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디지털 주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4. 5. 10.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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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디지털 심화(Digital Sophistication) 흐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AI(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은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를 넘어 이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긴 창작의 영역까지 넘본다. 디지털이 인간을 돕고 보완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공존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은 전 세계적 연결성과 즉시성을 갖기 때문에 국경을 넘나들며 적용되는 특성을 가진다. 이 때문에 디지털 심화로 인한 변화는 국가 간의 협력은 물론 때로는 갈등과 경쟁을 유발한다. 특히 디지털 심화의 동인이자 성과물인 플랫폼, 데이터, AI기술과 규제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지난 4월24일 미국 연방의회는 중국 바이트댄스의 숏폼(짧은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강제매각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틱톡이 중국 기업 산하에 있는 한 미국인 이용자 데이터를 중국 정부에 넘길 가능성이 높아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디지털시장법(DMA)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제정해 미국 빅테크의 EU시장 진출에 강력한 제한을 가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한 데 이어 지난 3월13일 EU 의회는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를 담은 AI법을 통과시켰다. 실시간 생체정보 인식 등 8개 분야의 AI를 금지하고 고위험 AI에 대해 기본권 영향평가, 적합성 평가 등 규제를 도입했고 범용 AI에 대해 저작권법 준수, 학습데이터 요약본 공개의무를 부과했다.

중국은 이미 2017년 네트워크안전법에 자국 내 개인정보와 중요 데이터가 해외로 이전되지 못하도록 서버의 중국 내 설치를 의무화하고 당국의 승인 없이는 데이터의 해외반출을 금지했다. 2021년 시행된 데이터안전법은 조직이나 개인은 주무부서의 승인을 거치지 않으면 외국의 사법 또는 법 집행기구에 데이터를 제공할 수 없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디지털산업에서 재건하고자 반도체·AI분야 지원정책을 강화하고 법제정비도 서두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악성코드에 감염돼 일부 내부 시스템을 공유한 '라인야후'에서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하자 일본 총무성이 2차례에 걸쳐 사이버 보안 확보를 위한 행정지도를 실시했다. 이 행정지도에는 '위탁처인 네이버로부터 자본적 지배를 상당수준 받는 관계의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체제 재검토'가 포함됐다. 이는 자국의 플랫폼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경영권을 배제하려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과 EU는 법률을 제정해 외국 플랫폼기업의 시장퇴출 내지 제한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나 미국이 좀 더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한 법률이란 점에서 미국의 여러 빅테크를 대상으로 한 EU와는 다르다. 중국 정부는 법제와 별도로 이미 구글, 메타,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넷플릭스 등 미국 플랫폼과 한국의 카카오톡을 차단했다.

일본은 법률도 아니고 법률에 근거한 행정처분도 아닌 행정지도라는 모호한 성격의 행정작용을 통해 사실상 외국 플랫폼의 퇴출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행정지도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민간인에 대한 협조요청이지만 관료주의가 강한 일본에서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으면서 사업을 하기 어렵다.

이처럼 미국, EU, 중국, 일본 등 주요 열강들은 자국의 디지털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법규제와 행정집행을 강화한다. 제조업의 눈부신 성과에 이어 검색, 메신저 등에서 디지털 주권을 확보했고 해외로 진출하려는 한국의 꿈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더구나 정부 일각에선 플랫폼기업에 대한 규제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데이터나 AI분야의 규제혁신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구한말 열강의 경쟁 속에서 대한제국의 실패가 또 재연되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럽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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