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짜장은 ‘물’짜장인가 ‘전분’짜장인가 ‘간장’짜장인가

박미향 기자 2024. 5. 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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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전주 식도락 여행 ①
전주 중국집 ‘대보장’의 ‘물짜장’.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전주에는 영화호텔이 있다. 영화 촬영 장소인가 싶지만, 실제 숙박시설이다. 전주 ‘영화의 거리’ 인근에 있는 ‘전주 영화 호텔’은 별난 곳이다. 묵는 이가 아니더라도 2층에 마련된 ‘영화 전문 도서관 겸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 영화 잡지 ‘키노’ 창간호부터 한국 유명 배우를 다룬 일본 잡지까지 2000여권이 넘는 읽을거리가 구비돼 있다. 영상 자료만 해도 1만5000여점, 영화 전문 서적도 3400여권이나 갖춰져 있다. 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영화를 테마로 한 호텔이다. 매년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호텔 설립의 배경이리라. 기실 전주는 영화제란 이벤트가 열리지 않아도 관광객이 손에 꼽는 남도 대표 여행지다. 한옥마을 투어 등 여행지로서 전주의 매력은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 식도락은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상품’이다.

‘전주 영화 호텔’에 있는 각종 영화 잡지들. 박미향 기자
‘전주 영화 호텔’ 2층 카페 겸 영화 도서관. 박미향 기자

울면에 오징어·홍합 넣은 ‘걸쭉한 국물’ 뿌려 완성

제일 먼저 고른 먹거리는 ‘물짜장’이다. 이름만으로는 어떤 맛인지 알 수가 없다. 생소하다. ‘물짜장’은 전주가 고향이다. 전주의 이름난 중국집마다 ‘물짜장’을 판다. 지난달 26일 찾아간 ‘대보장’(완산구 전라감영4길 3). ‘대보장’은 문 연 지 50년이 훌쩍 넘은 노포다. 벽에 걸린 낡은 그림과 고풍스러운 시계가 지난 시간을 증명한다. 세월만큼 힘이 센 건 없다. 시간이 촘촘히 박힌 맛은 사람들을 잡아당긴다. ‘대보장’은 화교 장진동(2018년 작고)씨가 창업자다. 현재 그의 아들인 장립해(66)씨가 운영한다. 오전 11시10분에 문 열어 오후 2시면 문을 닫는다. 재료가 빠르게 소진되기 때문이다. 이날 이 집의 대표 메뉴 ‘물짜장’을 주문했다.

어라! 까만 짜장 소스가 없다. ‘물’이 붙어있으나, 명색이 ‘짜장’면이 아닌가. 언뜻 보면 울면과 비슷해 보이는 ‘물짜장’에는 밝은 황토색 소스가 마치 국물처럼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걸쭉하다. 그 안에 홍합, 오징어 등 갖은 해산물과 채소들이 담겨있다. 면은 짜장면보다 가늘다. 장씨의 아내는 “채소를 볶다가 해물을 넣고 육수 붓는다. 그걸 한동안 끓이다가 전분을 마저 푼다”고 조리법을 알려 줬다. 흥건한 소스가 잔뜩 묻은 면은 보드랍다. 면과 함께 먹은 오징어는 쫄깃했다.

한편, 짜장면과 오징어의 만남이 생경하다. 하지만 60여년 전 오징어는 이미 짜장면에 주요 재료였다. 1961년 5월26일치 ‘동아일보’에 소개된 요리연구가 김제옥 레시피를 보면 재료로 돼지고기와 함께 ‘오징어 1마리’가 적혀있다. 독특한 재료로는 무말랭이도 있다. 1960년대 서울에 이름난 중국집 짜장면 주재료는 무말랭이였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보관이 편리하고 가격이 싼 무말랭이는 요긴한 재료였다. 물에 불려 삶아낸 후 볶은 무말랭이는 돼지고기 같은 식감을 선사했다. 짜장의 역사엔 우리 식문화 변천사가 스며있다.

