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야 한다는 거짓말 [책&생각]

한겨레 2024. 5. 1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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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에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 보았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그 무렵 한국계 미국인이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물건을 훔쳤다고 오해하고 총을 발사한 일까지 겹쳐 코리아타운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 영화를 만들까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이 이해될 만큼 집을 나서자마자 조던에게 겹겹의 위기가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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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존 조 지음, 오승민 그림, 김선희 옮김 l 도토리숲(2023)

여덟 살에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타 보았다. 일가친척이 모두 모인 김포공항에서였다. 아이들은 잔칫날인 양 신났지만, 그날 작은아버지가 미국에 이민을 갔다. 1970년대 후반이었다.

미국에 이주한 첫 아시아인은 중국인 노동자였다. 1820년, 미국 대륙횡단열차 건설을 위해 동원되었고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렸다. 한국계 작가 린다 수 박의 ‘초원의 연꽃’은 이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1903년, 조선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계약노동자 신분으로 이주했다. 하와이 노동자들은 1910년부터 한국에서 신부를 구했다. 이금이 작가는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사진신부’라고 불린 한국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복원해 냈다. 내 작은아버지가 떠났을 무렵, 한국계 영화배우 존 조의 가족 역시 미국으로 향했다. 1965년 미국이민법 개정 이후 1970~1980년대에 많은 한국인이 미국행을 택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문제아’는 존 조의 자전적 작품이다. 엘에이(LA) 폭동이 시작된 1992년 4월29일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그린다.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문학상 영예상 수상 작품이다.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수여하는 이 상은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 아시아인이 미국에 간 지 2백여년. 그 긴 세월 동안 미국 내 아시아계 이민자의 인권과 차별에 대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엘에이 폭동은 1991년 로드니 킹이 로스앤젤레스 경찰관들에게 심하게 맞았지만, 1992년 폭행 경찰관들이 무죄를 선고받자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며 시작되었다. 그 무렵 한국계 미국인이 가게에서 흑인 소녀가 물건을 훔쳤다고 오해하고 총을 발사한 일까지 겹쳐 코리아타운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아’는 한국계 이민자와 흑인의 대립으로 귀결된 엘에이 폭동을 배경 삼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폭동이 일어난 날, 주인공 조던의 아빠는 가게를 지키겠다고 나서지만, 연락이 끊긴다. 맨몸으로 가게에 간 아빠를 위해 조던은 집에 숨겨둔 총을 가져다주기로 한다. 게다가 불량한 친구 마이크와 동행하다니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처음 영화를 만들까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이 이해될 만큼 집을 나서자마자 조던에게 겹겹의 위기가 닥친다.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가족의 진실이 드러난다. 조던의 아빠는 자식을 위해 이민을 왔지만, 장사에 서툴다. 엄마 아빠는 돈 문제로 싸우며 아들에게는 “걱정하지 마”라고만 했다. 집이 불안정해지자 성적이 떨어진 조던도 부모가 실망할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아빠는 아들에게 “나는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왜 나쁜 아이가 되었니?”라며 화를 낸다. 조던 역시 “가게를 지키지도 못하면서 아빠는 왜 여기에 왔어요!”라고 대꾸한다. 맘에 없는 말을 해버린 조던은 어떻게든 아빠를 돕고 인정받는 아들이 되려고 애쓴다.

물론 하룻밤 사이 너무 많은 진실을 본 조던의 세계는 달라진다. “아시아계는 착하고 조용해서 방해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도 의문을 품게 된다. 그날 밤 조던은 세상에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아이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내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조던의 고백은 정형화된 아시아계의 이미지를 거부하는 배우 존 조의 현재와 겹쳐진다. 중1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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