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고래 노래에서 알파벳 찾았다

이영완 기자 2024. 5. 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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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고래 노래 AI로 분석해 기본음 찾아
박자, 리듬 바꾸고 장식음 붙여 변조
알파벳 바꾸면 상대가 대화 순서도 알아
고래 노래 추적해 보존 대책 세워
향유고래는 지구에 존재했던 동물 중 가장 큰 두뇌를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이 향유고래가 알파벳 역할을 하는 기본음의 리듬과 박자를 바꾸고 장식음을 붙여 더 풍부한 레퍼토리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CETI

인류는 오래전부터 대형 고래가 부르는 노래에 매혹됐다. 혹등고래는 흐느끼는 듯한 노래를 부르고, 향유고래는 딸깍하는 소리를 연신 낸다. 어미가 새끼를 부르거나 암수가 짝을 찾을 때, 또는 동료에게 사냥감을 알려줄 때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해양생물학자와 컴퓨터과학자들이 10년 동안 고래 노래를 해독한 끝에서 사람처럼 단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알파벳을 찾아냈다. 고래는 소수의 기본음을 조합해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아직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인공지능(AI) 연구가 발전하면 인간과 고래가 번역기를 두고 대화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카브리해의 향유고래들. 동료에게 딸깍 소리를 내 의사소통을 한다. 과학자들이 고래가 내는 소리에서 알파벳 역할을 하는 기본음을 찾아냈다./CETI

◇박자, 리듬 바꿔 다양한 소리 만들어

다니엘라 러스(Daniela Rus)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 컴퓨터과학인공지능연구소(CSAIL) 소장 연구진은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향유고래가 노래를 부를 때 기본음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알파벳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향유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24m까지 자라고 몸무게도 74t에 이르는 대형 고래이다. 뱃속에 쌓인 물질로 용연향(龍涎香)이란 고가의 향료를 만들 수 있어 남획됐다. 선박과 충돌하거나 그물에 걸리는 일도 많아 멸종 위기로 내몰렸다.

뉴욕 시립대의 데이비드 그루버(David Gruber) 교수는 자선단체로부터 3300만달러를 기부받아 고래 소리를 해독하는 ‘고래 번역 이니셔티브(CETI, 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CETI는 지적 외계인 탐색 프로젝트인 SETI의 이름을 모방했다.

CETI 프로젝트 연구진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카리브해에서 향유고래가 내는 딸깍 소리를 녹음했다. 동카브리해에는 400여 마리로 구성된 향유고래 무리가 있었는데. 그중 60마리에 수중 마이크를 흡입컵으로 부착해 녹음 파일 8719건을 확보했다.

향유고래는 과거 무선통신에서 모스 부호를 두드리듯 딸깍 소리를 연신 낸다. 고래는 한 번에 3~40번 클릭 소리를 낸다. 과학자들은 향유고래가 내는 소리를 21가지로 구분했다. 이를 코다(coda)라고 불렀다. 이를테면 ‘1+1+3′ 코다는 딸깍, 딸깍 두 번 소리를 내고 잠시 멈춘 다음 세 번 연속으로 딸깍 소리를 내는 식이다.

연구진은 코다가 고래의 언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이라고 생각했다. 고래 노래를 분석한 결과, 코다는 21가지밖에 없지만, 리듬과 박자를 바꾸거나 장식음을 붙이는 방식으로 300가지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를테면 향유고래는 다른 고래를 만났을 때 코다 앞뒤로 장식음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상대도 같은 방식으로 장식음을 붙여 소리를 냈다. 연구진은 장식음이 듣는 고래가 말할 차례라고 알려주는 것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딸깍 소리로 만든 기본음을 조합해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고래도 인간처럼 의사소통하는 동물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 공동 교신저자인 제이콥 안드레아스(Jacob Andreas) MIT 교수는 “챗GPT와 유사한 인공지능(AI)에 고래 노래를 학습시키고 있다”며 “연구지들이 놓친 디른 특징을 AI가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향유고래 무리마다 다른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의 루크 렌델(Luke Rendell) 교수는 사이언스지 인터뷰에서 “기본음들을 정교하게 조합한다고 반드시 인간의 언어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며 “고래들이 노래하면서 서로 기본음의 박자를 맞추는 것은 대화하기보다 유대감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오리건 주립대 연구진이 2014년 선박과 충돌해 죽은 대왕고래 사체를 조사하고 있다./미 오리건 주립대

◇멸종 위기 동물 보호에도 도움

향유고래는 범고래, 돌고래와 같이 이빨로 먹이를 물어뜯는 이빨고래류이다. 같은 대형 고래지만 대왕고래나 혹등고래, 북극고래 같은 수염고래류는 입에 있는 빳빳한 수염으로 바닷물을 걸러 크릴 같은 작은 먹이를 먹는다. 소리를 내는 방식도 다르다. 이빨고래류는 후두로 기도를 막고 코에서 소리를 내지만, 수염고래류는 여전히 후두를 성대처럼 쓴다고 추정됐다.

과학자들은 노래를 통해 향유고래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 보호 대책을 마련했다. 2022년 그리스 과학자들은 지중해에서 향유고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기술을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원리는 바다에 추락한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찾는 것과 같다.

연구진은 그리스 크레타섬 남쪽 ㎞ 깊이 바다에서 부표 3개를 1~2㎞ 간격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설치했다. 각 부표에는 수중 마이크가 100m 길이 줄에 매달려 있다. 향유고래가 먹이를 찾기 위해 딸깍 소리를 낼 때마다 각각의 마이크가 소리를 포착하고 이를 이용해 고래 위치를 삼각 측량할 수 있다. 연구진은 수면에서 반사된 소리를 통해 향유고래가 있는 바다의 깊이를 알아냈다.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AI 동물 번역기도 개발되고 있다. 플로리다 애틀랜틱대의 데니스 헤르징 교수는 10여 년 전부터 돌고래 소리를 AI로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뉴욕 시립대의 데이비드 그루버 교수 연구진은 2019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향유고래 소리 녹음 파일 2만6000여 건을 AI로 분석해 특정 소리 다음에 어떤 고래가 답을 할지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4),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4-47221-8

Frontiers in Marine Science(2022), DOI: https://doi.org/10.3389/fmars.2022.873888

Scientific Reports(2019), DOI: https://doi.org/10.1038/s41598-019-489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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