전주 중국집 ‘대보장’의 ‘물짜장’. 박미향 기자
전주 중국집 ‘대보장’의 ‘삼선짜장’. 박미향 기자

짜장면 지겨워 간장소스 넣은 별미…전라북도에 퍼져

전주 사람들은 언제부터 ‘물짜장’을 먹었을까. 지역 매체 ‘새전북신문’(2008년 2월14일치)과 ‘스포츠조선’(2010년 5월13일치) 기사를 보면 당시 60대였던 ‘홍콩반점’의 주인 윤가빈씨의 증언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지난달 26일부터 2박3일간 만난 지역민들의 회상도 유사했다. 그의 부친은 윤진성(작고)씨다. 한국식 중식의 뿌리는 중국 산둥성이 고향인 화교다. 진성씨도 산둥성에서 전주로 이주한 화교다. 1950년대 그는 전주 다가동에 중국집 ‘홍빈관’을 열었다. 이후 가업을 이은 둘째 아들 가빈씨가 1970년대 상호가 ‘홍콩반점’으로 바뀐 중국집을 40년 넘게 운영했었다. 부친은 “재료 손질부터 소스 제조법까지 엄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직원 식사로 자주 해 먹던 짜장면이 지겨워진 부친은 간장 소스를 넣은 짜장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리법에 작은 변화를 준 것이다. 목포 중식당 ‘중화루’의 명물 짜장면 ‘중깐’ 탄생 유래와 유사하다. 이 짜장면은 직원들뿐만 아니라 손님들까지도 반색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물짜장’은 전라북도 인근 지역에까지 퍼졌나갔다. 군산에 물짜장과 유사한 짜장면과 짬뽕이 있는 이유다. 애초 ‘물짜장’은 허옇다. 하지만 지금 전주에 가면 매콤하고 빨간 ‘물짜장’을 파는 집이 많다. 달라진 손님들의 식성 때문에 생긴 작은 변화다. 음식이야말로 시대와 조응하지 않으면 생존이 힘들다.

전주 중국집 ‘대보장’의 실내. 박미향 기자
전주 중국집 ‘대보장’의 외관 박미향 기자

2012년 예능 1박2일서 소개되며 전주 대표 별미로

그저 지역에서나 찾은 이 많았던 ‘물짜장’이 전국적 별미로 등극한 데는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 2012년 방송된 ‘해피선데이-1박2일 ’무작정 여행 제2탄 전라북도편‘(KBS)에서 코미디언 이수근과 배우 주원이 ’물짜장‘을 소개하면서다. 이후 꾸준히 방송을 탄 ’물짜장‘은 전주를 대표하는 별미 면 요리가 됐다.

왜 ‘짜장’에 ‘물’을 붙인 것일까. 일반 짜장면과 뚜렷한 차이인 전분에 있지 않을까. 요리사 박찬일은 저서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세미콜론)에 ‘전분은 물을 만나고 열이 가해지면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성질이 있다. 전분 알갱이들이 열을 만나면 겔화되는데, 이때는 뜨거운 물을 쭉쭉 빨아들여서 팽창한다’고 적었다. 중국음식 연구자로도 활동했던 유중하 전 연세대 교수도 물 양에 따라 결정되는 전분의 농도를 거론한 바 있다. ‘물짜장’은 전분이 가득 들어간 소스가 국물처럼 담긴 음식이다.

현재 윤가빈씨가 운영한 ‘홍콩반점’은 전주에 없다. 지역민들은 다양한 얘기를 들려줬다. “인천으로 갔다고 한던데!” “주인장 몸이 아팠던가! 자세한 것은 모르겠고” 등이다. 지금 ‘물짜장’ 명가로는 ’대보장’ 이외에도 1969년 문 연 노포 ‘진미반점’과 ‘노벨반점’ 등이 있다. 이날 ‘대보장’ 주인 겸 요리사인 장립해씨의 아내가 한 말은 돌아서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들었다. “어느 집이 원조라고 말하기 어려워요.(웃음) 아버님이 처음 문 연 1960년대 초는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그때는 다들 남는 재료 활용해 먹고, 비슷비슷한 음식 만들곤 했죠.” 그의 미소에 전주 식도락 여행의 설렘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대보장’ 인근엔 전주 대표 여행지 한옥마을이 있다. 박미향 기자
전주을 찾은 여행객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박미향 기자
여행 도우미 ‘전북 쇼핑 트래블라운지’

가벼운 차림으로 전주 일대를 자박자박 걸으며 여행하고 싶은데, 마땅히 짐을 맡길 데가 없는 여행자를 위한 맞춤한 장소다. 지난해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짐 보관 서비스, 무인 카페와 포토존 이용, 아기자기한 기념품 판매 등을 통해 전북 지역 여행 활성화를 목적으로 문 연 공간이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여행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통역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지친 여행 일정에 잠시 쉬어갈 만한 장소로 이만한 데가 없다.(완산구 충경로 25)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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