됐으나, 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프로젝트 이름이 ‘농촌공동체 개발’로 변경됐다.
농업 ODA 프로젝트는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취지로 개도국의 농촌 개발과 인프라 개선에 중점을 맞추고 추진된다. ODA 사업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선 공여국의 지원과 수혜국의 관심이 보조를 맞춰야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일단 인프라 먼저’ 식으로 시설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지만, 정작 지어놓은 시설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라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수혜국이 원한다고 해서 모든 ODA 사업을 추진할 순 없다. 현지에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효과가 확실한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잘 만든 ODA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올린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선택과 집중’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프락 치아토 캄보디아 농림수산부 부국장은 “캄보디아에는 각국의 ODA 지원으로 지어진 농업 관련 시설이 많지만, 일부는 가동이 잘 안 되고 있다”면서 “건물과 시설을 만든 후에도, 마치 아이를 출산한 후 육아를 하는 것처럼 운영이 잘 될 수 있도록 공여국이 계속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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