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싸인’ 회의록, ‘반기’ 드는 국립대…불어나는 막판 변수

강윤서 기자 2024. 5. 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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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정심·배정위 회의록 “없다→있다” 오락가락
‘2000명’ 두고 “통보” vs “논의”…회의 참석자 간 이견도
국립대 줄줄이 증원 개정안 ‘부결·보류’…“재조정 해야”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의대 정원 증원을 두고 의·정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5월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내원객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관문을 향해 가던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난관에 봉착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정 시한을 앞두고 법원과 대학이 '급제동'을 걸면서다. 법원은 '2000명 증원' 근거가 되는 회의록 제출을 요구했고, 국립대는 증원 재조정 압박 카드를 꺼내며 막판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돌출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정 갈등이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와 의사, 당장 내년도 입시 정원을 손봐야 하는 대학까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오는 10일까지 정부에 '2000명 증원' 근거 자료가 되는 회의록 제출을 요구했다. 회의록을 토대로 증원 규모 산출 및 결론 도출 과정 전반을 '원점'에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에 따르면, 정부는 주요 정책 결정시 회의 참석자와 안건, 발언 등이 담긴 회의록을 만들어야 한다. 법원은 이를 토대로 이달 중순까지 의료계가 신청한 '의대 증원 집행정지'에 대한 결론을 낼 전망이다.

만일 회의록 자체가 없거나, 제출된 회의록 검토 결과 정책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상황은 새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최악의 경우 의대 증원 추진 백지화도 불가피하다.  

예상치 못한 법원의 문건 요구에 정부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논의한 주요 회의체 3개 중 2개에 대한 회의록은 "없다"는 입장에서 "있다"로 말을 바꿨다. 의료현안협의체의 경우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일대일로 참여한 회의체로, 양측이 합의해 별도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고 보도자료로 대신했다고 밝혔다.

회의록 '실체'와 관련해 논란에 휩싸인 두 회의체는 교육부 소관 의대정원배정심사위원회(배정위)와 보건복지부 소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다.당초 교육부는 대학별 의대생 정원을 논의한 배정위에 대해 "회의록이 있다"고 했다. 이후 지난 5일 "회의록 존재 및 법원 제출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정정했지만, 이틀 뒤 총리실에선 "회의록은 정상적으로 작성됐다"고 다른 입장을 냈다. 혼선이 일자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브리핑에서 "회의록은 없고 요약 문서만 있다"며 "배정위는 법정 위원회가 아니며 공공기록물관리법 시행령상 회의록 작성 의무가 없다"고 다시 말을 바꿨다.

복지부도 회의록 작성 여부를 놓고 혼선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복지부는 당초 "보정심과 산하 기구 의사인력전문위원회(전문위)에 대한 회의록이 없다"며 "녹취록을 풀어 자료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지난 7일 "(보정심과 전문위 회의록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 대해) 답변이 부정확했다"며 "작성 의무가 있는 각종 회의체 회의록은 모두 작성 의무를 준수했다"고 번복했다. 보정심은 정부·공급자·수요자·전문가로 구성돼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2000명 증원을 결정한 기구다.

5월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내원객이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 생중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2000명 통보" "논의 有" "1000명 제안"…회의 내용 '미스터리'

정부는 법원에 보정심 회의록을 제출하겠다고 재차 강조했지만 의료계 불신의 골은 이미 깊다. '회의록 없는 회의' 논란이 확산되면서 회의 자체에 대한 투명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보정심에 참여한 일부 전문가는 당시 회의가 정부의 일방적 '통보' 수준에 불과했다며 2000명 증원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보정심 민간위원인 A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2000명 규모가 공개된) 올 2월6일 보정심에서 정부가 사전에 회의 안건에 대한 자료를 보내줬지만 증원 관련 내용은 빠져 있었다"면서 "(의대 증원 관련 내용은) 회의 시작 후 기자들이 빠진 뒤에야 배부했다가 다시 회수해갔다"고 말했다. 회수 이유에 대해선 "(정부가) 밝힌 바 없다"고 강조했다.

논의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A씨는 "지난해 두 차례의 보정심에서 의사인력 증원을 논의했지만 2000명 숫자는 올 2월6일 회의에서 처음 공개됐다"며 "당시 회의 시작은 오후 2시였는데 1시간 뒤 곧바로 조규홍 장관의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여위원 20여 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증원 규모를) 토론하기엔 물리적으로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보정심 민간위원 B씨는 "논의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나 당시 참석한 위원들 모두 한 번씩은 (2000명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정심이) 의결기구가 아닌 점에서 (규모에 대한) 결정을 내리진 않았다"면서 "(규모 관련 내용은) 의사인력전문위가 더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의사인력전문위에 수요자로 참여한 민간위원 C씨는 "(전문위에서) 증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면서 "각 전문가의 연구 내용을 토대로 필요한 의사인력의 대략적 규모를 논의했지만 (의견을) 취합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회의 도중 (증원 규모로) 1000명이 제안된 적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의대 정원 재조정해야"…시국선언 발표한 국립대 교수들

대학가에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의대 증원의 핵심인 국립대 교수들이 '정원 재조정'을 요구하면서다. 앞서 정부가 지난 4월19일 6개 국립대 총장의 건의를 수용해 내년도에 한해 각 대학이 증원분의 50~100% 범위 내 신입생 선발 규모를 자율 결정하도록 한지 약 3주 만이다.

9개 국립대 교수회로 구성된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거국련)는 9일 시국선언문을 내고 "정부는 의대 증원 목표치에 연연하지 말고 법원의 판결과 각 대학의 결정을 존중해 정원을 추가 조정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거국련에 포함된 부산대는 앞서 7일 의대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했다. 부산대에 이어 곧바로 제주대도 학칙 개정안을 부결하고, 강원대는 논의를 잠정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국립대가 잇달아 학칙 개정을 중단하면서 학내 갈등을 겪고 있는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교육부는 부산대에 시정명령을 예고하며 강경대응에 나서면서도 법원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판결을 앞두고 대학 움직임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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