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은 어디에서 팝니까? [책&생각]

한겨레 2024. 5.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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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추리소설을 한 권 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판매고에 좌절하는 단계는 한참 전에 넘어섰지만, 의기소침해지긴 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하며 하소연했다.

그중 한 명, 평소 존경하는 추리소설 전문서점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김재희 작가는 고전적인 트릭을 사용하는 '경성 탐정 이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역사 추리물과 정통 범죄 스릴러로 이름을 알린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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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분식
김재희 지음 l 북오션(2024)

지난해에 추리소설을 한 권 냈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모른다는 사실이 잘 팔리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판매고에 좌절하는 단계는 한참 전에 넘어섰지만, 의기소침해지긴 해서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하며 하소연했다. 그중 한 명, 평소 존경하는 추리소설 전문서점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코인세탁소’가 제목에 들어가면 연상하는 힐링 소설적 분위기가 있는데 작가님 작품은 그런 장르가 아니니까요.” 내 책에도 나름대로 위로는 있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확실히 다른 베이커리, 세탁소, 서점, 편의점, 꽃집이 배경이 되는 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종류의 힐링은 아니다. 일상의 공간이 등장하면 독자들은 치유 소설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 바로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이 무언가를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곳에서 치유의 감각도 함께 제공한다.

기실 내가 ‘유미분식’을 집어 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밥보다 분식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부터 내 몸의 5할 정도는 밀가루가 키웠으리라. 그 덕에 대사 증후군을 걱정하는 성인으로 살지만 분식에는 늘 복고적인 향수를 느낀다. 죽고 싶을 때도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감정에 모두 공명하는 시대에 분식이야말로 최상의 치유이다. 특히 나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분식을 금지당했기에, 라면과 돈가스 이야기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이 소설은 약간은 순진한 방식으로 그런 기대에 부응한다. 김재희 작가는 고전적인 트릭을 사용하는 ‘경성 탐정 이상’을 비롯해서 다양한 역사 추리물과 정통 범죄 스릴러로 이름을 알린 작가이다. 최근에는 좀 더 일상적이고 경쾌한 방향으로 작품 경향이 바뀌었는데 ‘유미분식’도 그 계열에 있는 작품이다. 매장 김밥, 돈가스, 쿨피스와 떡튀순, 어묵탕과 라면, 열무 비빔국수 등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해서 유미분식 이웃들의 사연과 그에 맞는 레시피가 펼쳐지는 형식이다. 이런 익숙한 구성은 기대에 맞기 때문에 단점은 아니지만, 이웃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캐릭터가 등장한다기보다 전형적으로 보인다. 은행원, 은둔형 외톨이, 동네에서 장사하는 이모, 취업준비생이 나올 때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힐링 소설을 쓰겠다는 기획적 의도가 작품의 내용보다 더 강하게 돋보인다.

하지만 ‘유미분식’은 후반부에서 작가의 개성이 발휘되며 개별성을 획득한다. 이 소설에는 아주 약한 추리적 요소가 있는데 이런 장소 특정적 힐링 소설들이 갖는 인위성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분식집 딸 유미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단골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엄마의 손맛대로 만들어 대접한다. 식당 소재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만들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 점이 바로 ‘유미분식’에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수수께끼의 핵심이다.가장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은 유미분식 사장님의 암 투병기가 그려지는 마지막 장이다. 경자 사장님의 절망과 희망이 생생하게 잡히는 건 작가 본인의 투병 경험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위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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