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이제는 국가유산] [1] 화엄매, 그 꽃 진 자리
바람결에 달려온 향긋한 꽃내음이 좋다. 아까시 꽃이 건네준 호사다. 하지만, 꽃의 아름다움도 한 시절이다. 하여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방방곡곡 꽃 대궐을 만든 춘삼월의 꽃이 지고 여름꽃이 피어나는 오월, 꽃 진 자리가 보고픈 나무가 있다.
‘구례 화엄사 화엄매’. 꽃피는 시기에 큰 인기를 얻는 매실나무다. 오랫동안 각황전 홍매화로 불리다가 올해 문화재청에서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확대 지정되었다. 들매화라 불리는 매실나무와 함께 ‘화엄매’란 특별한 이름도 얻었다. 이즈음 화엄매는 신록의 향연을 펼친다.
꽃핀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꽃 진 후는 좀 생경해 보인다. 여느 나무와 마찬가지로 무성한 나뭇잎이 묘묘하게 뻗친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다. 홍매화 화엄매는 검붉은 꽃으로 유명하고 두 줄기가 꼬여 구불구불한 수형이 독특하다. 하지만, 본래 네 줄기였다.
네 줄기였던 나무가 잃은 두 가지의 흔적을 품은 채 서로 기대어 자라 올라 더욱 특별하다. 화엄사 각황전 옆에서 인고의 세월을 다독이며 수행하는 모습 같다. 네 줄기 온전한 나무였으면 평범하게 보였을 것이다. 꽃 진 뒤 초록빛 옷을 입어도 그 태는 여전하다.
올봄 사진 콘테스트가 열린 36일 동안 화엄사를 찾은 인파가 25만5000여 명이라 한다. 천연기념물이 되며 지역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도 무척이나 크다. 여름으로 들어서는 화엄매 주변은 봄과 사뭇 다르다. 그 모습을 정성껏 사진에 담는 사람도, 무심하게 지나는 이들도 있다.
꽃다운 청춘인가 싶다가 그새 낙엽 지는 나무는 우리네 삶과 닮았다. 삼월 초, 화엄매 사진을 보여드리자 예쁘다며 눈을 깜빡여 주셨던 아버지는 그사이 돌아가셨다. 좋은 곳으로 가셨다 믿으면서도 그리움과 슬픔이 때때로 밀려온다. 예쁜 꽃 진 자리, 이제 팔 벌려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를 보러 가야겠다.
∗2024년 5월 17일부터 문화재 명칭은 국가유산으로 바뀌고,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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