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수박 사려면 왕복 80㎞, 버스노선도 없어…먹고사는 데 불편함 없게 해줬으면”

이현진 기자 2024. 5.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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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식품사막] (상) 주민 생존 위협
강원 춘천 북산면 청평2리
대파·수박 사려면 왕복 80㎞
굽이굽이 위험천만 산길 운전
20분 거리 하나로마트에 숨통
신선식품 업체 공급 꺼려 한계
작목 일부 농사지어 자급자족
“교통 여건 개선됐으면” 하소연
강원 춘천시 북산면 청평2리에서 춘천 시내로 오는 길에 있는 한 상점. 운영을 안한 지 오래돼 폐쇄돼 있다.

강원 춘천 시내에서 출발해 자동차로 40분. 도시를 빠져나와 한적한 교외와 터널, 산과 산 사이로 난 좁은 도로를 지나면 이내 춘천 외곽에 자리한 북산면에 닿는다. 다시 북산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차로 20분. 우회전 후 좌회전, 다시 우회전.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될 산길을 굽이굽이 달린다. 그렇게 시내에서 차로 1시간여 만에 도착한 이곳. 골짜기가 세개 있다고 해 ‘삼막골’이라 부르는 청평2리다.

“마침 시내에서 장 보고 오는 길이에요. 마을사람들과 내일모레 여기(마을회관)서 같이 점심 먹으려고요. 뭐 많이 사온 건 아닌데….”

김재길 청평2리 이장(왼쪽)이 왕복 2시간 거리를 달려 사온 식재료를 부녀회장에게 보여주고 있다.

김재길 청평2리 이장(74)이 작은 상자를 들고 차에서 내린다. 무엇을 사왔는지 보니 대파 한단과 수박 한통, 오렌지 한봉지가 전부다. 이 식재료를 사오려고 김 이장이 다녀온 거리는 왕복 약 80㎞. 그 길도 흔히 생각하는 쭉 뻗은 도로가 아니다. 차 한대만 지날 수 있는 좁게 난 산 중턱의 도로를 한동안 차로 달려야 한다. 달리는 중간 맞은편에서 차가 오기라도 하면 사고 날 위험이 높은 환경이다.

청평2리는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주변이 물에 잠겨 한동안 배를 타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던 곳이다. 김 이장은 “지금은 산길로 육로가 났지만 버스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 건 마찬가지”라며 “근방에 가게가 없어서 먹을 걸 사려면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춘천 시내까지 못해도 편도 50분은 걸리는데 왕복 기름값만 해도 만만치 않다”며 “그나마 차가 있는 사람은 다행이고 운전을 못하는 어르신들은 장을 대신 봐드리는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론 꼭 시내까지 나가야만 먹거리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차로 20여분 나가면 지역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있다. 인근 주민들에겐 마치 오아시스처럼 고마운 곳이다.

이곳에선 과자·라면·통조림 등 가공식품과 두부·콩나물 등 일부 냉장식품을 판매한다. 다만 과일이나 우유·달걀 등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을 사긴 어렵다. 주민들을 위해 최대한 신선식품을 들여놓으려 하지만, 유통업체가 이곳까지 물건을 공급하길 꺼리는 탓에 판매할 수 있는 제품에 한계가 있다.

더욱이 청평2리 마을주민들은 외부에서 온 택배도 이곳 하나로마트까지 나가야 받을 수 있다. 운송기사들이 마을까지 들어오지 않아서다. 도시에선 ‘새벽배송’ ‘하루배송’ 등의 개념에 익숙해진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문 앞에 오는 게 당연하다 할 택배마저 이곳 주민들은 마을에서 10㎞를 나가야만 받을 수 있다.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마을주민 김선종씨(73)는 “때마다 제철 과일을 먹는다든지 하는, 도시에서 사는 것처럼은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보통 보름에 한번 정도 나가서 장을 봐오거나 옥수수·토마토·오이 등 직접 농사지은 걸로 자급자족하며 지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도 냉장고가 있으니까 굶어 죽지는 않지만 좀더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 여건이 개선됐으면 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해말 청평2리 주민들은 춘천시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마을버스 노선을 만들어달라는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시로부터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받으며 사실상 요청이 거절된 상태다.

시가 2021년부터 농산물꾸러미사업을 통해 지역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먹거리 지원을 펼치고 있기는 하다. 65세 이상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여러 신선채소와 달걀·가공식품 등 3만원어치의 식재료를 연중 3회 공급한다. 다만 조사 결과 청평2리의 31명 주민 가운데 해당 사업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3명에 그쳐 보다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 어르신인 김용수씨(84)는 “국가에선 농촌을 보전하라고 해놓고 살기 어려운 환경으로 계속 방치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 농사짓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우선 농사짓고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람이 더 많아지진 않더라도 그나마 유지는 할 수 있도록 먹고사는 데 불편함이 없게 해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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