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도진 녹음 공포증… “늘 생방송하는 심정으로 통화”

김태준 기자 2024. 5. 10.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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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톡톡]
배현진이 공개한 ‘이철규 녹취록’ 여파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과 배현진 조직부총장이 2023년 6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같은 당 이철규 의원의 원내대표 출마 문제를 놓고 이 의원과 나눈 통화 녹음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자 의원들 사이에서 “녹음·캡처 포비아(공포증)가 도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화 상대방이 통화를 녹음하거나 모바일 단체 대화방 대화를 누군가 캡처해 예상치 못한 폭로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다.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제는 의원끼리 통화도 안심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통화 녹음이 공개돼 문제 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한 국회의원이 기자와 통화하며 지도부를 비난했는데, 통화 녹음이 보도돼 공천에서 탈락했다. 지난 대선 때는 국민의힘 경선을 앞두고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원희룡 전 제주지사와 통화한 내용의 진위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다가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은 “전에는 선거철 등 민감 시기에만 조심했다면 이제는 모든 전화를 생방송 출연해 있다는 느낌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의원들은 최근 통화 공포증이 커진 이유로 3가지를 꼽는다. 스마트폰의 자동 통화 녹음 기능이 보편화됐고, 음성을 문자로 변환해 정리하는 기술이 발달해 몇 년 치 통화 내역을 보관했다가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가 발달해 녹음을 공개하기도 쉬워졌다.

한 여당 의원은 “내가 녹음하지 않아도 상대가 녹음할 수 있어 전화로는 절대 민감한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원인이 통화 녹음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편집해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통화 내용을 모두 녹음해 보관한다는 의원도 있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모르는 사람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는 글을 남기지 않는 게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보편화됐다. 대화 내용이 캡처돼 외부로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여당 재선 의원은 “의원들만 있는 단체 대화방에 올라온 글도 반나절이 안 돼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에 첨예한 사안이 있을 때면 의원들이 더 조용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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