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을] 이야기―차선 긋는 사람들
한겨레 2024. 5. 10. 05:05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차선 긋는 사람들에게
배웠지 지금처럼 미래는
작은 집에서 큰 집을 상상하고
끼니를 때우고 빨래를 개고
저녁이 오면 몰래 슬퍼하면서
긴 밤이 오길 기다리듯
그래도 된다 미래는
어쩜 저리 반듯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나는
부럽다 요란하게
도로 위에 선을 긋는
사람들이 그들의 점거와
그 뒤로 밀려 있는 차량들이
미래는 아니고 그보다
착각에 가깝지 않나 미래는
새로 덧칠한 오래된 선이나
밀려 있는 차량의 운전자들
멀거니 내다보는 차창 밖 노을이
미래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몸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거나
주린 배를 견디며 침대에 누워보듯
내가 없어도 된다 미래는
하루를 거의 다 보냈다
차선 긋기는 곧 끝날 것이다
유희경의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현대문학,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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