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소송’ 장외전도 시끌…변호인, 법정 밖 발언 공개하며 여론몰이

홍인석 기자 2024. 5. 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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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 의대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금지’ 가처분 기각
담당 재판부, 변호인에 “취하 의사 없느냐” 물어
법률 대리인 “부적절한 심문 진행에 유감”
법조계 “서면 제출 등 위해 연락도…종종 있는 사례”
서울고법 항고심이 분수령…법정 공방 마무리될 듯
7일 오후 부산대 대학본부에서 의과대학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을 위해 교무회의가 열린 가운데 의과대학생들과 교수들이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뉴스1

정부의 의과대학(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의대생 등이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20건을 넘어섰고 대다수가 각하, 기각됐다. 이런 가운데 의대생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법정에서 재판부와 소통한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며 “부적절한 심문이 진행됐다”는 주장을 폈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경북대·경상국립대·부산대·전남대·충남대 의대생 총 1786명이 각 대학 총장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를 상대로 제기한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 5건을 모두 기각했다. 의대생들은 학습계약을 맺은 대학이 입학 정원을 변경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이를 금지해달라고 지난달 26일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채권자(의대생)들은 채무자인 대학 총장 및 대교협과 ‘재학 계약’이라는 사법상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하나 이들과 어떠한 사법상 계약 관계에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는 피보전권리가 있다는 점이 전혀 소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의대생을 대리하는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가처분 기각 결정 전 재판부가 가처분 신청을 취하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는 점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가 ‘서울남부지법 사립대 의대 가처분은 각각 관할 지방법원으로 새로 소송 내기 위해 취하했는데, 5개 국립대 의대 사건도 취하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사가 변호사한테 물어보고 결정하는 건 처음 봤다”며 “부적절한 심문 진행에 정중하게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법원은 “이번 가처분 사건은 심문 당일 대리인이 출석하지 않았고, 유사 사건도 많아서 대리인에게 사건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소통하는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심문기일을 3일 열었지만 이 변호사가 참석하지 않아 4분 만에 종료됐다.

이 변호사는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며 “앞서 기각된 가처분 신청과 결과가 같을 것이 명백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가 언급한 ‘앞서 기각된 가처분 신청’이란 충북대·강원대·제주대 의대생 총 485명이 각 대학 총장과 대교협을 상대로 낸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으로 지난달 30일 기각됐다.

법조계는 재판부와 대리인의 소통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재판부가 변론이나 심문 등을 앞두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증거나 서면을 보완해달라고 말하거나, 유사 사건 결과가 나오면 소송 취하 여부를 묻는 등 향후 진행 방향을 두고 대리인과 소통한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변호인이 대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안에 따라 대리인이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면서도 “대리인·재판부가 의견을 주고받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최근에는 재판 지연이 문제로 불거져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배석판사나 실무관이 기일 전 소통하기도 한다”며 “법조인 간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진 대화를 외부로 공개해 여론전에 나서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법원에 제기된 소송 가운데 의료계가 주목하는 것은 서울고법 행정7부가 들여다보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이다.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3일 집행정지를 신청한 원고들의 자격이 없다며 ‘원고 부적격’으로 각하했지만 서울고법 행정7부는 항고심에서 증원 규모로 내세웠던 2000명의 근거와 회의록 등을 이달 10일까지 제출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그간 각하와 기각 판단만 내리던 법원에서 처음으로 정부 주장을 따져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재판부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 신청인들이 모두 원고적격이 없다면 (의대 증원과 관련한) 정부의 처분을 다툴 수 없게 된다”며 “사법 통제를 못 하는 정부의 결정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 판단에 따라 숱한 법정 공방도 마무리 될 전망이다. 집행정지 신청이 각하·기각되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말까지 의대 증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 계획을 승인한다. 반대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려 정부의 증원 집행도 정지된다. 재판부는 이달 중순까지 집행정지 인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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