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지적장애인 상대로 수억원 대 소송사기

고민주 2024. 5. 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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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탐사K는 지난주부터 의사 소통도 어려운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한 수억원 대 소송사기 사건을 집중 보도해 드리고 있는데요.

이번 시간엔 이 내용을 취재하고 있는 고민주 기자와 보다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고 기자, 이번 소송사기 사건 보도를 보면서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먼저 이 사건 간단히 정리 부탁드릴게요.

[기자]

네, 이번 사건은 지적장애인의 성년후견인을 맡고 있는 60대 남성 이모 씨가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수억원대 소송사기를 벌였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3년 전인 2021년, 장애인 시설에 사는 30대 중증지적장애인 고 모씨에게 법원의 지급명령이 내려지는데요.

22년전인 2002년 이씨의 남동생에게 차용증을 쓰고 약 3억원을 빌렸으니, 갚으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앵커]

22년전이면, 지적장애인 고씨가 미성년자일 때 아닌가요?

[기자]

맞습니다.

2002년 당시 고 씨의 나이는 17살에 불과했고, 고 씨는 차용증과 변제각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중증지적장애인입니다.

결국, 장애인 시설에서 장애인권익옹호기관으로 신고를 했고, 지난해 8월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이 형제의 휴대전화에서 소송사기를 벌인 정황을 확인했는데요.

이 형제는 소송사기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선 형은 혐의를 인정했다며 구속해 재판에 넘겼지만, 동생은 공모 증거가 부족하다며, 재판에 넘기지 않은 상태입니다.

[앵커]

소송사기면, 법원을 상대로도 사기를 친 거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거죠?

[기자]

형 이 씨는 서류로만 심사하는 법원의 독촉 절차인 지급명령 제도를 악용했는데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민사소송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신속하고 저렴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일종의 약식절차인 지급명령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편의성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재산을 갈취하는 도구로 사용된 겁니다.

이 씨는 피해자가 돈을 빌렸다는 근거로 건축자재를 구매했다는 견적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씨가 법원에 제출한 견적서의 날짜는 2000년도였는데, 돈을 빌렸다는 2002년과 시점 자체가 다릅니다.

또, 견적서에는 창고와 전기시설 중창문 같은 건설자재가 기재돼 있었는데요.

당시 10대였던 중증지적장애인 고 씨가 이러한 건설자재를 무슨 목적으로, 또 구매했는지 납득하긴 어렵습니다.

[앵커]

그러면, 법원은 무엇을 근거로 피해자에게 돈을 갚으라는 지급명령결정을 내린 거죠?

[기자]

저희도 서류를 꼼꼼히 심사하면, 이 사건에선 지급명령 결정이 나갈 수 없을 텐데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주지방법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차용증이 있으면 지급명령이 나갈 수 있고, 절차상 전혀 문제가 없다고만 밝혔습니다.

제도 자체보다 이를 악용한 사람의 문제라는 거죠.

하지만 피해자가 이를 뒤집으려면 또다시 소송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피해자의 담당 변호사는 잘못된 지급명령을 바로 잡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앵커]

피해자는 실제로 자신에게 내려진 법원의 지급명령결정문을 받아보긴 한 걸까요?

[기자]

피해자와 피해자가 거주하고 있던 장애인 거주 시설은 법원의 지급명령결정문을 받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씨는 지급명령을 신청하면서 법원의 지급명령이 나오면 송달받을 장소로 자신의 주소지를 기재했습니다.

법원은 우편 송달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직접 당사자가 받지 않고 가족이 받아도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피해자의 담당 변호사는 문자 메시지 등 연락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 송달 시스템을 보완하면 이런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미 3년 전 지급명령 결정이 났는데, 지난해 이 사건이 어떻게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거죠?

[기자]

네, 이 사건은 2년 가까이 드러나지 않으며 자칫 묻힐 뻔했는데요.

형 이씨가 2022년 말 고 씨가 거주하는 장애인 시설에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서류 한장을 두고 가면서 사건이 드러나게 됐습니다.

이 씨는 피해 지적장애인의 언니와 결혼한 형부이자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인데요.

