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죽었는데 이유조차 모르는 게 말이 되나요”

김지숙 기자 2024. 5. 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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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급성 신경·근육병증 피해 고양이 반려인 3명 인터뷰
라이프 심인섭 대표 “사료 기업 윤리적 책임 다해주길”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고양이 급성 신경·근육병증으로 사망한 고양이 ‘하늘이’. 하늘이는 발병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아무개씨 제공

“사람이 주는 대로 먹는 고양이들인데 (제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어요. 이번 사태의 원인, 꼭 밝혀져야 합니다.”

고양이 ‘후추’(6)와 ‘마늘’(2)을 키우고 있는 정아무개씨는 지난 3월부터 반려묘 ‘병 수발’을 하고 있다. 3월22일 정씨는 구토, 고열, 기력 저하, 기립 불능 등의 증상이 나타난 후추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후추의 간·근육 손상 수치가 측정이 안 될 정도로 치솟아 있었다. 3주 뒤 마늘이에게도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치료 끝에 후추와 마늘이는 살아남았지만, 이들과 같은 증상을 보였던 신아무개씨의 반려묘 ‘미소’(4)와 서아무개씨의 반려묘 ‘하늘이’(5)는 발병 1~2일 만에 손써볼 틈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양이 급성 신경·근육병증이 확산하면서 보호자들의 공포와 우려는 ‘현재진행형’이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와 ‘묘연’의 집계를 보면, 8일 기준 전국의 신경·근육병증 피해 고양이는 493마리이고, 이 가운데 176마리가 사망했다. 피해 고양이들을 진료했던 문희섭 ‘24시더휴동물의료센터’ 원장은 이번 병증을 “근육 손상에 의한 신·간부전”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근육의 단백질이 녹아내리는 병’이라고 한다. 그는 “임상 치료 10년간 이런 증상은 처음”이라고 했다.

신경·근육병증 발병 당시 고양이 ‘후추’의 모습. 정아무개씨 제공

정씨와 신씨, 서씨를 포함한 보호자 대다수는 국내 한 제조원이 올해 2월 중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한 사료를 먹였다고 한다. 법적 분쟁 가능성 탓에 ‘볼드모트(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악당) 사료’로만 불리는 바로 그 사료다.

지난달 19일 나온 정부의 중간 검사 결과에서 검사 의뢰를 받은 사료 30여건 가운데 3건에서 유해물질, 바이러스, 기생충 등은 검출되지 않았다. 한국사료협회는 지난 1일 한 매체에 “사료 10여 종의 안전성 검사 결과 이상이 없었다”며 “미확인 추측성 문제 제기가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다”고 말했다.

보호자들은 왜 ‘음모’와 ‘루머’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있는 걸까. 이번 사태로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은 고양이 보호자 정씨와 신씨, 서씨 등 3명과 급성 질환 피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심인섭 라이프 대표를 지난 3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만나 물어봤다.

신씨의 고양이 ‘미소’는 4월16~17일 기력저하와 혈뇨 증상을 보인 뒤 동물병원에 입원해 하루도 안 되어 사망했다. 신아무개씨 제공

피해 사례 알리는 반려인들

태어나 처음 입양한 반려묘 미소를 떠나보낸 신씨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사료라고 굳게 믿고 있다. “미소는 병원에 입원한 지 24시간도 안 돼 세상을 떠났어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원인 규명을 위해 (미소 사체를) 부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팠던 고양이에게 칼을 대는 것이 마음 아팠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그동안 온라인 고양이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이젠 “에스엔에스에 고양이의 (아픈) 증상을 많이 올리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정씨와 서씨도 마찬가지다. 정씨의 고양이들은 한 달 동안 대증치료(질병의 원인이 아닌 증상만 치료)를 받고 현재는 상태가 회복됐지만,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불안하다. 정씨는 급성 질환의 원인이 사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4월18일 개인적으로 농림축산검역본부에 평소 먹이던 사료에 대한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3주 넘게 결과를 기다렸지만 최종적으로 돌아온 답은 정부의 공식 발표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사료업체들은 사료에 문제가 없다는 공지를 내기도 했다.

지난 3일 고양이 급성 신경·근육병증으로 목숨을 잃었거나 질병을 얻은 고양이 반려인 3명과 심인섭 라이프 대표를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만났다.

정씨는 “정부의 사료 검사 중간발표 당시 적합 판정을 받은 사료 3건이 어떤 제품인지 물어봤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일부 사료업체는 적합 판정을 받았다면서 입장문을 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씨는 “고양이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데 정작 소비자는 어떤 사료가 안전한지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심 대표는 “많은 고양이가 사망한 만큼 기업이 윤리적 책임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사료는 완전식품이 아니다. 2004년과 2021년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사료 때문에 반려동물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의 성분 검사를 통과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료관리법이 정한 78종 이외에 거르지 못한 유해물질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의 성분검사 결과 발표 이전이라도 해당 업체가 소비자 불안 등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판매·유통 금지를 결정해 주길 바란다”고 재차 촉구했다.

동물보호단체와 반려인들은 이번 사태가 2015년 ‘고양이 방광 질환 사건’과도 비슷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100여 마리의 고양이가 특정 사료를 먹고 방광염 증상을 보였지만 정부 조사에서는 ‘적합 판정’을 받았다.

“원인 못 밝히면 같은 사태 또 발생”

‘다묘 가정’의 피해는 더 컸다. 고양이 11마리를 반려했던 서씨는 이번 사태로 하늘이, 통통이, 라비 등 3마리를 떠나보냈다. 인터뷰 당시만 해도 병원 입원 중이던 라비는 이튿날(4일) 끝내 숨졌다. 2마리는 현재 치료 중이다. 서씨는 “최근 사료협회의 입장을 담은 기사를 읽고 가슴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며 “정부가 끝까지 명백하게 진실을 밝혀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급성 신경·근육병증으로 사망한 고양이 ‘미소’의 장례식. 신아무개씨 제공

라이프와 묘연은 정부의 사료검사와 별도로 국외 사료 독성 연구소 3곳에 사료 분석을 맡길 예정이다. 심 대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면 5년 뒤, 10년 뒤 또 똑같은 문제가 생기고, 동물들이 죽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조만간 앞서 조사를 의뢰받은 30여 종의 사료와 자체 수집한 사료에 대한 최종 분석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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