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한의말글못자리] 국가 국어 시험

2024. 5. 9.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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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언어문화 현실은 가히 '대혼란의 방치 상태'이다.

자기 말글을 하대하는 인습은, 전자매체 혁명 이후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어와 국제화 물결 속에서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게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혁신할 국어능력 시험을 제안한다.

그 시험의 이름은 일단 '국가 국어 시험'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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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언어문화 현실은 가히 ‘대혼란의 방치 상태’이다. 전에는 ‘우리말과 글을 존중하자’는 정신이 살아 있었으나, 이젠 그마저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된다. 자기 말글을 하대하는 인습은, 전자매체 혁명 이후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국어와 국제화 물결 속에서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게 되어가고 있다. 사회적 소통 능력의 저하 또한 날로 국어를 황폐화시킨다.

말은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나, 이대로 가다가는 토박이말까지 줄어들어 국어의 정체성과 체계가 흔들릴 것 같다.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이유로 같은 말과 글을 쓴다는 사실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러나 입말로만 보면 남북의 젊은이는 곧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질 듯하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혁신할 국어능력 시험을 제안한다. 이 ‘시험 공화국’에 또 시험이냐고 할 이도 있겠지만,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 시험의 이름은 일단 ‘국가 국어 시험’이라고 하자. 이는 관련 학자, 교육자 등을 망라한 전담위원회를 국립국어원 안에 설치하여 운영한다. 이 시험의 특징은 능력을 대상으로 하는 점과 그 등급을 각종 시험과 인사에 반영하게끔 정책을 편다는 점이다.

‘국어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은 중등학교의 ‘국어’ 시험과 다르다. 관련 지식을 객관식 문제로 점수화하지 않는다. 주관식 지필고사를 병행할 수 있지만, 언어활동(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전반의 실제 수행능력을 등급으로 가늠한다. 고급 국어능력의 소유자를 담당관으로 삼아 수준을 평가하며, 시험 과정을 녹화하여 공정성을 확보한다.

능력 등급을 10단계 안팎으로 매겨서 그것을 공무원, 회사원 등의 채용에 활용하면 그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학교 국어교육에 영향을 끼침은 물론 채용 과정에서 관련 평가 비용이 줄어들며, 국어 대신 영어를 중시해온 폐단도 억제될 터이다.

현재 이와 취지가 비슷한 시험이 없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제안을 하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강력히 체계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말은 휴대전화처럼 쓰다 버리는 도구가 아니라 문화의 영혼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러 몰려드는 판에 이 대혼란 상태를 방치하여 문화를 병들게 한다면 후손들 볼 낯이 없을 것이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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