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받으면 우리도 모른다”…건설사 줄도산에 하도급 업체 초긴장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4. 5. 9.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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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5월 부도 건설사 12곳
전년 5곳 대비 2배 이상↑
공사기성·수주잔고 지표, 자금조달 지수 하락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 서울보다 지방에서 지수↓
경기도 과천시 내 공사 현장 모습 [이승환 기자]
건설업계에 연쇄 부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회생 절차에 돌입하는 지방 소규모 건설사가 속출하는가 하면 부도에 직면한 건설사도 증가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연쇄 부도 위험을 경고하고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사가 부도나면 하도급 업체까지 타격을 받는다는 점에서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9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올해 1~5월 누적 부도난 건설업체(금융결제원이 공시하는 당좌거래 정지 건설업체로, 당좌거래정지 당시 폐업 또는 등록 말소된 업체 제외)는 총 12곳으로, 이는 전년 동기(5곳)보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부도 업체는 종합건설사 2곳·전문건설사 10곳이다. 지역별로 부산이 4곳으로 가장 많고 서울·경기·대구·광주·울산·경북·경남·제주 각 1곳 등 전국적으로 포진해 있다.

건설사 폐업도 늘었다. 올해 1~3월 누적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는 104건으로, 전년 동기(83건)보다 25.3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문건설사 폐업 신고는 558건에서 618건으로 늘었다.

신규 등록은 면허에 따라 달랐다. 올해 1~3월 누적 종합건설사 신규 등록은 지난해 동기(333건) 대비 68.76% 줄어든 104건으로 조사된 반면, 전문건설사 신규 등록은 지난해 1~3월 누적 1304건에서 올해 1~3월 누적 1409건으로 소폭 증가했다.

건설사 줄도산의 원인은 주택사업 경기의 하강 국면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주택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전국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전월대비 8.1포인트 상승한 76.1로 집계됐다.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주택 사업자가 경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0~85 미만’은 하강 국면으로, ‘85~115 미만’은 보합 국면으로, ‘115~200 미만’은 상승 국면으로 각각 해석한다.

한 중견건설사 임원은 “주택사업경기가 하강 국면인 상황에서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자금 사정이 더 여의찮고, 지방 현장으로 갈수록 어려움이 더 클 수 있다”며 “지방에 위치한 중견기업마저 부도나고 있는 상황에 중견건설사 부도는 하도급업체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업 특성상 연쇄 반응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올해 들어 전국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등 업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월 기준 전국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6만4874가구(부동산R114 자료)로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전국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3월(7만2104가구)부터 11월(5만7925가구)까지 9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지난해 12월(6만2489가구)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 1월 6만3755가구로 1000가구 이상 늘어난 데 이어 2월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특히 경기도의 미분양 물량이 작년 12월 대비 2292가구가 늘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한 달 전보다 4.4% 늘어난 1만1867가구로 작년 8월부터 7개월째 몸집을 불리고 있다. 다음 달 전국서 2만 가구 이상 분양물량이 쏟아지면 그만큼 미분양 리스크는 더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공급 가뭄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은 38만8891가구로 1년 전(52만1791가구) 대비 25.5% 줄었다. 2025~2027년 3년간 입주물량은 전국 45만여 가구(부동산R114)로 집계되는데, 이는 직전 3년 간 입주물량(103만여가구)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건설사는 대체로 브릿지 대출(사업 개시 전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 확보에 사용되는 대출)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해 사업 진행이 안 되거나 사업 진행이 되더라도 분양이나 매각에 실패한 곳들”이라며 “고금리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해결이 어려운 문제인데 미국이라는 외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 만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상쇄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자금조달 어려움 겪는 건설업계
부도나 폐업 건설사가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업체가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를 보면 지난달 건설경기실사 ‘종합실적지수’는 전월 대비 0.2포인트(p) 상승한 73.7을 기록했다. 하지만 동기간 세부 실적지수 중 수주잔고 지수(85.7→66.1)·공사기성 지수(98.4→86.2)는 각각 하락했다. 지난달 자금조달 지수도 77.6으로, 전달(80.5)보다 2.9 포인트 떨어졌다.

기업 규모별 실적지수는 대기업(시공능력평가 30위 이내) 3월 75.0→4월 91.7, 중견기업(시평 300위 이내) 3월 72.2→4월 63.4, 중소기업(시평 300위 초과) 3월 73.1→4월 64.5 등으로 나타났다. 또 지역별 실적지수의 경우 서울은 81.0에서 84.5로 올랐지만 지방은 65.5에서 62.8로 내려갔다.

경남 지역의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3년 전 부동산 호황기 때 비싸게 땅을 사서 아파트를 다 지었는데 하필 금리가 치솟고 물가가 뛰는 상황을 맞았다”며 “미분양이 속출해 자금 회수를 하지 못하니 도산하는 업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행사나 건설사가 쓰러지면 결국 하도급 업체까지 부실이 이어진다”며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건설업 전체가 연쇄적으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건설사 폐업 신고가 늘고 신규등록이 감소하는 최근 현황이 건설업이 쇠퇴기로 가는 전조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이에 따른 충격 완화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건정연)은 지난 8일 ‘건설산업 반등 가능한 경기 하락인가? 쇠퇴기로의 진입인가?’ 보고서를 통해 “진입장벽이 낮고 다수 업체 보유가 입찰에 유리한 건설산업은 지속적으로 업체 수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올해 들어 종합건설업은 등록업체 수보다 폐업 신고가 많아 업체 수 감소가 예상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건정연이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건설업 폐업 신고는 총 3천562건(종합건설업 581건, 전문건설업 2981건)으로 종합·전문건설업종을 가리지 않고 최근 10년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보고서는 “2010년대 초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인 경기 악화로 종합건설업의 업체 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경우가 있어 이번 현상도 12년 만에 도래한 극심한 불황으로 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건설산업의 생애주기가 성숙기를 지나 쇠퇴기로 진입하는 전조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이어 “쇠퇴기의 진입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 일자리의 급격한 감소와 구매 능력 하락 등으로 인해 내수시장의 충격이 크고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쇠퇴기로 진입한다고 해도 경기의 등락을 반복하며 완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는 건설경기 부양, 장기적으로는 산업전환을 대비하는 선제적이고 현명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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