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통령실, 채상병 사건 전방위 개입했나…보고서 요구가 말하는 것

전광준 기자 2024. 5. 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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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조사를 위해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 당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해 ‘군 사망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요구했다는 진술이 맞다면, ‘기록 회수는 자연스럽고 문제없는 행위’라는 국방부와 경찰청의 기존 설명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해병대수사단이 경찰에 이첩한 사건을 되가져온 ‘기록 회수’는 이 사건의 결정적 국면으로 꼽히는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의 적극 개입은 대통령실이 ‘기록 회수’를 넘어 이 사건 전 과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을 키운다.

이첩 뒤 회수, 급박했던 2023년 8월2일

지난해 8월2일 채 상병 사건 기록이 경찰로 이첩됐다가 군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에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처리 방향 검토 보고서’를 국방부에 요구했다는 주장은 당시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는 점을 보여주는 정황으로 꼽힌다.

군인 사망 사건의 수사권을 민간 경찰에 넘기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군사법원법은 2022년 7월 시행됐고, 이후 다수의 군인 사망 사건이 군 수사기관에서 민간 경찰로 이첩되어왔다. 이첩 관련 실무 절차 등은 정비가 끝난 상태라는 뜻이다. 대통령실이 ‘군 사망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 당일에 급히 요청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국방부와 경찰청은 ‘기록 회수’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이었다. 국방부는 기록 회수와 관련해 ‘군 검찰단이 박정훈 대령(해병대수사단장)을 장관 지시에 따라 항명 혐의로 입건했고, 사건의 증거자료로서 경찰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서 사건 기록을 회수하면서 관련 공문이나 영장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추후 드러났다. 다른 기관의 자료를 가져오면서 최소한의 근거 문서를 남기지 않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방부는 ‘(근거 문서 등이 필요하지 않은) 임의 제출 형식으로 받은 것’이라는 설명도 추가했으나 경찰은 ‘접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되가져갔으므로 애초 우리 것이 아니다’라는 식이어서 양 기관의 말이 일치하지도 않는다.

이종섭, 채상병, 해병대

대통령실 전방위 개입 정황, 이미 뚜렷

‘기록 회수’ 국면에서 대통령실이 전방위적으로 개입했다는 흔적은 다수의 전화 통화 내역 등으로 이미 드러나 있다.

지난해 8월2일 대통령실이 본격 등장한 건 해병대수사단이 경찰로 사건을 넘긴 직후인 오전 11시50부터다. 낮 12시40분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ㄱ관계자가 경북경찰청 간부에게 ‘국방부에서 사건 기록 회수를 원한다’고 전하며 국방부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전화번호를 줬는데 이 통화 직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파견 경찰관)이 ㄱ관계자와 통화했다. 대통령실→국수본→경북경찰청으로 통화가 이어졌다는 뜻이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오전부터 여러 차례 유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했다. 유 관리관은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 늦게야 통화가 이뤄졌고, 이 통화에서 이 비서관은 ‘보고서 요구’를 한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도 움직였다. 낮 12시50분께 휴가 중이던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해병대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했다. 오후 3시56분에도 둘 간 5분 정도의 통화가 이뤄졌다. 김계환 사령관이 오후 4시13분에 임종득 2차장에게 전화를 건 흔적도 나타났다. 낮 12시51분에는 국가안보실에 파견 간 김형래 대령이 김화동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다. 다만 김화동 비서실장이 전화를 받지 않아 실제 통화는 오후 1시26분에 성사됐다.

오후 1시50분께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경북경찰청 간부에게 전화해 “사건 기록을 회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이 분주하게 움직인 뒤였다. 그날 저녁 7시20분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을 방문해 사건 기록을 가져갔다. 동시에 군검찰은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고, 저녁 8시40분께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대령에 대한 ‘보직해임심의위원회’ 개최를 결정하는 등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첩 보류보다 기록 회수가 더 위중”

법조계에서는 ‘이첩 보류’ 지시보다 ‘기록 회수’ 지시의 위법성이 더 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첩 보류가 ‘행위 만류’라면, 기록 회수는 ‘행위 취소’이기 때문이다. 기록 회수는 해병대수사단의 정당한 권한인 이첩을 만류하는 것을 넘어, 이미 실행된 이첩을 취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직권남용 또는 공무집행방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군 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첩 보류의 배경인 ‘브이아이피(VIP) 격노설’을 규명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회수에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밝혀내 처벌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이런 식의 회수는 극히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일이고, 따라서 지시했을 경우 직권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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