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민간의 상상력이 만드는 도시의 가능성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24. 5.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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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요즈음 건축과 도시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들이 일본 도쿄에 여행을 가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있다. 수많은 디자인 관련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피드에 수시로 등장하고 있는 이 장소는 '아자부다이 힐즈'와 '도라노몬 힐즈'이다. 네이밍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두 프로젝트는 같은 부동산개발기업의 최근 작업이다. 언제부턴가 한국의 복합부동산개발의 단골 레퍼런스로 등장하는 '롯폰기 힐즈'를 개발한 일본의 '모리 빌딩'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은 오랜 버블 침체기를 관통하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쇠락하는 도심의 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1년도 고이즈미 내각은 도시재생본부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도시재생과 경제활성화에 대비하였고,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민간이 제안하는 도시계획의 문호를 대폭 넓혀 놓았다. 근대화 이래로 일본의 도시개발에는 민간 디밸로퍼의 역할이 컸지만,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은 도시재생에 있어서 민간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로 작동하였고, 일본의 중심인 도쿄는 이들 민간디밸로퍼들이 수행하는 일련의 도시재생프로젝트에 의해 풍경이 대대적으로 변화해오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주요 부동산개발기업들은 저마다 주력으로 개발하고 있는 지역이 나눠져 있다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마루노우치는 미쓰비시지쇼, 시부야는 도큐부동산, 니혼바시는 미쓰이부동산, 신주쿠는 스미토모부동산과 같이 각각의 디밸로퍼들은 특정지역에 사업의 역량을 쏟아부으며, 그 지역을 만드는 기업으로서의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오랜 시간의 호흡이 필요한 도시 개발이라는 사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업지를 다방면으로 확장하기 보다는 그 지역과 밀착되어 정서를 교류하고, 지역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본의 방식이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모리 빌딩은 비교적 소규모의 디밸로퍼로서 롯폰기와 아자부다이 지역 일대에서 개발사업을 집중하고 있다. '롯폰기 힐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모리 빌딩은 그들만의 도시 개발의 철학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수직정원도시(Vertical Garden City)'라고 명명한 모리 빌딩의 개념은 도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사고하고, 공원과 같은 녹지공간을 도심에 생활하는 이들에게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최근작인 '아자부다이 힐즈'에서는 이런 사상이 가장 진화된 형태로 드러나고 있었다. 대규모의 공원을 부지 중앙부와 건물의 상부에 확보하고, 개발의 사업성을 결정짓는 건축물의 면적은 지상과 지하에 입체적으로 분포되도록 하였다.

'아자부다이 힐즈'의 성공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34년간 지역주민들을 설득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한 장기적인 안목도 주목할 만하며, 프로젝트 공간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저층부 설계를 현재 가장 '핫'한 건축가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토마스 헤더윅에게 맡길 수 있었던 점도 주요한 성공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미래형 수직도시를 가능하게 했던 사고의 유연성이 없었다면 실행이 불가능한 종류의 프로젝트라는 점에 관심이 가게 된다. '아자부다이 힐즈'는 Modern Urban Village라는 컨셉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도시민이 생활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복합적인 도시 요소가 통합된 장소로 구상되었다. 업무시설, 쇼핑, 레스토랑, 마켓, 문화시설, 호텔, 레지던스, 학교, 병원 등의 필수적인 공간 환경이 하나의 도시에 집적된 '미래형 복합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이처럼 도시의 복합성이 하나의 프로젝트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근대적 조닝의 사고 방식을 벗어 던지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도시를 교통, 건축, 주택, 공원녹지, 토목 등으로 나누어 관장하는 칸막이 행정이 도시 관리의 근간이 되고 있는 우리의 시스템에서는 실현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이다. 도시의 경쟁력은 정주 환경이 결정짓는다. 그런 측면에서 복합적 미래 도시 개발은 중요한 숙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놀라운 성장을 이끌었던 관료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민간의 상상력과 기획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체제가 절실히 필요한 사회로 이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후화되기 시작한 우리 도시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도시 개발에 대한 철학과 방법론을 재정립하면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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