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실패로 무너진 스포츠 복지…프로농구 부산 KCC 우승의 명암

김창금 기자 2024. 5. 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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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청의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최근 울분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지난해 전주를 떠나 부산으로 옮긴 프로농구 부산 케이씨씨(KCC)가 챔피언전에서 우승한 것이 발화점이었다.

전주시청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어리석은 당신의 판단으로 프로농구를 넘어 프로스포츠의 대표 인기팀을 보유했다는 자부심을 잃었다. 전주시민들에게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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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금 기자의 무회전킥]
프로농구 부산 케이씨씨 선수단이 지난 5일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수원 케이티를 꺾고 우승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주시청의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최근 울분의 글이 많이 올라왔다. 정치나 민생 이슈가 아니었다. 지난해 전주를 떠나 부산으로 옮긴 프로농구 부산 케이씨씨(KCC)가 챔피언전에서 우승한 것이 발화점이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향의 농구단이었는데, 다른 지역에서 우승했다는 것이 팬들의 상실감에 불을 댕겼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반향없는 메아리임을 잘 알지만, 글로나마 깊은 상심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의 글 가운데 일부를 옮겨 본다. “전주가 아닌, 부산 KCC로 우승을 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찢어지네요.” (황 아무개) “전주시장 당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 줄 알아요? 20년 넘게 농구팀 응원했는데.”(박 아무개) “전주시는 전주 시민들의 소중한 스포츠 문화 자본 하나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오랜 추억마저도요.”(이 아무개)

이들의 심정은 “갑갑하다”, “아직도 야구단 2부리그팀 유치 중인가요”, “KCC 우승으로 꼴 좋다. 조롱거리 전주시” 등 글의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전주시의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한 스포츠 민초들의 불만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프로농구 케이씨씨는 2001년부터 전주의 명품으로 자리 잡았다. 전주체육관은 규모는 작았지만, 도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았고, 지역 팬들의 응원 열기는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었다. 주말 프로농구을 관전하는 팬들은 행복했고, 현대인의 여가 시간과 결합한 프로스포츠의 편익은 지자체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었다.

경기력도 좋았다. 전임 신선우, 허재 감독 시절에는 챔피언전 우승으로 명가의 전통을 이었고, 올 시즌 전에는 최준용을 영입하면서 ‘슈퍼팀’으로 불릴 정도로 흥행대박을 예감케 했다. 허웅과 이승현, 라건아가 있었고 상무에서 전역하는 송교창까지 팬을 동원할 수 있는 스타들이 한 곳에 모였다.

하지만 전주시는 시민 스포츠 복지의 한 축인 프로 스포츠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또 프로 구단을 정치로 움직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했다. 특히 새로 부임한 시장은 전임 때의 약속과 달리 농구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체육관 시설 신축 대신 프로야구 2군 경기장을 짓기로 한 것은 결정타였다.

케이씨씨 구단의 입장은 달랐다. 한국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망라해 기업이 스포츠단을 운영하는 것은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자를 보면서도 투자하는 것은 사회 공헌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관 시설마저 직접 지어야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따랐고, 결정적으로 새 지자체장의 행보에서 농구가 홀대받는 느낌을 받자 신뢰를 잃었다. 결국 케이씨씨는 연고지 이전 결심을 했고, 케이비엘(KBL) 이사회를 통해 부산으로 옮기면서, 전주 시민들의 사랑을 받던 프로농구는 언제 돌아올 기약도 없이 떠났다.

케이씨씨는 연고지 이전 첫 시즌에 우승을 하면서 부산과 전주 시민들의 명암은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부산 시민들은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지역의 프로팀이 우승하는 기쁨을 누렸고, 부산 시장은 챔피언전 우승 현장에서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으며 영광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전주시청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시민은 “어리석은 당신의 판단으로 프로농구를 넘어 프로스포츠의 대표 인기팀을 보유했다는 자부심을 잃었다. 전주시민들에게 미안한 줄 알아야 한다”라고 썼다. 맞다. 전임 시장을 부정하는 행태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그 결정이 수십만 시민들의 일상적 행복을 빼앗는 일이 됐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무지이며 시민에 대한 불충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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