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다양성의 상실이 부른 창의성의 부재

2024. 5. 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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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부조리(不條理). 국어사전에는 ‘이치나 도리에 맞지 않음’이 기본의미이고 철학에서는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세계 속에 처해 있는 인간의 절망적 한계 상황이나 조건’을 의미한다. 계절의 여왕, 장미의 계절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이 시작되었는데 문득 ‘부조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한때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연극을 공부하며 무대를 디자인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가 나의 시니컬한 비판의 대상이었고 예술만이 이 부조리를 고발하며 세상을 신나게 비웃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자연스럽게 부조리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은 고전이 되어 하나의 사조로 대표되는 장르이다.

최근 K-Pop 대기업 시스템의 현실적인 부조리를 고발하며 포효하듯 격정적이었던 자회사 대표의 기자회견이 신드롬 현상으로 확산되었다. 여러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으로 일관된 기자회견에서 밝힌 창작 현장에서의 불합리와 절망적인 상황은 말 그대로 부조리였고 장시간의 기자회견 그 자체도 하나의 부조리한 상황으로 보였다. 공식 기자회견에 비속어가 등장하고 전혀 공식적이지 않은 태도와 분위기는 한편의 단막극을 보는 것 같았다. 부조리했으나 무척 흥미로웠다.

자회사 대표는 많은 이슈를 거론했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공감되었던 부분을 요약하자면 ‘다양성의 상실은 전체를 획일화하여 모두를 실패로 만든다’는 호소였다. 이 대표는 자신 인생의 대부분을 아이돌 스타 육성에 바쳤고 그 아이돌 스타들 역시 그들 삶의 거의 전부가 아이돌 스타 되기에 집중되었다. 이 거대한 자본시장에서 아티스트가 살아남으려면 모두가 각자의 레이블에서 각자의 독창적인 창작물을 생산해야 건강한 시장이 형성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이치와 도리를 기자회견이라는 공식적인 장을 열어 전 국민에게 알렸다. 그것도 아주 센세이셔널하게. 지금의 창작 환경이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다는 부조리함을 강력하게 어필했다.

글로벌 대중예술시장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예술 세계에 뭔가 부조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양성의 상실은 창의성의 부재로 악화된다. 유명하고 인기 많은 스타의 창작물을 모방하고 싶은 미숙한 욕망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부조리한 존재이니까.

아티스트에게, 그리고 예술가에게 창의성이란 기본 이치이자 도리이다. 다양성의 상실에서 오는 악화는 거의 모든 일상에 암처럼 존재한다. 특히 예술계는 치명적이다. 이제는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활성화된 대규모 아트페어는 지역마다 큰 행사를 열어 수백 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수천 점의 작품이 동시에 전시되어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거대한 미술시장에 대한 평가는 다소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에 지역만 다를 뿐 비슷한 아트페어들이 열리고 비슷한 작품들을 보게 된다는 관람평이다. 수천 점의 작품이 있어도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 같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는 평가는 창의성의 부재에서 오는 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져 전체 미술시장의 악화로 반복된다. 다음 아트페어는 보러 오지 않겠다는 관람객의 평가는 냉정한 것이 아니다. 관람객은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는 부조리함과는 자신의 귀한 인생을 함께 나누지 않겠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그의 인생 전부를 걸고 창작에 충실하듯이 관람객은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사와 극 중 상황들로 끝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게 하는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연극이 전국 순회 중이다.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고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무대에 올려지고 티켓 매진이라는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일 수도.


그리고 부조리를 제1의 진리라고 말했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는 그의 결론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오늘만 사는 인생이라도 충실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자.

김미희 올아트22C 문화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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