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사려면 차로 1시간 ‘식품사막’…도시처럼 장보는 일상은 꿈
식료품점 없는 지역 확산
2020년 행정리 3만7563개 중
소매점 전무한 곳 2만7609개
마을 열에 일곱 근처 마트 없어
농촌 먹을거리 많다는 건 착각
고령화돼 영양학적 가장 부실
맞춤 식품배송 체계 구축 필요
‘주변에 식품을 살 만한 곳이 없다고?’ 곳곳에 편의점·마트·시장이 즐비한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품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농촌은 다르다. 생활문화 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은 차로 1시간은 족히 나가야 그나마 라면이나 즉석식품을 살 수 있다. 식료품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지역이 넓어지는 이른바 ‘식품사막’ 현상이 농촌을 중심으로 나타나면서 주민의 생존마저 위협한다. 디지털기기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이 많아 온라인 유통망을 활용하기 어려운 데다, 이동수단도 마땅치 않은 탓이다. 식품사막 문제가 주민 삶의 질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2회에 걸쳐 진단한다.
전국 2만7609곳 농촌마을에는 공통되게 없는 ‘무엇’이 있다. 바로 ‘식료품 소매점’이다. 도시에선 슬리퍼를 신고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 달걀·두부·라면을 사는 게 평범한 일상이라면 이들 농촌마을에선 꿈같은 일이다.
비율로 따지면 상황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통계청의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국 행정리는 3만7563개다. 소매점이 없는 마을이 전체의 73.5%에 달하는 셈이다. 농촌마을 열에 일곱은 가까운 곳에 식료품을 살 만한 가게가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소매점이 없는 마을 비율이 90%를 넘는 시·군 단위 지방자치단체도 6곳이나 됐다. 이 가운데 식품사막이 가장 심한 지자체는 전북 정읍시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정읍시의 555개 행정리 가운데 소매점이 있는 곳은 37곳에 불과했다. 소매점이 없는 마을의 비중은 93%가 넘는다. 전남 영광군이 92.1%로 그 뒤를 이었고, 대구 군위군(91.7%), 전남 순천시(91.6%), 충남 청양군(91.2%), 충남 계룡시(90.3%)도 식품사막이 극심한 곳으로 드러났다.
소매점이 없는 마을 비율이 90%가 넘는 한 지자체 담당자는 “과거엔 살고 있는 마을에 식료품점이 없더라도 옆마을엔 있어서 조금만 품을 들이면 식품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주변 마을에도 점포가 죄다 사라져 마을간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식품사막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섬을 제외하고 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 나가야 소매점이 있는 마을도 전국적으로 14곳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소매점 접근성이 1시간 이상인 마을은 강원 춘천시와 전남 순천시에 집중됐다. 가령 춘천시 북산면의 한 마을은 접근성이 1시간40분으로 전국에서 가장 열악했다. 이 외에도 북산면 3곳, 사북면 1곳이 1시간을 넘겼다. 순천시는 송광면 일대 마을 5곳이 1시간 이상 소요됐다.
박진희 전북 장수군애향교육진흥재단 사무국장은 “농촌엔 먹을거리가 많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농촌 고령층이 영양학적으로 가장 부실한 집단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현실이 녹록지 않다”면서 “장보기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근력이 떨어진 고령층이 많은 농촌의 식품사막 현상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농촌 내 심각한 식품사막문제는 편의점 풍경도 바꿨다. 농촌지역 출점 기준을 까다롭게 설정하면서도, 일단 출점이 결정되면 규모를 크게 하고 주차장 시설을 완비해 중형마트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식이다.
편의점 업체 CU의 한 관계자는 “주로 차를 타고 방문하는 농촌 고객의 특성을 반영해 도시 점포와 달리 주차장 공간을 넓게 확보하고, 용량이 많은 제품을 진열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서 “다만 중장기적으로 농촌인구가 계속 줄어드는 만큼 농촌지역에 출점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식품사막 문제는 농촌에 한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추후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로까지 번질 것으로 예상돼 그 심각성이 크다. 실제로 중간 규모의 도시에서는 구도심을 중심으로 이미 식품사막화가 진행된 곳이 적지 않다.
충남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시내 신도시가 생기면서 구도심 공동화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인구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식료품점이 문 닫는 속도가 더 빨라 기존에 남아 있던 주민들의 불편이 날로 커진다”고 설명했다. 박 사무국장은 “식품사막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수혜자가 장애가 있는지, 저작활동이 가능한지, 이동이 자유로운지 등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면서 “이같은 분석자료를 바탕으로 1대1 맞춤형 식품 배송 체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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