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73.마을을 동화로 만드는 조각가 장회준

최돈선 2024. 5.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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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마음을 둥글게 빚으니 어느새 마을은 가족이 됐다
깨어있는 마을 인제군 신남리
서른 중반 고향 자연으로 귀향
도시 떠나 안심·동심 되찾아
초교생 작업실서 그림 배우기도
개인·그룹전·지역 내 활동 활발
작품 화단 관심·관람객 주목 받아
그리워하는 사람 찾아오는
마을의 자부심 큰바위 얼굴
▲ 장회준 조각가의 작업모습

신남 마을은 오월의 초록빛으로 에워싸여 있다. 거북이 등처럼 낮게 엎드린 마을은 맑은 햇빛이 앙금처럼 번뜩인다. 마을 버드나무 숲에선 호수 산등성이에서 날아온 새들이 깃을 치고 있다.

마을 이름은 인제군 남면 신남리. 소양댐 최상류에 위치한다. 6.25 전쟁 후 이 마을은 급조된 판자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어느 마을보다 번영을 누렸었다. 강을 낀 관대리 쪽으로 군단 병력과 미군 부대가 진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은 밤이나 낮이나 군인들과 민 간인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소양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수몰지가 된 군단은 타지로 떠나야 했다. 마을은 점차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마을보다 깨어있는 마을이었다. 북쪽 능선 고갯길을 넘으면 소양댐 호수가 보였고, 양구군이 나왔다. 동쪽 설악산 준령을 넘으면 속초와 양양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서울은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훗날 대통령이 된 젊은 정치가가 손스피커를 잡고 거리 유세를 하던 곳이 신남이었다. 그 젊은 정치가는 아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나 군사쿠데타로 국회에 들어가지 못했다. 정치의식이 있고 교육열이 무척 높은 마을이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도시로 유학 보냈다. 유학 간 아이들은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돌아오거나, 어떤 이는 고위공무원으로 퇴직한 뒤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 장회준 조각가가 거주하고 있는 인제 신남마을 풍경.

귀향 1996년 어느 날, 서른 중반의 한 여성이 돌아왔다. 그니는 춘천여고와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온, 촉망받는 예술가였다. 그니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처럼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도회지에서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그니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냄새를 맡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그니의 이름은 장회준. 동네 사람들은 돌아온 장회준 작가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우체국장을 역임한 아버지는 너그러이 그니를 받아들였다.

장회준의 집은 면사무소 오르막길 중턱에 있었다. 그니는 오랜 시간을 작업실에서 무엇인가를 했다. 이따금 초등학교 아이들이 오후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오곤 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조용히 그림을 그렸다.

장회준은 이따금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국내외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곤 했다. 비록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지만, 장회준은 문화일보가 주관하는 우리나라 ‘100인의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서 활동했다. 그것을 아는 이는 동네에 아무도 없었다.

장회준 조각가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자연 관조에 따른 마음의 치유를 작품에 담고 싶어서였다. ‘세상의 거친 골목에서 빠져나온’ 그니는, 자신을 품어 안을 유일한 곳이 고향임을 깨달았다. 고향의 자연은 늘 어머니와 아버지였고, 따뜻한 가족이요 이웃이었다.

▲ 장회준 조각가의 작품

장회준은 삭막한 도시를 떠나 고향에서 안식과 동심을 되찾았다. 2012년 서울 인사동 M갤러리에서 장회준 개인전이 열렸다. 타이틀은 ‘healing of a heart’였다. 그니가 내놓은 작품은 작가의 모든 오감을 열어놓은 동화였다. 흐르는 구름 조각, 그네 타는 소녀, 사이프러스 머리에 걸린 초승달, 망원경과 창가의 화분, 누워있는 신화의 여인, 삶의 일상에서 조용히 일탈하여 자신만의 원초적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들. 이 몽환적인 오브제들이 작가의 영혼을 관통했으리라.

이것들이 작가가 스스로 선택한 마음의 치유법이었을까. 그 전시회 날, 나는 인사동 전시장에 오래 머물러 있었더랬다.

은둔의 즐거움 장회준은 은둔자였다. 그러나 그니는 가만히 숨어지내는 그런 은둔자가 아니었다. 아무도 그니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니는 ‘길언덕의 작업실’에서 흙을 매만지며 자신의 꿈을 조형화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니의 활동 영역은 은연중 더욱 확장되어 갔다.

장회준은 늘 바빴다. 그룹전 활동도 꾸준했고, 인제군 지역 내의 예술 활동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람을 대하고 그들과 원만히 소통했다. 특히 장회준은 환경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016년 홍천 백락사에서 있었던 ‘강원환경조각설치전’에서 나는 장회준 작가와 잠시 방송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자 장회준 작가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새아트전(서울 충무아트), 내설악에 살어리랏다(서울 시립미술관), 인제 미술인 회원전, 다름이 있어 아름답다(평창동 금보성미술관), name전(내설악 예술인촌), 조각에게 길을 묻다(이화 아트센터), 名不虛展(관훈미술관), 한중교류전(중국 광저우), 춘천MBC 한국현대조각전 등등, 그니의 작품은 화단의 관심과 관람객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장회준은 인제 박인환문학관의 박인환 조각상을 제작했고, 인제에서 벌어지는 여러 전시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지난겨울 춘천시 재생센터의 요청으로 마을주민과 테라코타 작업을 함께 한 일은 새로운 시도였다. 주민이 손수 만진 찰흙 작품은 이곳저곳 골목 벽에 부착되어 지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골목은 이제 자부심의 골목길이 되었다. 장회준이 지닌 열정적인 예술혼과 한없는 친절함에 주민들은 감동해 마지않았다. 올해 다시금 새로운 프로젝트로 새로운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올 6월부터 춘천의 어느 골목은 활기찬 예술가들로 북적일 터이다.

▲ 장회준 조각가의 작품

방문 어느 날 점잖은 신사 한 분이 장회준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와인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와인 일로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다닌다고 했다. 그는 장회준 작가의 데생과 작품활동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돈키호테와 바그너 등의 그림이 와인 병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장회준으로선 색다른 체험이었다. 제가 와인으로 하여 바그너와 돈키호테를 만나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어요?

내가 방문한 날, 장회준 작가는 자신이 올해 환갑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저께 그니는 가족의 축하를 받았다.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생존해 계셔서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했다. 아들도 왔고, 언니도 와서 적적했던 집에 온기가 돌았다고 했다.

장회준의 집은 몇 년 전 개축하여 하얀 3층 집이 되었다. 길가 문 앞에 장회준의 조각상 두 점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초록의 새순에 찻잔을 든 여인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조각상이고, 또 하나는 초록 잎의 긴 머리에 두 송이의 구름이 걸려있는 조각상이었다. 사람들은 언덕길을 오르내리면서 이 조각상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동네 사람들은 장회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자신들의 동네에 대단한 조각가가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3년 전인가요?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작품을 하는데 바깥에서 누군가 기웃거리는 거예요. 창을 통해 안에선 바깥이 내다보였지만, 밖에선 안이 안 보여요. 문을 여니, 멋진 숙녀가 웃고 있지 않겠어요? 저 효임이에요.

효임인 중국 북경대학교를 나와 그곳 중국에서 결혼했다고 했다. 그니는 초등학교 때 장회준 작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북경에 있었어도 늘 장회준 선생님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걸 장회준 작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한 마을에 오래 남아 있으니, 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찾아오는군요. 어쩌면 장회준 작가는, 이 마을의 큰바위 얼굴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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