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前 美오폭 현장 찾은 시진핑 “비극 재연 막겠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2024. 5. 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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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美주도 나토군 中대사관 폭격
시, 당시 피해 현장 찾아 희생자 추모
美과오 지적해 中문제 개입말라 압박
親中 세르비아, 제트기 호위 환대
세르비아 도착한 시진핑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오른쪽)이 7일 수도 베오그라드 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왼쪽)를 영접하고 있다. 이날은 25년 전 미국이 이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오폭한 날이다. 시 주석은 현지 매체 기고를 통해 “야만적 범죄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맞설 뜻을 분명히 했다. 베오그라드=AP 뉴시스
“25년 전의 무자비한 폭격을 잊지 않겠다. 역사의 비극이 재연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유럽 3개국(프랑스, 세르비아, 헝가리)을 순방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일 동유럽의 친(親)중국 국가 세르비아를 찾았다. 25년 전인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 소속 미 공군기의 주세르비아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이 있었던 그날이다.

시 주석은 이날 현지 언론 ‘폴리티카’ 기고문을 통해 이 폭격 사건을 거론하며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의 과오를 끄집어내 미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유럽 각국을 향해 ‘미국 대신 중국과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세르비아는 중국과 러시아의 우방이다.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사업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지난해 10월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도 했다.

● 25년 전 참사 거듭 거론

1999년 5월 7일 코소보 전쟁 당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해 사상자 20여 명이 발생하자 중국인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 웨이보 캡처
미 공군기의 주세르비아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은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벌어졌다. 당시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등과 함께 옛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내 다수 세력이던 세르비아계는 무슬림인 알바니아계가 많은 코소보의 자치권 요구를 무력 진압했다. 그러자 나토가 알바니아계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전쟁에 개입했다.

당시 미국 주도의 나토군이 유고슬라비아 전역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까지 피해를 당했다. 이 사고로 중국 언론인 3명이 죽고 세르비아인 14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국은 ‘오폭’이라고 했지만 중국은 ‘조준 폭격’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중국 전역에서 반미 시위도 벌어졌다. 결국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비극적 실수’라고 사과했다.

시 주석은 2016년 6월 세르비아를 방문했을 때 폭격을 당한 옛 중국대사관 터를 찾았다. 폭격 후 중국문화원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추모비도 건립됐다. 당시만 해도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기 전이라 폭격 자체에 대한 비판은 자제하고 “패권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도의 메시지만 냈다.

이번 방문을 앞두고는 현지 언론 기고를 통해 “노골적인 나토의 폭격”이라며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 또 “중국과 세르비아는 양국 인민의 피로 맺어진 우정을 갖고 있다”며 세르비아도 당시 나토군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화답하듯 8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25년 전 우리와 함께 있었고, 높은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나토에 ‘중국에 대한 역사적 빚’을 상기시키면서 더 이상 중국 문제에 개입하거나 아시아로 확장하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으로 전 세계 안보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아닌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다극 질서’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다.

● 대통령 영접-제트기 호위 ‘극진 대접’

세르비아는 8년 만에 다시 자국을 찾은 시 주석을 극진히 대접했다. 7일 시 주석의 전용기가 영공 내에 진입하자 미그-29 제트기 편대가 전용기를 베오그라드 국제공항까지 호위했다. 부치치 대통령은 늦은 밤 공항에 직접 나가 활주로에서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를 영접했다. 베오그라드 시내 곳곳에는 오성홍기가 걸렸다.

부치치 대통령은 중국을 ‘세르비아의 강철 같은 친구’라고도 추켜세웠다. 현지 언론 노보스티에 따르면 부치치 대통령은 8일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친구 그 이상이기 때문에 대만에 관해 질문을 받을 때 우리의 대답은 항상 간단하다”고 말했다. 중국이 ‘핵심 중 핵심 이익’이라고 말하는 대만 문제에서 ‘대만은 중국의 것’이라며 중국 친화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시 주석도 “이번 방문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역사적 장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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