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엔 주판, 다른 손엔 논어... 日 새 1만엔권 인물과 시대정신

신현암 팩토리8대표 2024. 5. 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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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신현암의 ‘新도쿄견문록’] 1만엔권 초상은 시대정신까지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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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일본 1만엔짜리 지폐 인물이 기존 메이지 시대 사상가였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에서 ‘일본 자본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1840~1931·사진)로 바뀐다. 시부사와는 일본 메이지~쇼와 시대 철도·비료·호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500여 개의 회사를 세운 역사적인 기업인이다./NHK

일본 라멘 업계가 비상이다. 올여름에 ‘신권’이 나오기 때문이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메뉴 주문을 자판기로 하는 가게가 대부분인데, 신권용 결제 기기를 들여놓으려면 100만엔(약 9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 든단다. 라멘 한 그릇 가격은 1000엔(약 9000원)을 넘기기 힘들다. 한 그릇 팔아 100엔 남긴다고 치면, 만 그릇을 추가로 팔아야 한다. 좀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일본 지폐의 가장 큰 단위는 1만엔이다. 신권의 초상 모델로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재계 인물이 등장한다. 우리로 치면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이 화폐에 등장하는 셈이다. 세종대왕, 신사임당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조금 낯설다. 왜 일본은 굳이 재계 인물을 초상 모델로 삼은 것일까.

일본에 1만엔권이 등장한 것은 1958년이다. 당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건설 경기가 붐을 이루던 시절. 그 무렵 일본 경제도 본격 상승세에 돌입했다. 이때 1만엔권의 초상 모델은 쇼토쿠 태자로 결정된다. 그는 일본에 불교를 보급하고 관료제의 기초를 세워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호류지를 창건한 것도 쇼토쿠 태자다. 일본 재건의 상징 도쿄 올림픽과 국가의 체계를 갖춘 쇼토쿠 태자. 뭔가 시대적으로 잘 연결되는 느낌이다.

1984년에 새로운 1만엔권 주인공으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선정된다. 게이오대학을 설립한 교육자, ‘학문을 권함(学問のすすめ)’을 저술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왜 그가 1980년대 중반에 초상 모델이 되었을까. 그의 철학, 즉 ‘아시아를 떠나 서양 문명 국가에 합류하라’는 탈아론(脫亞論) 때문이다.

후쿠자와가 1만엔권의 주인공이 된 무렵의 일본 경제는 아시아에 포함되기에 너무 커져 있었다. 1972년 미국에 이어 국내총생산 세계 2위에 오른 이래 2009년 중국에 그 자리를 내어 주기까지 ‘넘버2′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995년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아시아 영화 시장을 지칭하면서 일본을 빼고 호주를 넣어서 계산했다. 워낙 일본 시장의 규모가 컸기에 별도로 분류한다고 했다. 전후 사정을 고려해 보면, 일본은 스스로를 ‘탈아(脫亞)’했다고 선언할 정도로 성장한 셈이다. 이를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 한다. 어떤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엔 후쿠자와가 일본의 시대정신으로 제격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이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1만엔권의 주인공으로 소환했다.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시부사와의 철학은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이다. 한 손에는 주판을 들고 돈을 많이 벌되, 또 다른 손에는 논어를 들고 항상 윤리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는 청빈, 안빈낙도가 아닌 청부(淸富)를 강조했다. ‘깨끗하게 번 돈이라면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다’는 논어의 구절을 자주 인용했다. 기업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올랐다. 피터 드러커는 그를 일컬어 ‘경영자의 핵심은 부(wealth)도 아니고, 지위(rank)도 아닌 책임감(responsibility)인데, 이를 가장 먼저 깨우친 인물’이라고 추켜세울 정도였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 버블과 함께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일본 경제는 초호황을 누렸다. 1991년에 문을 열고 1994년에 폐업한, 한꺼번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전설의 디스코 클럽 ‘줄리아나 도쿄’는 이러한 일본 경기의 끝자락을 상징했다. 30년간의 침체기를 겪은 후, 일본은 ‘탈아시아’란 이념보다는 ‘깨끗한 부의 중시’라는 실용을 시대정신으로 삼았다. 오늘날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과거에는 무엇이었고, 앞으로는 무엇을 시대정신으로 가져가야 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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