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밥상 60년, 주린 배 채우던 시절 지나 맛·건강 챙기는 시대로

최소임 기자 2024. 5. 1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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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업 60년 변천사] (1) 밥상 변천사
한국전쟁 이후로도 식생활 궁핍
밀 중심 식사…미국산 원조 영향
60년대 쌀소비 감축·혼분식 장려
70년대 증산 계획 쌀 생산량 증가
80년대 이후 서구식 식습관 확산
2022년 1인 육류소비량 쌀 넘어
쌀 가공식품으로 소비 창출해야
이미지투데이

일제강점·한국전쟁·산업화 등 굴곡진 역사만큼 우리 밥상도 시대별로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쌀밥 한그릇 배불리 먹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은 잊히고 밥상에서 미식과 건강을 좇는 시대가 도래했다. 광복 이후 시대에 따른 밥상의 변화를 짚고, 우리 농업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시대별 밥상 변천사=일제강점기 자행된 식량 수탈에 이어 한국전쟁을 지나면서 식량 부족은 일상이었다. 일제는 군량미 조달을 위해 국내에서 생산된 쌀을 공출해갔다. 광복 이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농업 생산기반이 파괴되면서 식생활은 더욱 궁핍해졌다.

서민 가정에서 쌀밥을 구경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보리밥이나 감자·옥수수 등으로 배를 채웠다. 1956년부터 1964년까지 미국에서 50만t이 넘는 밀·보리·쌀 등 곡물이 들어와 우리 식탁에 올라왔다. 이는 국민 300만명 이상이 1년간 소비할 수 있는 양으로 전후 식량난 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

1960년대 역시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했던 시기였다. 전후 복구, 자연재해 등으로 곡물 생산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부는 대안으로 ‘혼분식 장려’를 들고나왔다. 1964년 정부는 양곡소비절약지침을 통해 절미운동을 전개했고, 1969년에는 무미일(無米日·쌀을 먹지 않는 날)을 지정해 운영하기도 했다. 주류 제조를 제한하고, 잡곡과 밀가루 소비를 장려했다. 쌀 소비를 줄이고, 미국에서 들여온 밀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쌀·보리밥과 채소를 주식으로 먹던 국민들은 이 시기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빵·국수·수제비 등을 많이 먹게 됐다. 1963년에 국내 최초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이 생산되면서 새로운 먹거리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70년대 정부의 증산 계획에 따라 ‘통일벼’ 등 다수확 품종이 개발되면서, 쌀 생산량은 1971년 399만8000t에서 1976년 521만5000t으로 증가했다. 생산량 증대에 따라 정부는 쌀 소비억제정책을 완화했다. 1977년부터는 다시 쌀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 제조를 허용했으며, 혼식을 강제하던 정책을 권고 정도로 기준을 낮췄다. 1969년 124.5㎏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1979년 135.6㎏으로 늘어나 정점을 찍었다.

산업화로 경제가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1980년대 이후 국민 식생활은 큰 변화를 보였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는 서구식 식습관이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곡류 소비는 줄어들고, 육류 등 동물성 식품과 과일 소비가 늘어났다. 1970년 5.2㎏에 불과하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90년 19.9㎏까지 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30㎏대로 올라선 뒤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과일 소비량은 1980년 22.3㎏에서 1990년 50㎏대까지 늘었고, 2007년 67.9㎏으로 정점을 찍었다.

쌀보다 고기를 많이 먹는 시대=산업화를 거치며 우리 밥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쌀 소비 감소와 육류 소비 증가를 꼽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반면, 1인당 육류 소비량은 60.6㎏으로 쌀 소비량을 웃돌았다. 2022년 처음으로 1인당 육류 소비량이 쌀을 앞질렀는데, 1년 만에 격차가 더 커진 것이다. 1인당 육류 소비량 가운데 돼지고기가 30.1㎏으로 가장 많이 소비됐다. 닭고기(15.7㎏)와 쇠고기(14.8㎏)가 그 뒤를 이었다.

소비자들의 선호에 힘입어 축산업생산액 증가율은 전체 농업생산액 증가율을 앞질렀다. 통계청의 ‘통계로 본 축산업 구조’에 따르면 1965∼2018년 농업생산액이 연평균 9.6% 증가한 데 비해 축산업생산액은 연평균 12.2% 증가했다. 축산농가 소득증가율도 전체 농가소득과 비교해 큰 증가세를 보였다. 보고서는 1993년부터 2019년까지 농가소득은 연평균 3.5%, 축산농가소득은 연평균 4.4%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육류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축산업이 성장했지만 지속가능한 축산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외 육류 수입의 증가 ▲축산업에 관한 부정적 인식 ▲육류 부위별 수급 불균형 등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 생산을 늘려 쌀 수급 불균형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원조에서 비롯한 밀 중심 식문화=국내 1인당 밀 소비량은 2020년 기준 31.2㎏으로 곡류 중 쌀 다음을 차지한다. 쌀과 보리를 주식으로 삼던 우리나라의 밀 소비가 늘어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1950년대 미국의 원조에서 찾을 수 있다. 1955년 5월 한미잉여농산물협정이 체결되면서 밀을 비롯한 미국산 잉여농산물이 국내로 들어왔다.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곡물은 국내 곡물 생산량의 14%를 차지했고, 그중 밀이 70%였다. 가격도 쌀의 6분의 1 수준이어서 많은 사람이 쌀 대신 밀을 찾았다. 정부도 밀 소비를 장려했다.

밀은 쌀 다음 많이 먹는 곡물이지만 오늘날 사료용을 포함한 국내 자급률은 1%가 되지 않는다. 99%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값싼 미국산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우리밀 생산기반이 무너졌다는 평가다.

식량안보 차원에서 밀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된다. 정부는 2020년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밀 자급률을 2025년 5%까지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생산기반이 취약하고 우리밀 수요가 적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밀산업 중장기 발전방안 수립 연구’에서 “일반 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에 관한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져야 비로소 국산 밀의 자급률이 올라가며, 앞으로도 소비자 접근성 확대가 정책으로 구체화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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