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안사귄다” 했다고… 여성 2.7일에 한명꼴 남성에 피살
작년 교제폭력 사망 여성 최소 138명… 정부는 교제폭력 공식집계도 안해
구속수사율 2.2% 그쳐… 신고 소극적
美-英-獨, 가정폭력 수준으로 보호
지난해 2월 경남 창원시 한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이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범인은 교제하던 60대 남성이었다. 여성이 이별을 통보하자 수차례 위협하다가 실제로 흉기를 휘두른 것. 피해 여성은 이틀 후 사망했다. 법원은 가해 남성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 ‘데이트 살인’, 알려진 것만 사흘에 한 명
정부는 교제폭력에 따른 사망자를 공식 집계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2019년 12월 시행된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라 여성폭력 통계를 3년마다 수집해 공표하고 있지만, 교제폭력 집계는 실시하지 않는다. 관련 자료를 수사기관으로부터 제공받을 수밖에 없는데, 정작 경찰이 사용하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에는 교제폭력이라는 분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이 교제폭력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112신고접수시스템에서 가해자가 ‘애인 등’으로 분류된 사건을 수기로 분석한 결과 검거 인원 가운데 구속 수사를 받는 비율은 1, 2%대에 머물렀다. 지난해엔 1만3939명이 112신고 당시 교제폭력으로 의심됐던 사건으로 검거됐는데, 그중 구속수사를 받은 이는 310명뿐(2.2%)이었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소장은 “매년 정부에 ‘통계라도 있어야 제대로 된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이 가능하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듣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접근 금지 기준 없어 소극 대응
이는 실제 교제폭력 피해자가 적극적인 신고를 꺼리는 현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토킹 등의 범죄와 달리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기 위한 접근 금지 명령 신청 등 별도 조치에 관한 규정도 없다.
특히 피해자는 심리적 무력감 및 사법적 보호망 부재로 신고에 소극적인 상황이다. 어렵사리 신고를 결심해도 가해자가 이내 풀려나는 경우가 적잖다고 보는 것이다. 살해 위협까지 당해도 가해자의 압박에 못 이겨 합의하거나 신고를 취소하는 상황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폭행죄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해 8월 부산 동구에선 4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에게 ‘죽이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203차례 전송하는 등 1139차례에 걸쳐 접근을 시도한 끝에 흉기를 들고 찾아갔다가 체포된 사례가 있었다.
김 소장은 “피해자들이 ‘나 혼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나서길 주저하는 것도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상담소 등 도움받을 수 있는 경로를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해외의 경우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가정폭력 피해자와 동일선상에 두고 적극적인 보호 조치를 펼치고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선 교제 관계 피해자도 가정폭력 피해자와 동일하게 보호하는 법적 조항을 마련했다. 일본은 2010년대 초반부터 배우자폭력방지법의 적용 대상을 ‘주거지를 공유하는 교제 관계’로 확대했다. 신영숙 여가부 차관은 이날 “법무부 등 관계 부처와 모여 교제폭력 대책을 논의하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건희 특검’ 두고 “전정권 혹독수사” “피꺼솟” 檢-尹 균열
- [이기홍 칼럼]尹 대통령, 바꿔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혼동해선 안 된다
- [단독]‘의대생 살인’ 피해자, 지난달 팔 부상 입원…경찰 “관련성 배제 안 해”
- 김병민 “당과 대통령실 변화 없으면 한동훈 당대표 출마 가능성”[중립기어]
- 野 “尹, 국어시험에 영어 답” 與 “하나마나한 100분”
- [사설]‘검수완박 시즌2’ 시동 건 野… 보복하듯 밀어붙일 일 아니다
- 냉장고에 있는 물을 마시기가 두렵다
- [횡설수설/정임수]日 ‘네이버 축출’ 본격화… 우리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나
- 국회의장 친명 4파전… ‘명심(明心) 경쟁’ 불 붙었다
- 與 원내대표에 ‘TK 3선’ 추경호… “108명 단일대오로 거야 맞설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