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로 얼룩진 한국형 차기 구축함…김동관·정기선 우정마저 멀어지나

허인회 기자 2024. 5. 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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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 한화오션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지난 3월 한화오션의 경찰 고발 맞대응 성격
승계 길목서 전면전 펼치는 ‘절친’ 오너 3세들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유출사건을 놓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또다시 충돌했다. 지난 3월 한화오션이 군사기밀 유출 개입 여부 수사를 요구하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 임원 등을 고발한 데 이어 두 달 만에 HD현대중공업이 한화오션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재계에선 경영 승계를 진행 중인 두 오너 3세가 물러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8조원에 달하는 KDDX 수주전이 경영 능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후계자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사안이라서다.

지난해 6월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부산국제조선해양대제전(국제해양방위산업전)'에서 차세대 한국형 구축함(KDDX) 모형이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HD현대중, 한화오션 고발 두 달 만에 고소로 맞대응

8일 재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전날 자사 직원들이 경쟁사인 한화오션을 허위 사실 적시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한화오션이 경찰에 HD현대중공업 임원 개입 정황을 수사해달라며 고발한 데 따른 맞대응 성격이다.

두 기업의 갈등은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앞서 지난해 11월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4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KDDX 개념설계도를 불법으로 빼돌린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유죄 판결에도 지난 2월 방위사업청은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에서 제재 대신 '행정지도'를 결정하면서 HD현대중공업이 KDDX 건조 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에 한화오션은 지난 3월 경찰 고발과 함께 이틀간 기자설명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 임원 개입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한화오션은 이 과정에서 판결문과 재판 증거목록, 재판 기록을 공개했다. 이번에 한화오션을 고소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해당 수사기록의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한화오션이 공개한 수사기록 내용은 피의자신문조서 일부를 의도적으로 편집해 마치 HD현대중공업 임원들이 기밀 유출에 개입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주장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정보공개법 위반 소지가 있었음에도 무리하게 수사 기록을 공개했고, 이마저도 의도적인 짜깁기로 수석부장을 임원으로 둔갑시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며 "이 부분에 대한 해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의 고소에 대해 한화오션도 즉각 입장문을 내고 반박했다. 한화오션은 입장문에서 "회사는 직원의 진술 뿐만 아니라 공개된 증거 목록에서 나타난 군사기밀 보관용 서버 설치 및 운용 등을 종합해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개입 정황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초 수사 당시 범죄행위를 수행한 직원이 지목한 '중역' 뿐만 아니라 그 윗선에 대해 전혀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수사 결과에 대한 상식적인 의혹 해소 차원에서 고발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HD현대중공업에 고소인들이 해당 범죄행위로 조사받을 당시 윗선으로 지목한 중역 등에 대한 자료가 모두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해당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수사에 협조해 의혹을 하루 빨리 해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3월5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열린 구승모 한화오션 법무팀 변호사가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 고발장 제출에 대한 입장 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반기 KDDX 입찰 앞두고 경찰 손에 운명 갈릴 듯

양사가 고소고발을 하며 전면전에 나선 이유는 7조8000억원 규모의 KDDX 건조 사업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KDDX 사업의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업체 입찰을 앞두고 경찰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이 양사의 전략인 셈이다.

KDDX는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되는데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은 바 있다. 통상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를 맡아왔다. 하지만 기밀 유출 이슈에 경찰 수사까지 이어지면서 입찰의 향방은 오리무중인 상태다.

양측은 현재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고소에 대해 "안타까운 도덕관념"이라며 맹비난에 나섰고, HD현대중공업 역시 "향후 상응하는 조치들을 취해 나갈 예정"이라며 후속 대응도 준비 중임을 드러냈다.

아울러 재계에선 두 회사를 이끌고 있는 오너 3세들의 향후 입지를 감안할 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라는 분석이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는 등 재계에서 절친한 오너 3세이지만 이번 경쟁에서 질 경우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승계의 중요한 길목에서 경영 능력과 직결되는 사안이라서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며 방산을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키우려는 김동관 부회장 입장에선 이번 KDDX 사업은 한화오션 출범 이후 중요한 분수령이다. 정기선 부회장 역시 그룹의 주력인 조선이 걸린 문제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업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실적과 오너 3세들의 경영 능력은 물론 내년 이후 특수선 수주 물량이 고갈된다는 점에서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라며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입찰 향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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