당시 이 씨가 두고 가 '계약 결혼의 건'이란 제목의 서류엔 '처제가 가족들의 동의로 자신과 결혼을 원하고, 동거하면서 출산도 원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피해 지적장애인의 언니 역시 중증 지적장애인인데요.

자신의 처제이자 24살 차이가 나는 고 씨와 계약 결혼을 하고, 임신까지 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이 서류를 수상히 여긴 시설 관계자가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에 이러한 내용들을 신고하며 경찰 수사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충격적이네요.

그러면, 피해 지적장애인의 언니는 남편이 구속되면서 현재는 홀로 지내는 상태인건가요?

[기자]

네 맞습니다.

취재진이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함께 피해자의 언니인 40대 중증 지적장애인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피해자의 언니인 고 씨는 한달 가까이 신분증과 휴대전화, 복지카드도 없이 홀로 남겨진 상태였습니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직원의 도움으로 언니 고 씨는 면사무소에서 복지카드를 새로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요.

언니 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면사무소도 고 씨가 홀로 지내는 동안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이 자매들이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땅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수상한 점이 더 있다고 하던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기자]

네. 먼저 이 자매들이 몇명인지, 소송사기를 벌인 남성과는 무슨 관계인 건지 다시 한번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고 씨 자매는 이복언니 2명을 포함해 모두 6명인데요.

이복 언니들을 제외한, 4 자매는 모두 지적장애인입니다.

이 자매 중 40대 지적장애인 고 씨와 소송사기를 벌인 60대 형 이 씨가 결혼을 했고요.

형 이 씨는 자신의 처제인 30대 지적장애인을 상대로 소송사기를 벌인 건데요.

그리고, 판결문 등에 따르면 동생 이 씨가 30대 지적장애인 고 씨에게 지급명령을 신청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을 보면 형 이씨와 결혼한 40대 지적장애인의 언니인 또 다른 지적장애인이 상속받은 땅 지분이 2019년 이 씨에게 넘어갑니다.

저희가 이 자매가 물려받은 땅 5필지의 등기부등본을 떼봤는데, 동생 이 씨의 이름이 5필지에서 모두 등장했습니다.

동생 이 씨가 지적장애인 고 씨 자매 1명의 지분을 2019년에 모두 넘겨받은 겁니다.

땅 5필지는 지난달 기준 공시지가로만 10억 원이 넘습니다.

소유권이 이전된 경위를 파악해봤더니, 동생 이 씨는 고인이 된 자매의 아버지가 돈을 빌려 갔는데 갚지 않았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고, 이후 지분이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앵커]

구속된 형 이 씨가 2021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재산을 가로채려 했던 방식과 비슷하네요.

이 땅 지분은 도대체 어떤 판결로 넘어갔던 걸까요?

[답변]

동생 이 씨가 땅 지분 일부를 넘겨받은 확정판결도 알고 보니 '무변론' 판결이었는데요.

무변론 판결은 30일 이내에 상대가 답변서를 내지 않거나 자백할 때, 내려지는 선고입니다.

이 판결은 시설에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고 씨가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는데요.

당시 판결문에는 과거 동생 이 씨가 고 씨 자매의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줬지만 받지 못했고, 그래서 2010년 고 씨 아버지가 자신의 땅을 넘기기로 약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고 씨의 이복언니를 만나봤는데요.

이복언니는 고 씨 자매의 아버지 역시 돈 거래를 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판결 선고가 내려지기 전 소송사기로 구속된 형 이 씨가 확인서라는 서류에 동의하라고 강요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 자매가 상속받은 땅의 석연치 않은 지분 이전에 대해서도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철저한 시급해보입니다.

[앵커]

꼭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알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고 기자, 앞으로 탐사K 취재 더 이어지나요.

[답변]

네, 추가적으로 올해 3월에도 지적장애인 30대 고 씨에게 내려진 수상한 판결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와 더불어 성년후견인인 형 이 씨가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관리감독이 어떻게 이뤄졌던 건지, 이를 추가 취재해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네, 고민주 기자 수고하셨고요,

속보 기대하겠습니다.

촬영기자:부수홍/영상편집:장원봉/그래픽:박미나

고민주 기자 (think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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