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우의시네마트랩] 안녕, 대한극장

2024. 5. 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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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극장에 관한 내 추억은 단관극장이었던 시절에 본 영화들과 관련이 있다.

내가 대한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를 마친 후 단체관람을 한 '벤허'(1959)였다.

그다음에 대한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렘린'(1984)이었다.

대한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는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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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극장에 관한 내 추억은 단관극장이었던 시절에 본 영화들과 관련이 있다. 내가 대한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3학년 때 연합고사를 마친 후 단체관람을 한 ‘벤허’(1959)였다. 그 작품 자체가 워낙 대작이어서 신작은 아니지만, 대한극장이 가끔 재상영해서 학생 단체관람을 추진했다. 나중에 또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는 크메르 루주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킬링 필드’(1986)였다.
중학교 졸업식을 마친 다음에는 ‘베스트 키드’(1984)를 보았다. 원제는 ‘가라테 키드’였는데 한국에서는 제목을 바꾸었다. MBC에서 방영했던 ‘아들과 딸들’이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귀엽게 생긴 반항아로 인기를 끈 랄프 마치오가 여기서 주연으로 나왔다. 당시에 무술영화는 이소룡식의 비장미가 넘치는 영화이거나 성룡식의 코믹 쿵후 영화가 많았는데, 무술 수련과 성장담 코드를 넣은 청춘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그다음에 대한극장에서 본 영화는 ‘그렘린’(1984)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영화라 궁금하기도 했지만, 피비 케이츠가 주연으로 나온다고 해서 보러 갔다. 그 당시에 책받침 요정으로 유명했던 여배우 중 피비 케이츠는 영화를 많이 찍지 않았고, 심지어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일찍 영화계를 떠났다. 그래서 그녀를 큰 화면으로 본 유일무이한 영화가 ‘그렘린’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내게 이 영화가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이유는 한글 자막을 가로쓰기로 처리한 것이었다. 당시에 다른 극장에서 본 외국영화에는 자막을 화면 오른쪽에 세로로 삽입하는 경우가 다수였기에 이렇게 가로쓰기 자막으로 외국영화를 본 것은 ‘그렘린’이 처음이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포스터가 인상적인 영화는 ‘여자들만 사는 거리’(1976)이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번갈아 상영해야 하는 교호상영제도 때문에 가끔 이렇게 철지난 한국영화를 다시 걸곤 했다. 그밖에 대한극장에서 본 작품들로는 ‘로보캅’(1986), ‘라 밤바’(1988), ‘마지막 황제’(1989),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90), ‘베어’(1990), ‘늑대와의 춤을’(1991), ‘그랑 블루’(1993),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1994), ‘탱고 레슨’(1998), ‘빅 히트’(1998)가 있다.

대한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는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만 생각난다. 이 영화는 MBC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정은임 아나운서에 이어 2대 MC가 된 이일화 배우가 나와서 보러 갔다. ‘탱고 레슨’을 볼 때에는 유독 좌석 시트가 더러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상영 며칠 전에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 ‘한국 대 벨기에전’을 중계 상영했다. 경기에 열광한 아마 많은 관객이 흥분해서 일어나 좌석을 밟아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길거리 응원이 등장하기 전에 생긴 일이다.

그리고 이 중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베어’이다. 지금은 아내가 된 학교 후배와 함께 본 첫 영화였다. 큰 화면의 위력을 알려주고, 동원의 기억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대한극장.

노광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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