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 생명'인데 이번엔 "사장님 딸"…오디션 투표 잔혹사

김소연 2024. 5. 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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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디렉터 리정, 모니카와 참가자들이12일 오전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I-LAND2 : N/a'(이하 아이랜드2)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뉴스1

"존경하는 대표님의 장녀 ○○○ 양의 원활한 방송 진행을 위해 오디션 투표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직장내 투표 '외압' 논란이다. Mnet '아이-랜드2:N/a'(이하 '아이랜드2') 출연자에 대해 "출연자 가족이 사내 직원들을 투표에 동원하고 있다"는 주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공지가 공개됐을 뿐 아니라, 한 직원은 "주말에도 투표 관련 메일이 계속 온다"고 호소하면서 "이런 식으로 동원된 사람들이 투표하면, 오디션 결과를 투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꼬집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게시물에는 '[총무부] 임직원 긴급 공지'라는 제목으로 "존경하는 대표님의 장녀 ○○○ 양이 Mnet에서 방영되는 '아이랜드2'에 출연 중"이라며 "임직원분들께서는 ○○○양의 원활한 방송 진행을 위해 오디션 투표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공지문 이미지가 담겨 있다.

"A대리점 모 사장의 자녀 ○○○ 양이 '아이랜드2'에 출연하고 있다"며 "임직원분들께서는 ○○○ 양의 데뷔를 위해 오디션 투표 참여를 부탁드린다"는 또 다른 공지문도 공개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 회사와 다른 곳에 다니고 있다는 또 다른 글 작성자는 "중소기업 첫 입사인데 대표님 가족, 지인들 사업 관련해서 공구 메시지나 따님분 홍보 메시지가 계속 온다"며 "회사 탕비실엔 홍보랍시고 '아이랜드2' 주제곡을 크게 틀어놓는데 근무 중에 너무 거슬린다"고 호소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투표는 '민심'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투표의 공정성과 관련된 논란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Mnet의 경우 앞서 '프로듀스X101'을 통해 '프로듀스' 시리즈의 투표 조작이 발각돼 담당 제작진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메인 연출자였던 안준영 PD는 시즌1부터 4까지 생방송 경연에서 시청자 유료 문자 투표 결과를 조작하고,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수천만 원 상당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2년에 추징금 3700만원 형이 확정돼 2021년 11월 만기 출소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용범 CP(총괄 프로듀서)도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후 2021년 7월 출소했다.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이 사실로 드러났을 당시 CJ ENM을 이끈 허민회 전 대표는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하지만 수감 생활을 마친 담당자들이 다시 복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CJ EMN과 Mnet은 다시 공정성과 방송의 신뢰에 대한 의혹이 재점화됐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CJ ENM 측은 "과거의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주고자 했던 결정은 사회의 공정에 대한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당사는 지난 4년간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작과 분리된 투표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 모니터링 강화, '시청자위원회' 운영 등 제작 과정의 투명성도 높여 왔다"고 강조했다.

Mnet은 '프로듀스' 시리즈가 투표 조작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퇴장한 후에도 '아이랜드' 시리즈를 비롯해 '걸스플래닛999'과 '보이즈 플래닛', '캡틴'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선보여 왔다. 이와 함께 매번 "공정한 투표"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랜드2'의 경우에도 지난달 18일 첫 방송에서 제작진은 자막을 통해 "'투표 시스템'의 집계부터 결과 산출까지 투표와 관련되는 과정에서 제작진의 투표 조작이 발생하지 않도록 외부 전문 기관인 '삼일PwC'의 검증을 거친다"며 "'아이랜드2' 제작진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내부적인 투표 시스템뿐 아니라 외부적으로 이뤄지는 투표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대표님 딸 투표" 논란과 같이, 형평성과 공정성이 훼손되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기 때문.

'프로듀스' 방영 당시에도 '국민 프로듀서'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연습생의 투표율을 올리기 위해 자체 이벤트를 개최해 왔다. 시작은 기프티콘, 상품권 등 소박했지만, 회차가 거듭되면서 고가의 선물들이 등장했다. '프로듀스' 시리즈의 마지막이었던 '프로듀스X101'의 경우 생방송 문자 투표를 앞두고 200만원, 50만원 한도 내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구매 가능하다는 '다 사드림' 경품은 물론 순금 골드바와 하와이 여행권을 포함해 1699개의 경품을 준비했다는 팬덤도 있었다. 이를 두고 "투표가 아닌 '매표'"라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대표님 딸에게 투표해 달라"와 같은 공지는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투표는 시청자의 인기를 반영하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며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가장 사랑받고, 높은 순위에 가겠다'고 예측하고, 높은 득표율 덕분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는 매우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이 기반이 돼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조직적이고 인위적으로 투표는 시청자의 표심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오디션 자체의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오디션 프로그램이 공권력도 아니고, 제작진이 모든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며 "프로그램 참가자, 이들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이 공정한 경쟁이 펼쳐질 수 있도록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라고 조언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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