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 배우러 왔다 13년 옥살이한 유학생

이유진 기자 2024. 5. 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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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사형수’ 이철의 <장동일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이철(오른쪽)씨와 배우자 민향숙씨. <장동일지>는 두 사람의 투쟁사이자 사랑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국가보안법 조작 사건 피해자 이철은 1948년 일본 구마모토현의 한 마을에서 4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경북 출신의 반공·반북주의자 아버지는 일본에서 사업했고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 히토요시 지부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했다. 도쿄 주오대학 이공학부에 들어간 이철은 한국을 알고 싶은 마음에 1973년 고려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로 유학을 왔다. 소개로 만난 한 여성과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이철은 느닷없이 연행돼 고문을 당하고 강제 자백을 강요받았다. 지독한 고문에 혀를 깨물었지만 죽지 못했다. 사형수로서 오랜 기간 온종일 수갑을 찬 채 감방 생활을 했고 약혼자 민향숙 또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돼 억울하게 고초를 겪었다. 이철은 1975년 연행된 뒤 1977년 사형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감형됐고 1988년 출소했다.

<장동일지>(김웅기 옮김, 서해문집 펴냄)는 대표적인 재일한국인 정치범 이철이 쓴 13년간의 옥중 기록이다. 이철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의 상징적 인물이다. 2015년 변호사로서 재심을 준비한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은 이 사건을 날조와 허위 자백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철은 공소장에 북한을 방문했다는 시기에 일본에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국가를 대표한 사죄를 받은 뒤 이 책을 쓰게 됐다. 책은 2021년 일본에서 출간됐다. 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정리하기 시작한 그의 일지는 개인사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책은 리영희, 박현채, 김지하, 신영복, 서승 등 저명인사들과 옥중에서 만난 이야기 등 갖가지 에피소드와 매일 깨끗한 차림새로 사형 집행을 담담하게 기다리던 심정,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징벌방에 수용됐던 옥중 투쟁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교도소 안에서도 스스로 삶을 점검하며 인텔리로서 자아를 내려놓고자 노력한 시간, 투사로 거듭난 그의 배우자 민향숙과 장모 조만조(2005년 작고)의 저돌적인 투쟁사와 재일동포들의 저항사 또한 포함됐다.

학생운동으로 투옥된 학생들이 재일동포를 ‘간첩’으로 매도하면서 자신을 애국자로 칭하는 일화에서는 근대적 국민국가관의 편협한 인식과 특권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재일코리안 연구자인 김웅기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교수는 옮긴 이의 말에서 “동족의 따가운 시선과 거리두기는 객지 일본에서 겪는 차별 이상으로 모욕감을 안겨준다”고 적었다. 정치범 이철의 기록은 이데올로기와 국민국가 틈새 재일코리안의 생생한 증언으로 더욱 가치를 지닌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새로 쓴 미국 종교사

류대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 3만원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미국의 종교사 600년을 검토한다. 18세기 기독교가 종교 소비자를 찾아나선 일, 물질적 풍요를 찬양한 ‘성공의 복음’ 전도사들이 주목받았던 일, 19세기 말 신흥 종교운동과 노예해방운동가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주장, 최근의 사이언톨로지까지. 한동대 류대영 교수가 2007년 발간한 <미국 종교사>를 새롭고 자세히 고쳐 썼다.

기도

수경 지음, 엘도브 펴냄, 1만7천원

“기도란 직면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입니다.” 환경단체와 환경운동가를 지원하는 봉사단체 ‘세상과함께’ 회원들에게 수경 스님이 공양하기 위해 구상한 책이 정식 출간돼 나왔다. 출가 초기 은사 스님을 모셨던 젊은 시절부터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로 겪은 이야기까지 기도에 얽힌 에피소드와 기도문 등을 담았다.

탄소 기술관료주의

빅터 샤우 지음, 이종식 옮김, 빨간소금 펴냄, 3만2천원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이었던 푸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이 책은 화석 연료에 대한 지독한 의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핀다. 제국주의 일본과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권은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자원 자립에 대한 집착 속에서 석탄 중심의 개발주의를 수용했고 그 결과 생태 및 환경 파괴가 뒤따랐다.

붉은 인간의 최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이야기장수 펴냄, 2만2천원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신작 소설. 소련이 해체되고 자본주의가 이식되며 돈의 세계로 쫓긴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가난은 순식간에 창피한 일이 돼버렸고, 시장은 그들의 학교가 됐다. 돈과 인간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20년간 1천여 명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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