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도 한국에서 갑질하면 처벌 추진한다

강우량 기자 2024. 5. 9.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정위, 하도급법 역외 적용 연구
일러스트=김성규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외 기업과 국내 하청 중소기업 사이에도 하도급법을 적용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하도급법은 납품 단가 후려치기와 대금 떼먹기 등 각종 갑질에서 하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국내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이나 국내 기업이 해외에 설립한 현지 법인 등이 하도급법 밖에서 각종 ‘갑질’을 벌인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이들을 하도급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지를 본격적으로 따져본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국내외 합작 법인이나 해외 현지 법인 간 계약 등도 살펴볼 계획이다. 다만 자칫 우리 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나이키 갑질도 처벌하게 되나

8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7일 ‘하도급법의 역외(域外) 적용 관련 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국내 중소기업에 하청을 내준 해외 기업을 하도급법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검토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간 공정위는 하도급법 적용 대상을 국내 기업 사이의 원·하청 계약으로 국한해왔다. 하도급법이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기 때문에, 제재 대상도 ‘국내’ 기업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외 기업과 국내 하청 중소기업 간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공정위가 이 같은 ‘신중론’을 유지하는 데 따른 비판이 커졌다. 대표적으로 지난 2022년 나이키가 국내 신발 소재 납품업체 석영텍스타일에 갑질을 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나이키가 납품 단가를 후려치고 손실 비용을 떠넘겼다는 것인데, 공정위는 “해외 기업은 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같은 해 국내 대형 건설사 컨소시엄이 튀르키예 회사 두 곳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튀르키예 현지에서 차나칼레 대교를 만들면서, 국내 하청업체에 추가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정위는 이번 연구를 통해 해외 기업들이 원청인 경우에도 현행 하도급법을 적용할 수 있을지 따져본다는 계획이다. 해외 기업들의 갑질을 제재하기 위해 별도의 역외 적용 조항을 마련하는 방안도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외 기업에 맞서 국내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점이 무엇인지를 폭넓게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뉴스1

◇“빡빡한 한국식 규제” 우려도

국내 중소기업들을 보호하려는 공정위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엄격한 규제 탓에 되레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 간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하도급법을 운용하는 국가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민사 소송을 통해 하도급 분쟁을 해결한다. 게다가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을 통틀어 법으로 하도급 대금을 무조건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하거나, 하도급 대금을 일정 수준으로 조정하도록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하도급 대금 지급 일정이나 계약서 필수 사항 등도 법에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로선 경영상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전영준 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최근 건설업에선 중소 건설사나 건설 엔지니어링 기업들도 해외로 많이 진출하는 추세인데, 하도급법이 역외까지 적용되면 이들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해외 기업들로선 대금 지급 일정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등의 어려움을 감수하기보단 현지 업체들을 쓰려고 할 것”이라고 했다.

하도급법이 우리나라 특수성에 맞춰 진화해온 것이라, 적용 대상을 넓히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순태 광운대 건설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하도급법은 국내에서 발생한 갑질 등에 대응해 강화돼왔다”며 “하도급법의 역외 적용으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대응력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사업 기회는 잃게 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와 해외 법인들 사이의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어, 이를 고려해 최적의 방안을 찾아보려는 취지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