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지 세대 눈높이 맞춘 ‘5·18항쟁 대중서’ 펴냈어요”

정대하 기자 2024. 5. 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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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전두환 쿠데타…’ 공저한 전용호 작가
‘전두환 쿠데타군부가 쏘아 올린 바벨탑’을 낸 소설가 전용호 작가. 정대하 기자

“항쟁 내용도 압축하고 당시 사진도 많이 넣어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했어요.”

‘전두환 쿠데타 군부가 쏘아 올린 바벨탑’(울림사·이하 바벨탑)을 낸 소설가 전용호 작가는 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00년 전후 출생한 지(Z)세대 청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 붙은 바벨탑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건축물로, 인간의 오만한 마음을 꼬집는 말이다. 전 작가는 “한 때 권력을 쟁취했던 정치군인 전두환은 2021년 죽은 뒤에도 지금까지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자신의 집에 뼛가루 상태로 놓일 정도로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바벨탑”이라고 말했다.

책 ‘바벨탑’의 목표는 알기 쉬운 5·18 대중서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공저자(풀빛·이하 ‘넘어넘어’) 3명 중 1명인 전 작가는 지난해 이재석(84) 울림사 대표와 처음 만났다. 이 대표는 전 작가에게 “엠지(MZ)세대 등 시민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는 5·18민주화운동 역사 교과서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넘어넘어’는 5·18민주화운동 전후 상황을 충실하게 다루고 있지만, 600여쪽에 달해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부담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전 작가는 “바벨탑은 5·18민주화운동 전후 상황을 200여 쪽으로 압축했다”고 말했다.

전 작가와 이 대표가 함께 쓴 ‘바벨탑’은 세 개의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단계엔 5·18항쟁이 발발하게 된 역사적·시대적 배경이 압축돼 있다. 두 번째는 10일 간의 5·18민주화운동의 전개과정이 들어 있다. 5월18~27일 10일 간 시민 166명이 숨지고, 3천여 명이 다치거나 투옥되었으며, 행불자가 80여 명에 달한다. 전 작가는 “전두환의 5·17군사반란 이후 5·18민주화운동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날짜와 시간대별로 기술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 공간엔 노태우와 6·29선언, 전두환의 백담사 유배와 재판, 전우원의 고백 등 진상규명 내용을 담고 있다.

5·18 역사교과서 쓰자는 생각으로
1980년 5월 상황 200쪽으로 압축
시민군 삶과 투쟁 절절히 살리고
항쟁 참여자 진술도 생생히 담아
“5·18 왜곡 멈추는 브레이크 되길”

5월 투쟁위 참여한 시민군 출신
11일 광주 전일빌딩서 북콘서트

전 작가는 5·18항쟁 당시 투쟁위원회 홍보팀으로 들불야학 학생들과 ‘투사회보’를 제작·배포하다가 투옥됐던 시민군 출신이다. 그래서 이 책엔 5·18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진술과 5월 이후 힘겨운 삶을 마감한 사연 등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공수대원은 3~4명이 1조가 되어…화염병 조각과 돌조각이 널려 있는 거리 한복판에서…마치 살육을 즐기는 것 같았다”는 당시 계엄군 진술도 들어 있다. 또 “완전히 두정골이 함몰되었어요… ‘사령관님, 이거는 폭행치사’라고. …이거 완전히 살인입니다”라고 말했던 국군통합병원장의 회고 내용 등도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1980년 10월 광주 군 상무대 계엄재판에 나온 전용호 작가. 전용호 작가 제공

1998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전 작가는 동료 시민군들의 삶과 투쟁도 절절하게 살렸다. 5월27일 새벽 3시 21살 박영순의 ‘마지막 방송’ 내용도 뭉클하다.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공수부대의 총탄이 허리를 관통해 ‘하반신 마비’ 상태로 살다가 2021년 11월 세상을 뜬 이광영씨 유서도 공개한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5·18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

이재석 대표. 울림사 제공

‘바벨탑’은 딱딱하지 않은 5·18 기록서다. 55년 동안 출판계에서 일한 이재석 대표는 그간의 경험을 살려 “엠지(MZ)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춰 구성·편집해” 독자들이 책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5·18항쟁 기간 참상을 담은 사진과 1979년 12·12쿠데타 체계도, 광주 진압군 지휘체계도, 일지 등을 실었다. ‘바벨탑’은 또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2019년 12월부터 4년간 활동해 낸 보고서의 내용을 수용한 국내 첫 5·18 관련 도서다.

사실을 기반으로 쓴 ‘바벨탑’이 5·18 왜곡·폄훼를 멈추는 브레이크가 되기를 바라는 게 전 작가의 소망이다. 전 작가는 “전두환 군부 세력이 그간 5·18을 폭동으로 몰고, 발포책임자·암매장·행방불명 등의 진실을 감추고 왜곡한 게 가장 큰 문제였다.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도 수록하면 상황이 더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 작가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문화콘서트가 11일 오후 4시30분 광주 전일빌딩245에서 열린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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