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기막힌 역설, 이토록 웃긴 박찬욱표 블랙코미디라니('동조자')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5. 8.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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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베트남전 영화에 담긴 미국적 시선 꼬집은 명장면들

[엔터미디어=정덕현] 갈수록 기막힌 역설을 담은 박찬욱표 농담은 짙어진다. HBO 오리지널 시리즈 <동조자> 4회가 가장 코믹하다고 밝힌 박찬욱 감독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미국의 작가주의 감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 찍는 베트남전 영화의 고증을 위해 참여한 대위(호안 쉬안데)의 이야기는,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과 비틀어진 허구 사이에서 생겨난 다양한 역설적 상황들로 웃음을 줬다.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 작가주의 감독은 그래서 베트남인의 시각이 필요하다며 대위에게 고증을 요청하지만, 자신의 작품 속에 베트남 사람들의 대사를 한 줄이라도 넣어달라는 요청을 미장센이니 몽타주니 하며 일축한다. 대사 말고도 영상만으로 감정들을 전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실상 자신의 관점을 투영하기 위한 변명일 뿐 정작 진짜 베트남인의 시각에는 관심도 없다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래서 대사도 없는 베트남 역할의 배역이 베트남어조차 하지 못한다는 걸 대위가 지적하자, 베트남어를 구사할 아는 엑스트라들을 구해오라고 감독이 요청하고, 대위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시 기막힌 상황이 발생한다. 대위가 동원한 엑스트라들은 남베트남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온 이들로 베트콩을 싫어하는데 이들이 맡은 배역은 베트콩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주어진 역할을 하기 싫어 하지만 대위가 시급을 올려줌으로써 배역을 맡게 한다. 미국에 들어온 이들이 사상의 문제를 넘어 자본화되는 모습을 이 한 장면이 담아내고 있는 것.

물론 감독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베트남어로 이들 엑스트라들이 하는 대사들은 베트콩의 목소리가 아니라 저들을 싫어하는 남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지는 상황이 그려진다. 그 와중에 엑스트라로 참여한 대위의 친구 본(프레드 응우옌)이 미군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죽는 장면을 실감나게 찍으며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동양인 배우 제임스 윤(존 조)이 동양인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다수 출연하지만 일찍 죽거나 고문받다 죽는 식으로 소비되는 모습 또한 미국의 비뚤어진 시선으로 포착된 동양인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이 영화촬영 에피소드에서 백미는 대위가 촬영 현장에 도착해 실제처럼 꾸며놓은 그 곳에서 어머니 쿠 엔을 떠올리며 그 허구 속 세계를 현실처럼 느끼는 대목이다. 촬영을 위해 꾸며진 묘소에 어머니의 이름을 새겨달라고 부탁하는 것. 하지만 그가 이 영화 촬영에 과몰입하는 상황은, 메소드 연기에 빠져 실제 베트남 참전군인처럼 빙의되어 베트콩 역할을 하는 배우들을 괴롭히는 셰이머스 대위(데이비드 듀코브니)와 영화 후반부에 대위의 어머니 이름인 쿠 엔이라는 베트남 여성을 등장시켜 대본을 수정한 감독에 의해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셰이머스 대위가 베트남 여성을 강간하는 신을 집어 넣고는 그걸 대위의 어머니에 대한 '헌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대위의 차에 몰래 타고 영화 촬영장에 함께 오게 된 장군의 딸 라나가 그 배역을 맡아 셰이머스 대위에 의해 강간당하는 신을 찍는 장면에서 결국 대위는 참다못해 개입하게 된다. 그건 그저 비뚤어진 동양인에 대한 시각을 가진 감독(그걸 진정성이라 착각하고 있지만)의 머리에서 나온 허구에 불과하지만 진짜 참전용사처럼 착각하는 셰이머스 대위나 역시 그 상황에 과몰입해 개입하는 대위의 감정이 폭발하는 이 장면은 현실과 비틀린 허구가 만들어내는 기막힌 역설의 웃음을 꺼내놓는다.

결국 <동조자>는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상한 세계에 대한 풍자이자 블랙코미디다. 베트남인과 프랑스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다, 북베트남 출신이지만 남베트남에서 비밀경찰로 위장해 스파이로 활동했고,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그가 가까이서 감시하던 장군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와 그 자본주의 깊숙이 들어와 살아가는 대위의 이야기다. 여러 경계들에 서 있는 대위는 이제 미국의 비틀린 시선이 담긴 영화판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또다시 정체성의 혼돈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다양한 역설들이 가능한 건, 이념과 사상의 차이에 의해 한 인간을 여러 갈래로 구분짓는 당대의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이 그 밑에 깔려 있어서다. 당대의 비극이 블랙코미디로 그려질 수 있는 건 현재 이른바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달라진 관점이 가능해서다. 이제 그 많은 구시대의 경계들이 해체되어가고 있는 현 시대의 시선으로 돌아보니 그 시대의 비극 위에서 대위라는 이 경계에 선 인물이 겪는 일들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 박찬욱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날카롭게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쿠팡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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